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생일날, 일찍 잠든 머리맡에 아들이 조그만 쇼핑백을 놓고 갔다. 잠에 취해 들으니 "생신 축하드려요"라고 한 듯했다.
다음날 일어나서 쇼핑백을 열어보니 선물과 편지가 들어있었다.
아들과 딸은 글을 쓸 수 있을 때부터 어버이날과 생일날에는 항상 깨알 같은 편지를 썼다. 유치원 때는 비뚤비뚤한 글씨로 서너 줄을 겨우 채우던 것이, 이젠 갈수록 길어져서 인상을 쓰고 노려보아야 할 정도의 깨알 같은 내용들이 편지지 한 두장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유치원 때부터 편지에 항상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글귀가 있었다.
"엄마 생신 축하드려요 이다음에 돈 많이 벌어서 옷 한 벌 사드릴게요 "
"엄마 생신 축하드려요. 우리를 낳아주시고 이렇게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엄마 사랑해요. 제가 크면 옷 한 벌 사드릴게요"
"어버이날 축하드려요. 엄마 아빠 덕분에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엄마 아빠 감사해요. 저희를 열심히 키워주셨으니 제가 커서 돈 많이 벌면 나중에 옷 한 벌 사드릴게요"
옷 한 벌 사드릴게요.
옷 한 벌 사드릴게요
옷 한 벌 사드릴게요
유치원 때의 삐툴삐툴한 손 편지가 중 고등학교의 멋내기 필체로 바뀐 뒤에도 언제나 편지의 끝머리에는 "옷 한 벌 사드릴게요"가 들어 있었다.
유치원 때 선생님이 "옷 한 벌 사드릴게요"를 예시문으로 써준 것인지 아님 내가 알게 모르게 아이들 앞에서 옷을 탐하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어디서 주워들은 건지.... 아무튼 아이들은 생일 때마다 옷 한 벌 공약을 내걸었다.
그래서 어느 날 물었다.
얘 옷 한 벌만 사줄 거니? 근데 그 옷 한 벌은 대체 언제 사주는 거니? 해마다 한벌씩인 거니? 아니면 딱 한 벌을 언젠가 사주겠다는 거니?
아들이 말했다.
"제가 돈이 어디서 나서 엄마 옷을 사드려요.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야 사드리죠"
라고 했다.
그런데,, 드디어 아들이 군대 갔다 돌아온 생일날에 아들이 건네준 쇼핑백 속에 '옷'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한 벌은 아니고 티셔츠 1장이긴 하다. 아들은 학교 휴학을 하고 군 입대를 해서 제대한 지 1주일 된 상태였다. 군에서 받은 월급이 모였으니 드디어 옷을 살 수 있었던 건가. 티셔츠와 함께 역시 장문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편지에는 아들이 엄마의 옷을 사기 위해 대형 쇼핑몰을 헤매 다니고 티셔츠를 잘 안 입는 엄마를 위해 디자인을 선택하느라 고심하고 또 점원에게 엄마의 체격을 설명하며 사이즈를 고른 이야기,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초록색으로 선택한 이야기 등등이 기행문처럼 상세히 적혀 있었다.
나는 생각지도 않은 옷 선물에다 빼곡히 써 내린 편지 내용이 기특해서 고마움을 카톡으로 표현했다.
"아이고 아들 고마워. 옷도 너무 마음에 들어,. 잘 입을게. 우리 아들이 최고야"
그러자 아들은 뿌듯해하며 답을 했다.
" ㅎㅎㅎ저 나중에 돈 많이 벌건데 그때 좋은 거 많이 해드릴게요"
그냥 기분 좋은 답변이었다. 우리는 실현 가능성 여부와 상관없이 말로 효도하고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아니 사실은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자식들의 말 한마디로도 충분히 세상 다 얻은 것 같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2주 후,
아들과 함께 거주하며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딸이 집에 다니러 와서 식사를 하는 중에 말했다.
"제가 공무원이 돼서 받을 월급을 계산해보니까 엄마 아빠한테 50만 원씩밖에 못 드릴 것 같아요. 이것저것 계산해보니까 그렇게 드려도 제가 쓸 돈도 빠듯하더라고요."
헐... 나는 한 번도 용돈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아이들이 취업하면 용돈을 줄 생각을 하리라고도 예상 못했다.
"OO이(동생)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합격하면 저보다 월급이 훨씬 많대요. 그래서 엄마랑 아빠한테 150만 원씩을 드릴까 생각 중이래요. 그래서 야~ 너는 그렇게 월급을 많이 받니? 그럼 누나는 너무 빠듯하니까 네가 누나 몫까지 드려라. 아님 네가 누나도 용돈을 좀 주든지.라고 해서 둘이 티격태격했어요. OO이가 그런 건 각자 알아서 해야지 대신 해주고 그런 건 말이 안 된 되잖아요 글쎄. "
나도 모르게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요즘같이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아이들이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아직 합격도 하기 전에 합격 후에 받을 월급과 부모에게 줄 용돈에 대해 미리 계산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신기하고 고마웠다.
누군가가 당신 자식 잘 키웠네 못 키웠네 하든 말든 나는 자식 농사는 괜찮게 지은 듯하다. 요즘은 자식이 부모의 노후를 걱정하고 책임지는 문화가 자취를 감춘 세상이라, 나 역시도 내가 스스로 노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순수해서 그런 계획을 짜고 남매간에 대화를 나누었겠지만, 그래서 정작 취업이 되고 부양할 가족들이 생겨나면 또 달라질 수도 있지만, 나는 2022년 12월에 '남매의 계획'을 엿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5살 유치원 때부터 생일날마다 "옷 한 벌 사드릴게요~"라고 적기 시작한 그 편지가 어쩌면 알게 모르게 부모에 대한 부채감을 키워왔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해마다 아이들이 사랑으로 고른 옷 한 벌씩을 받아 입어왔던 것 이상으로 넘치게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