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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네 Mar 23. 2023

어머니의 큰절

100일 글쓰기 카페: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간

며칠 전에 고향 옆동네 농협조합장 취임식에 다녀왔다.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좋은 날 좋은 자리'에서 보자는 안부를 했었다. 말이 씨가 되었는지 정말로 좋은 자리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친구의 남편이 농협 조합장으로 무투표 당선이 되어서 취임식을 하는 자리에 친구들과 함께 가서 축하를 하였다. 스무 살에 만난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한 남자의 아내이자 사랑스런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각자의 가정을 꾸리다보니 벌써 오십대 중반에 들어섰다.

저마다 이런저런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다들 성실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지나온 시간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좋다는 말처럼 친구들의 반가운 소식들은 내 일처럼 기쁘고 흐믓하기만 하다. 그러던 차에 친구 남편의 조합장 당선 소식은 어느 때보다 기쁘고 반가웠다. 기관의 장이 되는 일은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로 힘겨운 도전이지만 단위 농협의 조합장은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다 헤아려야 되니 더더욱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농협 직원으로 입사해서 임원이 되고 다시 조합장이 되기까지 친구 남편이 조합원들께 보여준 신뢰와 성실함이 빛을 발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보았다. 소나무 분재에 예쁜 리본을 달고 축하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취임식이 있는 고향 옆동네에 들어섰을 때 거리마다 걸린 플래카드(Placard)가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걸려있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플래카드가 걸려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냥 웃음이 나왔다. 살짝 부럽기도 하면서 어떻게 하면 내 인생에 플래카드를 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도로에 차를 멈춰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이사람 저사람들이 뜻을 모아서 축하도 하고 가까운 사람이라고 기쁘게 자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에 나부끼면서 '나도 응원해'라고 느껴지는 플래카드를 뒤로 하고 취임식 장소에 도착하였다.

눈길을 끄는 수많은 축하 화환, 다양한 종류의 화분으로 취임식장은 풍성했고 행사장에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코로나로 사람들 많은 곳을 간 기억이 아득했던 탓인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축하를 해 주기 위해 모여있었다. 행사장을 가득 채운 인파를 피해 출입구에서 행사를 지켜 보았다. 2월 말에 걸린 코로나로 보름 가까이 고생을 하였는데 다시 잔기침이 심해서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 어쩌면 방해가 될 듯도 싶었다.

취임식장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인사말, 축사, 또다시 축사 등을 들으며 주변 사람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사이 정말로 행사장의 사람들을 모두 감동시킨 상황이 일어났다. 식순에 조합장 내외에게 화동들이 축하 꽃다발을 주는 순서가 있었는데, 며느리인 내 친구가 요청해서 시부모님께 받아든 꽃다발을 다시 건네는 순서를 행사 전에 넣었다고 하였다.

사실, 조합원들의 집집을 돌면서 인사를 하고 지역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남편을 위해 발로 뛰었던 친구가 당선의 기쁨을 시부모님께 돌리고자 순서에 넣었을 것이다. 친구의 마음 씀씀이가 역시나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감동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조합장 아들 내외가 준 당선축하 꽃다발을 받아든 어머니가 취임식장에 와준 조합원과 내빈들을 향해 큰절을 하셨단다. 여러분 덕분에 아들이 조합장에 당선되었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자신의 아들을 믿어준 사람들에게 조합장 어머니께서 하신 큰절의 의미는 생각할수록 감동과 울림을 주었다. 어머니의 큰절을 지켜보면서 눈물이 났다는 친구, 장내가 술렁였고 자신도 마음이 울컥했다는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어머니의 아들 사랑이 느껴졌다.

조합원과 내빈에게 큰절을 올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본 조합장이 농협 조합원들의 뜻과 다른 마음이나 개인적인 사리사욕은 절대 품지 않을 거라는 믿음까지 들었다. 아들 내외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했던 사람들, 아들의 친구들, 며느리의 지인까지 부모가 어떠해야 하는 지 어머니는 어떤 모습이여야 하는 지를 보여주신 듯하다.

스스로 어떠한 어머니였는 지 되물었던 그날 저녁에 안부전화를 해 준 아들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조합장 어머니의 큰절'에 대한 일화을 전하였다. 그 어머니처럼 너를 위해 큰절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들을 위해서 큰절을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더니 아들 또한 조합장 어머니의 큰절에 공감하고 감동을 받은 듯하였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말이든 행동이든 자식을 위해서 큰절을 할 수 있는 어머니의 품을 가지는 것에 대해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좋은 자리에서 진한 감동과 깊은 울림까지 받았다. 한 어머니의 큰절은 부모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일깨웠고 좋은 기억과 가르침을 주셨다. 고향 옆동네 농협 조합장 취임식은 두고두고 좋은 날이었고 좋은 자리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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