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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콩 Aug 09. 2023

3개월 후에 무조건 빼주라고? 그럼 계약서는 왜 썼어!

나는 이 법 조항에 반대일세!


지루한 더위에 지쳐 자장면을 휘적거리고 있는데,

임대인 K 씨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아니 그럼 계약서는 왜 썼냐고요!

작년 가을에 내가 돈이 필요해서 집을 팔까,

아니면 세라도 올려서 내놔볼까 할 때 안된다며!   

애들 학교 때문에  2년은 더 살아야 한다며!! "



생각난다.

세입자 만기가 작년 9월이었다. 그 세입자는 내 기억에도 까마득한 2014년 9월 중순에 당시 저렴한 전세로 입주하였다. 그 뒤로 서로 특별한 언급 없이 계속 살다가, 마침 돈이 필요해진 임대인이 작년 9월 만기를 2달여 앞두고 이제는 집을 팔고 싶다고 나가달라고 했다.


임대인은 아들 장가보낼 계획이라 여러모로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동일조건으로 8년씩이나 살았으니 나가달라고 한 것인데... 그건 임대인의 마음이었고 임차인은 달랐다.


당시 전세매물이 귀하고 시세가 많이 급등한 상태여서 이사 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임차인은 당연히 거부했다.



"오래 살긴 했지만 묵시적 갱신으로 살아온 거니

이제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해서 2년을 더 거주하겠어요."  



법적으로는 전혀 하자 없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원래 법이 사람 저마다의 가슴까지 닿는 데는 다소 시일이 걸린다. 임대인은 중개사인 나에게 전화하여 노발대발했다.



"전세 시세가 올라도 세입자 생각해서 한 번도 안 올리고 계속 살게 내버려 두었는데,,, 내가 마침 돈이 필요해서 집세를 올리거나 팔고 싶다고 하니 법이 어떻고 하면서 자기주장만 하다니요!"



중개업을 오래 하다 보니 사람의 사고는 단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거의 모든 임대인은 본인이 임차인한테 너무나 잘해준, 많은 것을 배려해 준, 보기 드문  임대인이라 생각하고, 반면에 임차인은 본인이야말로 웬만한 건 다 알아서 고치며 임대인을 배려해 준 최고의 임차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굳이 정정하거나 바로잡으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첫째, 바로 잡히지 않을 것이므로... 둘째, 굳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으므로...


나는 임대인을 달래고 이해시켰다.

2020년 7월 말 임대차 3법이 시행된 이후로 임대인이 실거주하는 등의 불가피한 사유가 아니라면, 임차인은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여 5% 이내로만 인상하고 2년을 더 거주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아니 우리 세입자는 8년이나 살았다니까요?  2년만 산 게 아니라?"



2020년 7월 말 개정된 법은, 그 이전에 임차인이 동일주택에서 몇 년을 살았는지는 전혀 의미가 없다. 모두 리셋이다. 이 법이 개정된 이후로는 무조건 1회에 한해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여 2년을 더 거주할 수 있다.


무슨 법이 그 모양이냐고 투덜대던 임대인은 결국 체념하였고, 나는 임대인과 임차인에게 5% 인상한 계약서를 작성해 주었다..  


그런데 재계약서를 작성하여 연장계약을 한지 몇 개월 안 되어 갑자기 임차인이 이사 나가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하필이면 얄궂게도, 은행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들고 인근 신도시 입주물량이 몰리는 바람에 역전세난이 심화된 시기였다.


집을 내놔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자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한 재계약이니,

임차인은 언제든지 이사 나가겠다고 통지할 수 있고,

임차인이 해지통지를 한 후 3개월 후에 임대보증금을 반환해주어야 한다"


는 것이 요지였다.


이번에도 역시 임차인의 주장은 적법한(?) 것이었고, 이번에도 역시 임대인은 노발대발하였다.



"무슨 법이 이래? 그럼 계약서는 왜 썼어!

마음대로 나갈 거면 계약서는 왜 썼냐고!!"



8년을 산 세입자가 돈이 필요하여 전세보증금을 시세대로 인상해 주거나 집을 팔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임대인의 부탁을 거절하고,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였다.


임대인은 법이 그렇다 하니 어쩔 수 없이 수락하고 재계약서를 작성해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하필 부동산 경기가 최악인 순간에 이사를 나가겠단다. 이사를 나갈 테니 무조건 3개월 후에 보증금을 빼달란다.


오죽하면 내용증명을 받자마자 한달음에 부동산 사무실로 달려왔을까..


근래 들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여 재계약한 임차인은 만기까지 채우지 않고 언제든지 계약해지를 할 수가 있다.  임차인이 이사 나가겠다고 통지하면 통지일로부터 3개월 후에 임대인은 보증금을 반환해주어야 한다. 반면 임대인은 계약기간 전에 이사 나가라고 하지 못하고 계약기간을 지켜주어야 한다.


중개사인 내 눈에도 이 법은 하자를 안고 탄생하였다.


무슨 법이 이래.....

무슨 법이 이래.....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 3(계약갱신 요구 등)

④ 제1항에 따라 갱신되는 임대차의 해지에 관하여는 제6조의 2를 준용한다.
 제6조의 2(묵시적 갱신의 경우 계약의 해지) ① 제6조 제1항에 따라 계약이 갱신된 경우 같은 조 제2항에도 불구하고 임차인은 언제든지 임대인에게 계약해지(契約解止)를 통지할 수 있다. <개정 2009. 5. 8.>
② 제1항에 따른 해지는 임대인이 그 통지를 받은 날부터 3개월이 지나면 그 효력이 발생한다.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해 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상대방인 임대인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여서는 안된다.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한 임차인을 둔 임대인은 어느 날 갑자기 임차인이 이사 나간다고 할까 봐 마음을 졸이며 상시대비하고 불안해하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심한 경우 임대보증금 반환소송으로 인해 집을 경매 날려야 하는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갭투자니 뭐니 따지기 이전에 임차인이 갑자기 나간다고 할 때 편안하게 보증금을 반환해 줄 준비가 되어있는 임대인은 이 나라에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임차인은 임대기간 중 갑자기 저렴한 조건의 매물을 발견하면 언제든지 나가겠다고 통지할 수 있게 되었다.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여 재계약한 순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사이에 두고  동상이몽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이건 너무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시장 구조가 아닌가...


애초 임대차 3 법을 입안할 때 왜 당장 눈앞에 보이는 효과만 생각하고 그에 뒤따를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법이라는 것은 장점, 단점, 부작용, 기대효과 등등 모든 것을 다방면적으로 고려했어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덕분에 2023년 대한민국은 최악의 역전세난을 맞고 있다.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해 거주하다가 갑자기 이사 나가겠다는 임차인들이 줄을 잇자, 보증금 반환해 줄 여력이 안 되는 임대인들을 위한 특례상품도 일시적으로 쏟아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어디에도 없다. 여기저기 분쟁과 항의와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나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갱신권 쓴 임차인이 계약기간을 안 지키고 해지 통지 후 3개월 후에 보증금을 반환해줘야 한다는 임대차법에 반기를 든 최근 판례!


김 모 씨는 지난달 자신의 서울 목동 아파트 세입자에게서 전세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내용증명 문서를 받았다. '계약갱신권을 쓴 경우 세입자는 언제든 집주인에게 계약 해지를 통지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을 거론하며 '3개월 안에 전세금 6억 원을 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기한 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법원에 임차권 등기명령을 신청하겠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김 씨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세입자가 2년 더 살 거라 생각하고 김 씨도 전셋집을 새로 옮겼는데, 전세 재계약 3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라 당장 전세금 반환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김 씨는 "법이 2년 더 살 권리만 보장하는 줄 알았지 세입자에게 조건 없는 갱신해지권까지 부여하는지 처음 알았다"며 "나 역시 집주인이면서 세입자인데 이렇게 계약 내용을 한 번에 허무는 게 과연 합당한 법인가"라고 토로했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최근 '6조의 3의 4항'을 근거로 계약갱신 해지가 가능하다며 세입자가 집주인을 상대로 낸 보증금 반환 소송에서 예상을 깨고 집주인 손을 들어줬다. (서울북부지방법원 2023. 4. 13. 선고 2022 가합 21044 판결)


법원은 4항이 준용하는 6조의 2의 취지가 "임대차가 별도의 기간을 정함이 없이 갱신된 경우에 한해 적용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세입자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대차 2 법을 근거로 한 일방적 갱신 해지 사용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인적 신뢰관계가 존재해야 하는 계약에서 임차인에게만 계약소멸(해지)을 강제하는 형성권을 부여하는 것은 법논리적으로 모순이고 법익 균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갱신요구권을 사용했다는 건 임차인의 적극적 의사표시로서 묵시적 갱신과 엄연한 차이가 있다. 그러니 묵시적 갱신이 아닌 합의에 의한 갱신을 준용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직 개업공인중개사로서 나는 이 판결이 너무나도 반갑다.  

묵시적 갱신이 아닌 상호 합의하여 재계약을 하기로 하였으면 그 계약기간은 지켜져야 한다. 지키지 않아도 될 계약이라면 굳이 2년 기한을 정하여 재계약서를 작성할 필요도 없다.



상호협의하여 작성한 계약서를 부인하는 법에 무슨 대단한 효과를 기대하겠는가.



위의 서울북부지방법원 판결은  하급심 판결이라 향후 항소심에서는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졸속개정된 법 조항으로 인해 더 이상 분쟁이 속출하지 않도록, 조속히 바로잡혔으면 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임차인을 위한 법이라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임차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도 백번 동감하지만,


반면에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고 분쟁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에는 적극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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