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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Mar 09. 2022

최중증 발달장애인이 받을 만한 돌봄 서비스가 없어요

비장애형제 '신애'의 이야기 ① by 은아, 혜연

나의 삶을 지키면서 장애형제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한 장애형제와의 미래. 
나 혼자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 텐데.
다른 비장애형제들은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 나가고 있을까?
비장애형제모임 나는(It's about me!)에서는 
다른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를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세 번째 만난 비장애형제는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는 신애님(37)입니다. 신애님에게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남동생(34)이 있다고 했습니다. 


신애님은 최근 결혼을 해 새로운 가정을 꾸렸지만, 동생을 돌보는 부모님의 건강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다며 인터뷰에 참여해 주었습니다.



저를 만나고 나서부터 장애인이 보이기 시작했대요.


(은아) 신애님,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해요. 사실 나와 우리 가정의 어려움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은데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신애) 제 동생은 제가 특수교사로 일하면서 봤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심한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그렇기에 저희 가족이 겪는 어려움이 세상에 많이 알려져야 조금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회가 있으면 가족 얘기를 알리는 일에 참여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비장애형제 관련 논문을 쓴다는 분에게 제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고요.


저희 아빠는 <인간극장> 같은 다큐를 찍고 싶다고 얘기하기도 했어요. 우리 집의 상황을 알려야 뭔가 변화를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희 엄마는 “당신 딸 앞길 막으려고 작정을 했냐”라고 했죠. 미디어에 장애인과 같이 살고 있는,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모습이 노출이 되면 누가 너랑 결혼하려고 하겠냐는 말씀도 하시고요. 


그렇지만 이제는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에 대해 걱정을 덜 하실 거예요. 작년에 결혼을 했거든요.(웃음)


(은아) 신혼이시군요? 정말 축하드려요! 주제와는 조금 다르지만 남편분과 어떻게 만나셨는지, 결혼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결혼이라는 게 많은 비장애형제들의 고민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신애) 맞아요. 저도 2년 전에 ‘나는’ 모임에 처음 가서 “결혼을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소개팅이든 뭐든 이성을 만나면 다른 문제도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동생 때문에 계속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나는’에서 한풀이를 했어요. “나는 글러먹은 것 같다, 나는 그냥 비혼으로 살아야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죠. 그런데 같이 얘기하던 분들 중 꽤 많은 분들이 자기도 그런 상황이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죠. 


신랑은 소개팅으로 만났어요. 연애 초반에 통화할 때 전화기 너머로 제 동생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좀 충격적이었대요. ‘장애’라는 것을 본인은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신랑한테 좀 놀랐던 게요. 저를 만나기 전까지는 장애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저를 만나고 난 다음부터 자기 눈에 장애인이 보이기 시작했대요.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보이고, 청각장애인처럼 보이는 분이 보이고, 뭔가 지하철에서 혼잣말하면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요. 그 얘기가 되게 고맙더라고요.


(은아) 남편분이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갑자기 장애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게 너무 감동이네요. 


(신애) 저도 감동이었어요. 그리고 시아버님이 척수염을 앓고 계신데요. 장애와 다르기는 하지만 만성질환이다 보니 가족들의 포커스가 아버님께로 맞춰져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 가족도 본인 가족의 모습이랑 같은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서로 공감대도 있었어요. 지금 제가 특수교사로 일하는 것도 남편이 항상 지지해주고 응원을 많이 해줘요.



나중에 동생을 데리고 살아야 하니?”


(은아) 정말 좋은 분을 만나셨네요. 얘기를 듣는데 마음이 너무 좋아요. 결혼 과정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신애) 시부모님이 신랑 통해서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하시는 건 딱 하나였어요. “나중에 동생을 데리고 살아야 되냐”. 그래서 데리고 살 생각 없고 그렇게 살 수도 없다, 동생이랑 사이가 안 좋아서 저도 힘들고 부모님도 그럴 생각 없으시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네가 고생이 많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결혼을 하게 된 거죠.


결혼 전에는 부모님이 신랑에게 동생을 죽어도 보여주려고 안 하고 집으로 초대도 안 했어요. 그래도 신랑이 먼저 집에 가보자, 인사하러 가자고 해줘서 한 번 집에 갔어요. 처음에는 낯선 사람이 오니까 동생이 멀찍이 떨어져서 어색하게 보더라고요. 


사실 동생이 집에서 그냥 자연인이에요. 아무리 옷을 입어도 속옷까지 다 벗어요. 그런데 낯선 사람이 들어오니까 갑자기 옷을 입더라고요. 그래서 신랑이랑 만나는 게 교육 효과도 있고 좋다고 생각했는데 네 번째 봤을 때는 결국 옷을 벗었어요. 이제 신랑도 익숙해졌다 이거죠. (웃음)


(은아) 동생 분이 옷의 감촉을 민감하게 느끼나 보네요.


(신애) 맞아요. 말씀드렸다시피 동생은 최중증 자폐성 장애인이에요. 결혼식을 올리는 과정도 쉽지 않았는데, 저희는 결혼식에 동생을 데려갈 수가 없었거든요. 결혼식장에서 온갖 물건을 다 건드리고, 음식이 있으면 손으로 먹고 난리가 날 테니까요. 그런데 시댁 사정 때문에 지방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결정이 된 거예요. 그래서 저랑 엄마는 전날 내려가고 아빠는 당일에 내려오시기로 했어요. 


그럼 몇 시간이라도 집에 동생을 혼자 둬야 하잖아요. 일단 현관문을 안에서 못 열게 잠가 두고, 부모님이 친구분들께 부탁을 드렸죠. 몇 시간에 한 번씩 잘 있는지 확인하고, 때 맞춰서 식사랑 약 좀 챙겨달라고. 그렇게 결혼식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행복하게 웃는데 저랑 저희 가족은 계속 속으로 동생이 잘 있나 걱정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결국에는 저희 아버지는 가족사진도 못 찍고 바로 올라가셨어요. 뭔가 가족 행사만 있으면, 그게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저희한테는 '동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가장 큰 과제예요.



최중증 발달장애인은 받을 만한 돌봄 서비스가 없어요. 


(은아) 동생 분과 함께 지내는 일이 정말 쉽지 않았겠어요. 지금 동생 분은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 부모님께서는 어떠신가요?


(신애) 부모님이 요새 건강이 안 좋아져서 걱정이 돼요. 제 동생이 수면장애가 있어서 9시, 10시에 재워도 새벽 2시에는 일어나요. 얌전히 잠에서 깨서 일어나 있는 게 아니라, 모든 방문을 열었다 닫고, 형광등을 켰다 껐다 하고, 계속 소리 지르고……. 매일같이 새벽마다 그런 일이 있다 보니 두 분 다 잠을 잘 못 주무세요. 또 동생이 소리 지르는 것 때문에 이웃들이 항의를 해서 이사도 많이 다녔어요. 2년 동안 이사만 다섯 번은 한 것 같아요. 


게다가 동생이 공격성도 있거든요. 약물 치료를 해도 잘 듣지 않고. 제가 독립을 한 것도 사실 공격성이 저한테 계속 표출돼서 그랬던 거예요. 동생 눈에는 집 안에서 제 서열이 꼴찌였나 봐요. 그런데 제가 없으니까 부모님을 자꾸 공격해서 문제예요.


(은아) 정말 어려우신 상황이네요. 부모님 건강도 많이 염려가 되실 테고… 혹시 지금 이용하고 있는 제도나 서비스들이 있으신가요?


(신애) 장애인 수당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동생 같은 최중증 발달장애인은 돌봄 서비스를 마땅히 받을 만한 게 없거든요. 지금 당장은 가족이 돌보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답답하죠. 


원래는 동생이 오랫동안 주간보호센터 한 군데를 다녔어요. 그런데 센터를 새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대기자가 많아지면서 대기자들과 입소자 간에 갈등이 생긴 거예요. “우린 대체 몇 년을 기다려야 되냐.”면서 1년 가까이 갈등이 계속되니 주간보호센터에서도 언제까지 기존 입소자만 받을 수는 없다고 했어요. 평생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퇴소를 해야 한다고. 그래서 들어온 순서대로 퇴소하기로 결정이 되었고, 동생이 작년 8월을 마지막으로 센터를 나오게 됐어요.


새로 생기는 센터며 시설이며 온갖 기관에 죄다 대기를 걸어놨는데 안 되더라고요. 갔는데 자리 없다고 하는 건 기본이고, 자리가 있더라도 동생 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까 좀 힘들 것 같다고 그러시고요. 


(은아) 속상하네요. 전국에 주간보호센터가 너무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인데, 중증장애인을 위한 센터에서 오히려 최중증 장애인은 꺼려한다 것도 큰 문제이고요. 그럼 혹시 활동지원제도는 활용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신애) 활동지원사도 한계가 있어요. 동생을 돌보는 일이 그분들한테는 생계잖아요. 그런데 활동지원이 돈이 많이 안 되니까 최대한 몸을 덜 쓰는 쪽으로 많이 가시더라고요. 아니면 아예 그냥 신체장애인들 쪽으로 가거나. 


제 동생 같이 돌봄 자체가 복잡한 사람을 맡으려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게다가 저희 동생 같은 경우에는 맨날 다 벗고 있으니 남자 활동지원사를 구해야 하는데, 남자분은 또 거의 없죠. 활동지원 서비스를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는 거예요. 





자리 없다고 하는 건 기본이고, 
동생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좀 힘들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신애님은 "비장애형제인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뒤로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중증 발달장애를 가진 동생은 주간보호센터나, 활동지원서비스 등 그 어떤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 동생을 돌보는 부모님의 건강이 너무나 걱정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애님이 그리고 있는 미래는 어떨까? 신애님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Written by 은아, 혜연


※ 비장애형제들의 새로운 미래찾기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세요!

<인터뷰 참여 신청> https://forms.gle/jTc5XUc8L8WF3zME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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