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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Nov 28. 2021

가족을 위해 나를 죽이거나,
나를 위해 가족을 죽이거나

1화. 총체적 난국 by 은아

중증 발달장애인은 일상의 모든 순간에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일반적으로 발달장애인의 돌봄은 가족 내에서 부모님이 주로 담당하지만, 비장애인 형제자매도 어린 시절부터 장애형제의 돌봄에 참여합니다.

비장애형제는 어느 순간 문득 부모님에게 묻게 되죠.
“엄마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동생은 어떻게 해?"

돌아오는 대답은 절망적입니다.
“우리가 네 동생과 한날한시에 죽는 방법밖에 없다.”

장애 자녀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다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모가 장애 자녀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뜻입니다.

그 상황을 막기 위해서 나는 내 삶과 꿈을 포기한 채 장애 형제를 돌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까지 장애인의 가족들이 끝나지 않는 돌봄 속에서 살아가며, 결국에는 가족을 위해 나를 죽이거나, 나를 위해 가족을 죽여야 하는 기로에 놓여야 할까요?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선택지를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2021년 9월 초. 토요일 오전 11시.


주말을 맞아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있던 그때,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지도 못한 채 더듬더듬 손을 더듬어 핸드폰을 찾았다. 요란하게 진동하는 핸드폰 화면에는 ‘언니’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이 아침부터 무슨 일이지? 좀 더 잘 수 있었는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받은 전화기 너머로 언니의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은아야, 엄마 크게 다쳤대. 119 와서 응급실로 실려갔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잠이 확 달아났다.


언니의 설명은 이랬다.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부엌에서 음식을 마련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유리병이 폭발하듯 깨졌고, 두꺼운 유리조각이 엄마의 발등에 깊이 박혀버렸다. 유리조각은 엄마의 발등을 지나는 동맥, 힘줄, 인대를 끊어 놓으며 부엌이 온통 피 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동맥이 절단된 덕분에 아무리 지혈을 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다.


“너도 알잖아. 피 보면 정아 흥분하는 거. 

정아는 소리 지르면서 울지, 엄마 피는 안 멈추지. 아주 난리가 났었대.”


중증의 발달장애를 가진 동생 정아는 본인 기준에서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그중에서도 피를 가장 싫어한다. 엄마의 발등에서 흐르는 피가 부엌 바닥을 뒤덮자 정아는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고, 본인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목 놓아 울었다. 또 지혈을 위해 바닥에 누워있는 엄마가 이상해 보였던지, 자꾸만 일어나라며 손을 잡아끌었다. 


정아야 그러면 안 돼, 엄마는 누워서 지혈해야 한다고. 

아빠는 정아와 실랑이하며 119로 연락해 구급차를 불렀다. 원래라면 보호자가 함께 응급실에 가야 했지만, 정아를 혼자 둘 수 없기에 엄마 혼자 병원에 보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아빠가 나한테 연락해서 정아랑 같이 있어달라고 부탁한 거야. 

내가 오고 나서 아빠는 바로 병원으로 갔고. 아빠도 진짜 정신없어 보이더라.”


아빠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전해 들은 언니는 양손에 2살, 5살짜리 두 딸아이를 붙들고 부리나케 친정집으로 달려갔다. 그제야 나도 전화기 너머로 조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와 정아가 흥분해서 내는 소리들이 귀에 들어왔다. 언니가 온 이후에도 정아는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고생했어 언니. 이게 무슨 난리야. 엄마는 지금 어때? 괜찮은 거지?”

“나도 모르겠어. 응급처치는 했는데 수술을 해야 하나 봐. 아빠도 워낙 정신없는 것 같고.”

“그렇지, 이따 아빠한테 연락해 봐야겠다. 언니, 그럼 오늘 언니가 정아랑 같이 있을 거야? 내가 내려갈까?”


발달장애인 중에서도 매우 기능이 좋지 않은 정아는 먹는 것이나, 씻는 것, 옷을 입는 것, 여가시간을 보내는 것 모두 다른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에 혼자 지내도록 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30년이 넘도록 정아를 돌보는 일 대부분은 엄마가 도맡아 왔다. 엄마가 없을 때는 아빠가,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없으면 우리 형제들이 정아를 돌보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느 때와는 달랐다. 

엄마도 돌봄이 필요했고, 

각자의 삶이 있는 형제자매들이 정아를 하루 이상 책임져야 했다.


당장 밤에 정아가 잠을 자는 것부터 문제였다.  

혹시나 정아가 잠에서 깨어 집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가족들을 찾아 밖으로 나가 정처 없이 헤맨다면? 

다른 사람이 정아가 혼자 있는 것을 알고 해코지를 한다면? 

잠시 상상만 하는 것만으로도 공포가 밀려들었다.


“내려올 수 있어? 오늘은 내가 정아랑 있을 수도 있고.”

“아유, 아기들 둘에 정아까지. 그러다 언니가 병나겠다. 나 약속 있기는 한데 취소할게. ”


주말에 오랜만에 친구도 만나고,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를 약속해 놓은 상태였지만 맘 편히 놀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이들이 딸린 언니 혼자 정아를 도맡으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못할 일이었다. 우선 아빠에게 연락해보고 준비되는 대로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 1시.


연락이 되지 않던 아빠와 겨우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아빠가 전에 없이 상기된 목소리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알려주었다. 


구급차가 와도 엄마는 바로 병원으로 가지 못했다고 한다. 들것에 누워 실려가는 엄마를 정아가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정아의 눈에는 모든 상황이 이해가 안 되고 이상한 것들 투성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왜 이상한 곳에 누워있는지, 왜 구급대원들이 엄마를 데려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정아가 할 수 있는 것은 소리 지르며 엄마를 데려가지 못하도록 힘껏 붙잡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아유 참. 진짜 난리였네. 고생했어요, 아빠.”


엄마는 응급실에서 끊어진 동맥을 묶어놓아 피는 멈추었지만 월요일에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가 입원하는 동안 아빠는 보호자로서 병원에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서는 환자가 입원한 기간 동안 보호자 역시 병원 밖으로 나갈 수가 없도록 엄격히 관리한다고 했다.


최소한 주말부터 월요일까지 3일 간, 엄마의 입원 기간에 따라 최대 1~2주일 간 정아에 대한 돌봄 공백이 생겨 버리는 것이다.


“하루에 몇 번이라도 병원 출입을 할 수 있으면 아빠가 틈틈이 집에도 다녀오고, 잠은 집에서 자면서 정아를 돌볼 수 있는데 그게 안 된다고 하네. 간병인도 지금 당장 구하지 못하고.”


간병인을 고용해서 엄마의 간호를 맡기고 아빠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최선의 방법으로 보였지만, 마찬가지로 보호자의 병원 출입의 통제되면서 간병인 수요가 폭발해 바로 간병인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아빠도 꼼짝없이 병원에 발이 묶인 상황이었다. 정아를 어떻게 해야 하지?


“알았어. 일단 주말에는 내가 정아랑 있을게. ”

“그래 주면 고맙지. 비행기가 있으려나?”


아빠가 마음이 놓인다는 듯 말했다. 주말에는 내가 있다고 쳐도 평일에는 나도 언니도 출근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막막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핸드폰을 들어 가장 빨리 탈 수 있는 비행기를 검색했다.




토요일 오후 6시.


간소한 짐을 들고 들어선 집 안은 아기의 우는 소리와 정아의 흥분한 소리가 뒤섞여 아수라장이었다. 두 살짜리 둘째 조카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엉엉 울고 있었고, 언니는 그런 조카를 달래느라 경황이 없어 보였다.


“아유, 정신없어. 아기는 왜 울어?”

“뛰어놀다가 넘어져 가지고. 아가, 괜찮아. ”


정아는 서울에서 언니가 온 것은 안중에도 없고, 아기의 울음소리에 흥분해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얼굴은 시뻘겋게 달구어져 화가 난 듯 보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아는 평소에도 아기의 울음소리를 매우 싫어하고, 아기가 울면 그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발을 동동 구른다. 정아가 극도로 흥분했다는 표현이다. 이럴 때 정아를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은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뿐이다. 언니가 아기를 어르고 달랬다. 옆에서 다섯 살짜리 첫째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정아 이모가 싫어.”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일까.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2020년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재가 발달장애인은 22만 명(2017년 기준), 
시설 거주 발달장애인은 2.3만 명으로, 
전체 발달장애인의 90%는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장애인의 주 돌봄자인 가족이 장애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들은 개인적인 일로만 치부될 뿐, 국가에서 관리하는 통계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저는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미래를 찾고 싶습니다.
나는(It's about me!)과 함께 새로운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nanun.future@gmail.com 으로 연락 주세요.

*아래의 신문 기사들은 구글 키워드 검색을 통해 찾은 일부 기사들을 정리한 것으로, 모든 기사를 정리한 것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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