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형제 '지나'의 이야기② - by 은아, 혜연
"한 번쯤은 세상이 오빠를 위해 맞춰줄 수 있잖아요 - 비장애형제 '지나'의 이야기①"에서 이어집니다.>
(은아) 최근에 시설에 거주하던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 나와서 자립해서 살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하고 있어요. 저는 여기에 더해서 가족 안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도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나 님 오빠는 자립해서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요? 혹시 필요한 지원이 있을까요?
(지나) 저희 오빠는 시력 때문에 걱정이 되긴 하지만 시력이 나빠지기 전을 생각해보면 혼자서 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스스로 요리를 하진 못하지만 반찬만 챙겨주면 본인이 챙겨 먹을 수는 있고요. 본인의 나름대로 루틴을 만들어나갈 수 있으니까요. 대신 제가 하루에 한 번이라도 들여다봐야겠지요.
그런 삶을 위해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오빠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갈 수 있는 곳인 것 같아요. 오빠가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로는 집에만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까 말을 더듬더라고요. 집에만 있어서 사회적인 교류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은아) 오빠가 고등학교 졸업 후에 다른 곳에 가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지나) 오빠가 자존감이 높은 편이어서 그런지 다른 장애인들 사이에 있으면 좀 불편해해요. 그렇다고 해서 비장애인과 어울리기에는 다른 사람의 배려가 많이 필요하죠. 그래서 어머니는 오빠가 직장이나 기관 같은 조직에 가기보다는 사진이라든지 뭔가 혼자 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려고 했어요.
그런데 오빠가 스무 살 정도 되니 어머니가 방전이 됐어요. 그때까지 정신없이 20년을 보냈으니까요. 어머니가 그렇게 지쳐버리니 뭔가 더 알아보지 않았고, 오빠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집에만 있었어요. 그러다가 20대 후반에 제가 어머니에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오빠에게도 사회적인 자극이 필요하다.”라고 얘기해서 복지관 보냈었죠.
그런데 결론적으로 잘한 일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오빠는 복지관에 3-4년 정도 다니고는 1년 정도는 일을 했는데,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었나 봐요. 지금도 그때 얘기를 하면 파르르 떨어요.
(은아) 안 좋은 일이 있었나요?
(지나) 저도 오빠의 생활을 모두 지켜본 것은 아니니 잘 모르겠어요. 어떤 갈등이 있었거나 스트레스를 받았겠죠. 살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오빠가 행복했던 것 같지는 않아요. 다만 그때 복지관에 상담하러 갈 일이 있어서 제가 간 적이 있는데요. 복지사가 저한테 "오빠가 본인이 장애인이라는 자각이 없다."라고 하는 거예요.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자각이 없는데, 그게 필요하다는 거죠.
지금 생각하면 무슨 말인지 이해는 가요. 장애인 당사자로서 자기 스스로에게 장애가 있다는 인식이 없으니 적절한 지원이 어렵다는 뜻이겠죠. 그렇지만 그 당시의 저에게는 큰 상처가 되는 말이었어요. ‘어머니가 오빠를 자존감 높게 살 수 있도록 키운 건데 왜 스스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이라는 자각을 하고 있어야 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복지관을 그만두고 나서 40대 초반이 될 때까지 오빠는 계속 집에 있고, 어머니가 오빠를 케어해 오고 있어요.
(은아)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의 특성이나 성격이 저마다 다양한데 복지관에서도 그런 부분을 이해받기가 어려웠다는 점이 아쉽네요. 또 나이가 든 발달장애인에게도 ‘사회적인 자극’이 계속 필요한 데 갈 수 있는 곳들이 마땅치 않은 것도 참 어려운 문제고요.
(지나) 한편으로는 저는 탈시설을 위해서는 오빠 자신보다도 사회의 준비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역사회가 장애인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어딜 가나 장애인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보지 않아서 그렇지 어딜 가나 있지만요.
제가 나중에는 다른 동네가 아니라 본가로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요. 그 가장 큰 이유가 오빠한테 익숙한 동네이기도 하고, 그 동네가 오빠에게 익숙해지기도 했기 때문이에요. 한 동네에 오래 살다 보니까 동네 사람들이 엄마랑 오빠를 다 알거든요. 뒷산 산책만 10년째 다니고 있으니까요.
지역 내에서 살아가면서 오빠에게 뭔가 문제나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오빠를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 오빠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 안심이 돼요.
(은아) 그 지역에 살고 계신 분들이 오빠를 이해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지나) 많죠. 예를 들면 오빠가 눈 때문에 어딜 쉽게 못 가는데 익숙한 마트 같은 곳은 혼자 다녀와요. 마트 사장님하고 안면을 텄거든요. 마트에 있는 분들은 오빠가 어떤지 아니까 오빠가 돌발 행동을 하더라도 이해해주고, 그러니 마음 놓고 보낼 수 있죠.
그런데 이렇게 ‘오빠를 안다’는 것은 엄마가 마트 사장님한테 가서 실은 얘가 장애가 있다고 설명해서 아는 게 아니라, 그냥 자주 봤을 뿐이에요. 그게 되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오빠가 맨날 뒷산에서 여의봉이라고 부르는 막대기를 휘두르면서 무술을 보여주는데요. 그럴 때마다 다른 사람들한테 “제가 무술을 할 줄 아는데 한번 보여드려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정중하게 묻지 않거든요. 가서 무조건 휘두르지.
동네 사람들이 그런 오빠를 처음 만나면 놀라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갈등을 겪기도 했어요. 오빠를 피하는 사람도 있고. 시비가 붙어서 싸우게 된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자주 마주치면서 계속 본 분들은 알게 되는 거죠. ‘쟤가 휙휙 뭘 휘두르는 게 나를 해치거나 위협하려는 게 아니라 무술을 뽐내는 거구나.’라고.
엄마가 오빠랑 맨날 뒷산 올라가니까 이제는 사람들이 엄마를 보면 인사를 한대요. 여전히 장애인과 함께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피해 가지만요.
(은아) 억지로 어떤 노력을 한 것은 아니지만 자주 마주치다 보니 그 지역 사람들의 삶 속에 오빠가 녹아들어 가 있네요.
(지나) 맞아요. 그게 가능한 이유도 매일매일 엄마랑 오빠가 노출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 동네 분들이 어머니한테 말을 걸 때가 있는데, 예전부터 계속 지켜봤다고 말씀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눈에 안 들어왔지만 어느 날 눈에 들어오니까 말 건넬 때도 있고요. 어떤 사람은 도토리묵 쒔다고 가져가라고 하고, 그럼 오빠가 자기 묵 좋아한다고 너스레도 떨어요. 그런 모습을 볼 때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어머니가 안 계실 때 제가 오빠랑 같이 산책을 가곤 하는데, 그다음 날 엄마가 산에 가면 사람들이 와서 ‘어제 그 친구는 딸이냐’고 물어본대요. 저는 누구한테 인사한 적이 없는데 다들 저를 지켜보고 있었던 거죠. 처음에는 그게 싫었는데, 이제는 만약 오빠를 잃어버려도 보는 눈이 많으니 어디로 갔다고 얘기해줄 사람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안심이 돼요.
그런데 그런 분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있잖아요 최소한 50대 이상의 연세가 있으신 분들인데요. 윗 대는 오지랖이라고 할까,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어요. 그냥 지나가면 될 것을 뭐라고 말을 붙이는 사람들이 있죠.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그런 것에 관심이 적어서 조금 걱정이 돼요.
(은아) 그렇죠. 공동체의 ‘정’이라는 것에 기대어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환상인 것 같기도 하네요.
(지나) 공동체라는 말은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벌써 오래됐고요. 점점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혐오가 노골적이고 강하게 나타나는 것도 걱정돼요. 그렇다고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나 있는지 알만큼의 밀접한 공동체를 원하는 건 절대로 아니지만, 너무 교류가 없지 않나 싶어요.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어요. 나도 내 이웃에 지체장애인이나 뇌성마비 장애인이 있다면, 그래서 그 사람이랑 한 달에 한번 외식을 한다면. 그러면 하다못해 휠체어를 끌고 갈 수 있는 식당이 어디가 맛있는지 알겠죠. 지금은 일상이 아니니까 그런 생각을 잘 못 하는 거고요. 그래서 비장애인의 일상 속에 그런 게 많아지면 좋을 것 같아요.
아. 장혜영 님의 <어른이 되면>이라는 다큐를 보면서 부러웠던 점이 있는데요. 혜영 님의 친구들이 동생 혜정 님과 친구가 되고 지지해 주는 관계를 맺는 것이었어요. 저런 경우가 과연 정말 꿈같은 일일까? 나에게는 친구가 별로 없는데(웃음) 저 사람이 특수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은아) 저에게도 친구가 많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웃음) 제 친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또 ‘장애인의 지역 사회 자립’이라는 정책 안에서 지역사회가 장애에 적응하기 위한 방안들이 고려되고 있는지도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 같고요.
지나 님, 오늘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오빠 분의 장애 등급 재심사를 비롯해서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고민들을 함께 나누도록 해요!
동네 사람들이 오빠의 장애에 대해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자주 봤을 뿐이에요.
그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비장애형제 지나 님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발달장애를 가진 오빠가 사회적인 인간으로서 '갈 수 있는 곳'이 너무나 필요한 상황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자립해 살아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교류와 지역 사회의 장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장애인의 지역 사회 자립'이라는 정책 안에서 지역 사회가 장애에 적응하기 위한 방안들도 고려가 되고 있을까? 비장애형제 모임 나는(It's about me!)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도 면밀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나는(It's about me!)과 함께 더 나은 미래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싶은 비장애형제라면 누구나,
비장애형제들의 새로운 미래 찾기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세요!
<인터뷰 참여 신청> https://forms.gle/jTc5XUc8L8WF3zME9
Written by 은아, 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