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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Sep 22. 2022

돈이라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40대 중반 여성 K 씨가 집을 내놓았다. 어머니와 동생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딸이 집을 팔겠다고 내놓자 어머니는 이사 갈 곳을 걱정했다. 딸 집에서 그동안 잘 살았는데 이제 월세로 가야 하나 걱정하며 집을 알아봐 달라고 하셨다.


이런 경우를 종종 본다.

부모가 살던 집을 팔아 아들에게 주고 합가 하는 경우, 그랬다가 몇 개월 후 다시 나와 월세나 원룸을 알아보는 경우 등등. 또 딸이나 아들이 사놓은 집에서  어머니가 살다가 팔리면 집값은 자식들이 가져가고 어머니는 자본금이 얼마 안돼 좁혀 가거나 월세로 옮겨가는 경우.


계약이 진행되는 과정 중에 우연히 K 씨에게 어머니가 이사 갈 곳을 월세집으로 알아봐 달라며 걱정이 많으시더라 했더니 K 씨는 호탕하게 웃었다.


아유 그런 걱정을 왜 해 엄마도 참...


집이 팔리자 동생과 어머니는 이사 갈 곳을 찾아다니다가 인근 아파트에 전세로 계약했다.  전세대출을 받아 잔금을 치를 계획이었다. 계약서를 작성한 날  동생이 말했다.


"우리 이사 갈 집 계약 건에 대해서는 언니한테 이야기하지 말아 주세요. 현재 살고 있는 집에 대해서는 소유자인 언니와 이야기하고, 이사 갈 전셋집에 대해서는 우리와 이야기해주세요."


뭔가 단호한 말투와 정색한 표정이었다.

그 후로 이사날짜를 변경하다가 K씨에게 '어머니가 들어갈 전셋집 날짜도 같이 변경해야 어머니가 불편함 없이 이사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했는데, 통화 후 동생이 전화하여


"우리 전셋집 이야기는 언니랑 하지 말아 달라니까요!"


라고 딱딱하게 말했다.

음... 그간 몇 번 보아온 가족들처럼 언니 집에서 살다가 집 팔려서  이사 나가야 하니깐 서로 뭔가 불편하고 안 좋은가 보다 생각했다. 정중히 사과했다.


그리고  이사 날.


K 씨와 매매 관련  잔금 및 소유권 이전 관련 업무를 마쳤다. 이제 그 집에서 살던 어머니와 동생이 이사 들어갈 집 잔금 처리를 할 시간이었다.  동생한테 전화하려는 순간,  K 씨가 말했다.


"동생 이사 갈 집 임대인 계좌를 알려주세요"  


왜요?


"전세금 입금해주려고요~~"


아.. 나는 계좌를 알려주다 넌지시 물었다.


"전세금 중 부족한 금액을 빌려주시는 건가요?  전세대출 신청했다는데 그 나머지 차액?."


"아니에요. 빌려주는 거 아니에요. 전세금을 주는 거예요. 전세대출은 취소하라고 했어요"


그녀는 말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이 참 가난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자식들을 다 공부시킬 수 없었어요. 그런데 저는 운 좋게 공부를 할 수 있었어요. 나보다 더 공부 잘했던 큰언니가  학업을 포기하고 취직을 해서 월급을 모아 대학 등록금을 대주었거든요.


덕분에 나는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내고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MT도 갔어요.

덕분에 지금도 잘 살고 있어요.


나는 가족들에게 꼭 이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돈은 갚을 수 있지만 지나간 세월은 갚아줄 수가 없었어요.


언니가 내 인생을 위해 포기한 것들을 제가 해줄 수가 없어요. 해줄 수 있는 건 돈밖에 없어요. 그래서 애초 이 집을 살 때 여기에서 나오는 돈은 모두 언니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언니가 돈을 안 받겠대요.

그래서 일단 엄마 전셋집으로 묶어두었다가  나중에 언니에게 줄 거예요.


언니가 나를 위해 희생한 아까운 세월은 돈으로  되돌릴 수 없지만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돈 주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돈으로는 뭔가를 해줄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요.


돈이라도 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그녀는 집을 판 대금을 어머니와 동생이 살 집 전세금으로 입금하고 나머지 차액은 어머니 계좌로 송금했다. 잠시 후 동생이 왔고 언니가 전세자금을 입금했다는 말을 듣고 동생은 미안해하며 고마워했다..


나는 자매의 모습을 보며 뭉클했다.

어찌 보면 이런 모습이 당연해야 하는데 낯설고 드물다. 아무리 좋은 가족관계라도 돈에 대해서는 계산이 확실한 세상이고, 가족 중 누군가가 다른 가족을 위해 희생하였다고 해서 그것을 어떻게든 금전적으로 보상하려는 경우를 자주 접하진 못했다.


마음과 물질적 보상은 별개인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의 재산이 많은 가족일수록 상속과 증여 문제로 법적 소송에 휘말린다.

어떻게 보면 마음보다 돈이 더 우위에 있는 세상이다. 또 과거의 우리나라는 가족 중 누군가가 다른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또한 당연한 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집을 처분한 돈을 망설임 없이 전세보증금으로 넣어줄 수 있을까?

또한 과거의 삶에 대한 고마움을 돈으로라도 보상하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못할 것 같다.

그러나 '지나간 세월은 갚아줄 수 없더라'는 말은 잊지 못할 것이다.

또한 '돈으로 뭔가를 해줄 수 있는 게 참 다행이다' 라는 그 말도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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