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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사의 천태만상 현장일기(23)

중개사들이 회의해서 부동산 가격을 결정한다고?

by 양콩

7~8년 전에 조그만 빌라를 사서 월세를 놓고 있는 임대인이 전화를 했다.

임차인이 월세 소득 신고를 안 할 테니 월세를 깎아달라고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임차인 잘 안다. 1년 전에 한참 월세가 안 나갈 때 시세보다 저렴하게 계약하고 입주했다.

그런데 간간히 커피 한 잔씩을 들고 와서 '어느 집은 아주 싼 월세로 들어왔다는데' '어떤 사람은 20만 원이나 싸게 살고 있다는데' 하면서 자기 집은 너무 비싸니 임대인한테 말해서 깎아달라고 했다.


매번 지치지 않고 설명했다.

그렇게 싼 월세는 없다 지금도 시세보다 싸게 살고 있다 등등. 그래도 누군가 싸게 살더라고 우기면 몇 동 몇 호냐고 물었다. 그러면 말끝을 흐리고 돌아갔다.


그러더니 어제 회의가 있어서 나가려는데, 임대인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임차인이 밤낮으로 전화해서 본인이 너무 비싸게 살고 있으니 세를 조금만 깎아달라고 조른단다.


어떤 날은 옆집 고양이 소리 때문에 시끄러우니 깎아달라고 하고, 어떤 날은 동네 수준이 너무 낮으니 깎아달라고 하더니, 어제는 월세 소득 신고를 하겠다! 그러면 임대인도 세금을 내야 하니 차라리 월세를 깎아주면 신고를 안 하겠다고 반협박식으로 말하더란다.


어찌하면 좋겠냐고 묻길래, 임대소득 신고는 하는 게 당연하니 임차인한테 시달리지 말고 깔끔하게 신고해라 그래도 월세가가 싸니까 거의 세금은 안 나올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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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달렸는지 전화를 안 끊으면서 계속 하소연을 하길래


"제가 오늘은 회의가 있어서 가는 중이니 내일 전화드릴게요"


라고 했다.

그랬더니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전화해서, '여기저기 알아보니 시세보다 싸게 살고 있는 것이 맞다 그러니 월세를 더 내려줄 수는 없다'라고 전달한 모양이다.


그것이 발단이었는지 다음날 아침부터 임차인이 전화해서 계속 징징대길래 계약 기간 중이니 임대인하고 협의하라 하고 끊었다. 다시 1시간 뒤 임대인이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다. 임차인한테 월세가 더 싼 곳이 있으면 나가라고 했더니


임차인: 다른 집은 다 싸다는데 이 부동산이 세를 비싸게 놓는 것 같아요.


임대인: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이 중개사님이 공인중개사협회 간분가 뭔가 되시나 보던데, 그런 분이 어떻게 세를 비싸게 받겠어요?


임차인: 아 그래요? 무슨 간부시래요?


임대인: 그러니까 어제도 회의 가셨겠죠. 우리가 세를 놓으려면 부동산들이 다 회의해서 결정할 거 아니에요. 회의로 결정하는데 마음대로 싸게 비싸게 놓을 수가 없지요. 어제도 그것 때문에 회의하러 가시는 것 같더라고요.


임차인: 아~ 그래요? 회의해서 결정했으면 맞겠네요.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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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여기까지 듣다가 마시던 커피를 뿜었다. 공인중개사들이 회의해서 월세 놓을 가격을 결정하다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임대인이랑 그 말에 순순히 동의하는 임차인.


통화하다가 자지러지게 웃으니까 임대인이 왜 웃냐고 물었다.


"부동산 임대 가격은 시장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거예요. 임대인이 싸게 놓겠다고 가격을 낮추면 좀 더 빨리 계약되는 거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올려 받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기다리는 거죠. 타인 소유 부동산에 대해 중개사들이 회의로 가격을 결정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어요."


내가 웃으니 임대인도 덩달아 웃었다.

집값이 오르면 중개사들 탓이라고 매도하는 정부나 국민들이 있는데, 중개사들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그들은 믿지 않는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고 끝까지 우기면 진실이 되기도 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이 순진무구한 임대인 임차인 말처럼 아예 우리 중개사들이 A빌라 매매가는 얼마, B빌라 전월세 가는 얼마, C아파트 매매가는 얼마... 이렇게 회의로 가격 감정해서 결정하고 국민들이 말없이 따르는 것으로 정책을 바꾸는 것은 어떨까?


물론 말 꺼내기도 전에 나는 맞아 죽을 게 뻔하다.

그러나 어떤 정책이든 명암은 있고 모든 국민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수는 없지만,

가끔은 부동산 관련 너무 황당한 법안이 발의되거나

시장을 옥죄어 순식간에 국민을 피해자로 만드는 정책이 쏟아지기도 하는 세상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것뿐이다.


며칠 동안 귀찮은 공방전을 하다가 중개사들이 회의로 임대가격을 결정한다는 말에는 두말없이 공감하고

분쟁을 마무리한 임대인ㆍ임차인의 모습에 뜻 모를 미소를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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