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_03
2. 숙희와 성운이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나 싶었다. 박상일 쪽에서 또 다른 브로커와 접선해 약속장소로 오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밤에 도강을 하기 때문인지 약속시간이 강 근처 한밤중이었다. 그러나 오겠다는 이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강 근처에서 내리 3일을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일을 그르쳤나보다.’ 하고 마음을 접고 있었는데 다시 연락이 왔다. 오늘 저녁에는 꼭 모 처로 넘어간다는 거였다. 브로커가 다시 말해준 접선장소는 이전과 달랐다. 900리나 넘는 산길에 10시간을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 날 밤을 뜬 눈으로 홀딱 새우고 다시 접선장소로 나갔다. 도착했을 때는 새벽 1시가 넘어서였다. 도착해서 드디어 박상일을 만났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 때는 겨울이었는데 강물에 젖은 몸이 꽁꽁 얼어서 사람이 다가오는 건지 걸어 다니는 고드름이 오는 건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우리는 곧장 택시를 불렀고 박상일이 택시 안에서 옷을 갈아입도록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우리가 부른 택시의 기사가 요 근방 길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던 거다. 기사는 주변 마을을 돌아다니며 길을 묻고 다니는 바람에 수상한 사람으로 여겨져 공안 수색대가 들이닥친 거였다. 그 때가 새벽 2시 즈음이었는데 나와 박상일은 따로 떨어져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 나는 밤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한 채 10시간 넘게 걸어왔기에 무척 노곤했다. 그 상태로 도강한 사람을 도왔다는 죄로 잠을 자지 못한 채 내내 앉아있어야 하는 벌을 받았다. 그런데 박상일은 나처럼 잠을 자지 못한 채로 앉아있는 벌을 받는 걸로 끝나지 않았다. 박상일이 가지고 온 배낭에서 빙두(마약)가 발견된 것이다.
중국 공안에게 마약이 걸렸다는 건 사형당하지 않으면 다행인 처사였다. 공안에게 걸리고 마약이 나오고 하자 박상일을 데리고 왔던 브로커는 브로커 비용도 받지 않고 바로 내뺐다. 나는 가벼운 처분으로 끝났지만 박상일은 달랐다. 중국 감옥으로 가게 된 것이다. 벌금형도 나왔는데 박상일은 벌금을 낼 돈이 없었다. 벌금도 2만원에서 1만원으로 금액을 깎고 깎아서 내가 대신 내어주었다. 그 난리를 친 후 나는 홀로 빈 몸으로 돌아왔다. 후에 들으니 박상일은 3년간의 감옥살이 후 북으로 호송되었다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박상일이 내게 돈이 부족하니 도와달라고 계속 북에서 편지를 보내와서였다. 그 때는 차마 외면하지 못하겠어서 도와줬던 건 도와줬던 거고 지금이 상황이 다른데도 말이다. 제발 자기 앞가림은 알아서들 했으면 좋겠다.
일이 이렇게 마무리 된 후 나는 내 자식들이나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길을 떠나야 했다. 박상일 덕에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된 터였다. 떠나는 식구들은 명남이의 딸 재희(5세)와 명희의 아들 성운이(4세)와 북한 남편 여동생의 딸(조카)인 숙희(19세)였다. 숙희는 남자친구가 잡혀가는 사단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마음이 들지 궁금했지만 남자친구가 잡혀가 저도 속이 상할 거다 싶어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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