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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Mar 22. 2023

유리창에 부딪친 비둘기 한쌍

미세먼지가 그득했지만.... 따뜻한 봄기운이 어디선가 꽃봉오리 터지는 모습을 상상하게 해 주던  오후 3시경.

사무실 안에서  손님과 상담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진동이 느껴졌다.



엇!
다행히 유리창은 깨지지 않았는데 뭔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
손님이 급히 문을 열고 나가더니 소리쳤다.

"아이고 비둘기가 유리창에 부딪쳤다 떨어졌네요"

혹시나 유리창 금 갔나 싶어 유리창만 내리 훑어보다 나가보니 보도블록 위의 비둘기 두 마리.

다친 비둘기와 그 비둘기를  바라보고 있는 또 한 마리의 비둘기.



세 명이 우르르 몰려나갔는데 우측 비둘기는 움직이질 못했다. 다행히 출혈이 눈에 띄진 않았다.

남자 손님 1: 아유 부부인가 보네. 옆 비둘기도 안 도망가고 부딪친 비둘기를 쳐다보고 있네.


남자 손님 2: 부부 아니고 애인 같아요. 바라보는 눈빛이 애처롭잖아요.


중개사: 그냥 친구 같은데요? 둘 다 암컷. 원래 여자들이 더 의리 있어요 ㅎㅎ


관계(?)를 알 수 없는 비둘기들은 우리가 떠들거나 말거나 미동도 없었다. 아마 '인간들은 참 쓸데없는 수다를 떤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듯...

사무실로 들어가서  마저 상담을 이어가야 했지만, 비둘기가 신경 쓰여서 그럴 수가 없었다.



왜 못 날아가지?


걱정되어 한 발짝 더 다가가니 애인인지 부부인지 친구인지 모를 비둘기가 날아올랐다.
그래도 다친 비둘기는 여전히 그 자리를 피하지 못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도 도망칠 수 없는 상태인 거다. 비둘기는 몸을 부르르 떨었고, 깃털이 먼지처럼 쏟아졌다.

충격이 컸나 보네..



남자손님 1이 소리쳤다.

남자손님 1: 의리가 있네. 멀리 도망간 게 아니고 전선 위에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네. 역시 부부가 맞아요.


남자손님 2: 애인이라니까요. 뭔가 애잔함이 묻어나잖아요.


이 아저씨들이 진짜...ㅎㅎ

중개사: 친구라니까요. 먼 길을 함께 나선 모양인데 아프다고 다쳤다고 그래서 귀찮아졌다고 버려두지 않고 다시 몸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려주는 건 친구나 동료 간에도 가능하죠.
사람들 간에는 간혹 그러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가 한낱 미물이라고 생각하는 조류들이 오히려 우리 인간들보다 기본적인 의리나 예의가 더 강한 듯해요...
사람이 사는 곳이든 동물 세계든 생명이 있는 곳에는 그런 인지상정의 마음들이 필요하죠.  



우리가 너무 시끄러웠는지 비둘기는 한쪽 구석으로 종종종종 자리를 이동했다.

남자손님 2가 "물 좀 먹고 힘을  내라" 며 종이컵에 물을 담아서 가져다 놓았다.



비둘기가 머물던 자리. 부딪친 충격으로 떨어져 내린 깃털과 토사물.

1시간 반쯤 지나자 드디어 비둘기가 휙 날아올랐다. 기운을 차렸나...



전선줄 위에서 기다리던  애인인지 부부인지 친구인지 모호한  비둘기와 함께 서서히 날아올라 바로 옆 동 아파트 지붕 위에 앉았다.

비둘기 1: 기다려줘서 고마워. 덕분에 빨리 회복됐어. 아마 나 혼자만 남았다면 이렇게 빨리 힘을 내지 못했을 거야...

비둘기 2: 고맙긴 뭘... 당연한 거 아니야?  대신 날아다닐 땐  앞 좀 잘 보고 다녀.


뭐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ㅎㅎ

그리고 또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다시 30분쯤 후 어디론가로 이동했다.  




어... 산수유 꽃이 피었네..


꽃은 며칠 전부터 피었을 테지만 아등바등 살다 보니 이제야 보았다.

비둘기 덕분에 산수유 꽃을 보았다. 비둘기가 무사히 날아가는 모습을 보려고 밖에서 오랫동안 서성인 덕분에...

동료 비둘기가 2시간여를 맴돌며 기다려주니, 다친 비둘기가 충분히 기운을 차리고 다시 날 수 있었다. 이런 일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네...

나도, 그리고 우리 모두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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