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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Mar 13. 2020

나는 사실, 싫었어요.

비장애 형제 '무영'의 이야기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상당히 쉽지 않은 일이다.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 ‘나는’ 모임을 제외하고는 누군가에게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꺼려졌다. 부모님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결례라고 생각하는 주변의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자식된 도리로 부모님을 사랑과 존경의 시선으로만 대해야 하는 걸까. 특히 아빠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모르겠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스물이 되기 전까지 난 일주일에 하루는 시간을 내어 오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는 학교 생활을 했기 때문에, 주말 중 하루는 늘 오빠와 함께 보내야 했던 것이다. 매번 부모님이 일방적으로 날을 잡았고, 그 날은 내 개인적인 약속이 있거나 중요한 일이 있어도 무조건 오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오빠와 함께 집에서 하루를 보내거나,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거나, 노래방을 가거나,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야만 했다. 말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오빠를 위해 시간을 내야만 했다.


오빠는 그 날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엄마나 아빠의 간섭 없이 본인이 원하는 걸 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의사는 묵살됐다. 그 날은 ‘무조건’ 오빠가 원하는 것을 하는 날이었다. 나는 일체의 의견을 낼 수 없었다. 아빠는 내가 ‘장애가 있는’ 오빠의 ‘동생’이기 때문에 ‘오빠의 말을 잘 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오빠와 노래방을 함께 가면, 오빠가 마이크를 한 시간이 넘도록 놓지 않는다. 전혀 흥이 나지 않는 상황에도 오빠가 탬버린을 손에 쥐어 주면 그걸 신나게 흔들어야 했다. 함께 영화관에 가면, 영화를 보던 중간에 오빠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오빠를 데리고 나와 화장실을 보내고 나는 화장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아빠는 항상 “넌 오빠 덕에 문화생활도 많이 즐기고 좋겠다”라고 하셨다. 아니, 나는 그런 식의 문화생활은 정말 싫었다.


내가 일정이 바빠 오빠와 시간을 보내지 못할 때 '아빠도 오빠를 위해 시간을 내주시라' 말하면, 본인은 아버지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가족이 받은 건 당신의 월급밖에 없는데 말이다. 언제부터 아버지의 역할이 돈만 벌어다 주면 그만인 것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빠는 나에게 장애인 오빠가 있음을 고마워하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당신에게 장애인 아들이 있음이 고마웠는지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괜히 싸우기만 할 것 같아서 그러진 않았다. 아빠는 "가 오빠를 돌보지 않으면 에게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말을 여전히 자주 한다. 정작 당신은 오빠에게 관심도 없으면서 오빠를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처럼 보이려고 애쓴다.


남들 앞에서 '중증 발달장애인을 키우는 헌신적인 아버지'인 척하는 아빠가 너무 싫다.





Written by 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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