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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Nov 22. 2022

고교 입학식 날 받은 산세베리아 모종

아들의 고등학교 입학식장에서 선생님이 조그만 산세베리아 모종을 나누어 주었다.




"어머니들!  이 모종을 3년 동안 잘 키워보세요~

이 모종이 잘 크면 대학......"



우~~~~


학부모들의 낮고 짧은 탄성이 입학식장을 소용돌이쳤다.


뭐야 3년의 꿈을 산세베리아에?

이거 혹시 산세베리아를 잘못 키워서 죽기라도 하면..!

하필 가장 중요한 고교시절에 모종을 나누어주며 그런 의미를 부여하다니....


나는 특히나 화초를 잘 못 키우는 사람이다.

제때 물 주는 걸 잊어버리기도 하고 화초의 종류에 따라 물의 양과 주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는 걸 가리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건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 썩고 어떤 건 물이 너무 없어서 말라비틀어지고...

 

그래서 화초를 선물로 받으면 남편이 "왜 받아왔어 금방 죽을 건데.."라며 혀를 끌끌 차곤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일률적으로 나누어주니 못 키운다 못 받겠다고 할 수는 없어서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안고 왔다.


사실 아이 키우는 것보다는 쉽겠지

애들이 힘들게 공부하는 것에 비하면 일도 아니지.


3년 후에 좋은 결실 내올 수 있도록 잘 키우리라 단디 결심하고 나름 규칙을 정해 공을 들였다.


헷갈리지 않게 일요일마다 물을 주어야지...


지성이면 감천인지 쑥쑥 잘 컸다. 안심되고 흡족했다.





몇 달 후 아침,

남편이  발코니를 나갔다 오더니 소리쳤다.


"아야~ 이거 밑이 다 물렀다. 버려야겠다!"


헐.... 뛰어나가 보니 밑동이 물러서 픽픽 꺾이고 쓰러진 줄기도 있고..... 아이고야... 물을 너무 많이 줬는가 보네...


"아니 1주일에 한번 물 주면 되는 거 아냐? 그게 너무 많았나?"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당신도 물 줬어?  당신 까먹을까 봐 나도 생각날 때마다 줬는데?"


헉...


아들이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주말밖에 볼 수가 없으니,

나도 남편도 아들 생각이 날 때마다 산세베리아에 물을 주었던 것이다.


아 나름 정성을 쏟은 산세베리아가 픽픽 쓰러져 죽다니.... 이를 어이할꼬~


남편도 나도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듯하다.

각자 심란한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여 만나서 머리를 모았다.


아들이 주말에 돌아오기 전에 다시 살려보자...!

그 녀석이  혹시나  보고  실망하면 어떡하냐고...


인터넷으로 조회해보니,  산세베리아 밑동이 무르면 다 뽑아내서 밑동을 잘라 그늘에 말린 다음 다시 분갈이를 해주면 된다고 적혀 있었다.



우리는 집안의 중대사에 머리를 맞댄 금슬 좋은 부부처럼 척 붙어 앉아서

뽑고 자르고 말리고 했다.ㅋ


아무튼 그나마 멀쩡한 건 겨우  이거 하나... 에게....




잘 키워보겠다고 물을 너무 많이 준 것이 문제였다.


과ᆞ유ᆞ불ᆞ급...


화초 키우는 일이나 사람 사는 일이나 너무 넘치면 안 된다는 이 진리똑같이 통용되는 듯하다.

물론 자식에 대한 사랑이나 기대도 너무 넘치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다시 생각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밤 꼬들꼬들해진 산세베리아 줄기를 다시 심었다.



주말에 돌아온 아들이 보면

어라~?  뭔가 짧아진 듯...?!

이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물러서 죽어버리는 것을 보고 실망하는 것보다야....


드디어 주말 저녁,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언제나처럼 씻고 먹고 집안을 헤집고 다니다가 불을 켠 채로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아들방의 불을 끄고 발에 차인 이불을 끌어올려 준 후,

발코니로 나와 산세베리아 앞에 한참을 쭈그려 앉아 있었다.


살다 보면  

이렇게 썩고 곪은 것을 도려내고

굳은 의지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고통이 따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희망을 가질 수 없어서...


산세베리아가 서툰  주인의 손을 거쳐 다시 잘 자랄 수 있을까?

다시 뿌리를 내리고 쑥쑥 자라서 아들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을까?


그래서 언젠가는 그 귀하다는 꽃도 피울 수 있을까?


밑둥치 잘려나간 산세베리아에게

내 마음을 괴롭히는 어떤 욕망도 걸고,

혹시나  반짝이는 사소한  꿈도 걸어보면서~

쓸데없이 단단해지는 밤이었다.



3년 후,

산세베리아는 다행히 잘 자랐고, 아들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였다.


아직 산세베리아가 죽을 고비를 넘겼었다는 걸,

그래서 엄마 아빠가 몰래 마음 졸였다는 걸 아들은 모른다.

살다 보면 굳이 알릴 필요가 없는 것들도 있으니까..


며칠 전 수능을 치르느라 고생한 수험생들 뒤에도,

이렇게 눈으로 보이거나 말로 표현되지 않는 부모들의 숱한 애달픔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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