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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사의 천태만상 현장일기(22)

80억 주차장 계약의 감동

by 양콩

"안녕하세요~ 대표님! 잘 지내셨지요? "


바쁜 시간에 웬 남자가 반갑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기억이 안 났다.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무려 2년 전 지역조합주택 설명회에서 만난 시행사 박팀장이라고 했다. 당시 지역에 첫 지역조합주택 사업이 있어 참석했다가 토지 매입에 대해 몇 가지 공개 질의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명함을 주고받았던 모양이다. 그는 2년 만에 전화를 걸어와 중심 상권의 OO주차장 부지를 사고 싶은데, 물건을 좀 알아봐 달라고 했다.


지도를 펼치고 물건 장부를 살펴보다가 근처에 기억나는 중개사가 있어 연락했더니, 다행히도 그 주차장 매물을 가지고 있었고 소유주와 친분이 있어 게약 진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살다 보면,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절묘한 우연'이 있다. 물건은 자그마치 700평 8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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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팀장에게 그 중개사의 연락처를 넘기며 말했다.


"이야기해놨으니까 통화 한 번 해보세요. 저는 이제 계약을 해야 해서요."


마침 미리 잡아놓은 2억짜리 아파트 전세 계약 시간이 다 되어서 좀 정신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쉽게 접하기 힘든 80억짜리 매물이라도 누군가의 소중한 재산인 2억짜리 계약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될 일은 쉽게 되기도 하듯이, 다행하게도 시행사랑 중개사가 서로 만나 물건을 확인하고 여러 가지 조율을 한 뒤에 계약하기로 했다는 연락이 왔다.


2년 전 설명회에서 잠깐 본 나를 기억해 내 전화했고, 그 우연한 전화 한 통이 서로를 엮으며 이어져서

거래가가 큰 물건을 한번 보고 당일 날 바로 계약하게 하다니.... 중개업 20년 차 나름 베테랑급이라 자부하는 나로서도 다소 이례적이었다.


며칠 후 중개사무소에서 모두 함께 만나 계약을 했다.

사전에 상대 중개사와 함께 모든 주변 상황과 허가 관련 제반 조건에 대해 확인설명 사항을 꼼꼼히 정리해 두었기에 계약은 매끄러웠다.


사실 아파트 단지에서 중개업을 시작한 나에게 80억 계약은 그저 '헉'이었다. 헉 80억.

그래서 더 철저하게, 더 꼼꼼히 확인하고 준비하여 완벽한 계약이 되도록 만전을 기했다.

계약금 10%가 넘어가고 완결된 후 모두 우르르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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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의 수수한 소유주, 개성이 강한 60대 시행사 대표.

두 사람 사이에서 나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어색했다.


소유주는 말했다.


"50년 동안 새벽같이 일어나 쓸고 닦고 관리하던 토지를 파니 허전하네요."


요지의 모양 좋은 땅인지라 그동안 숱한 시행사며 컨설팅 업체들이 입질을 했는데, 서류만 들고 무조건 밀어붙이는 그들이 못 미더워 번번이 집으로 찾아와도 안 판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시행사나 매수 의뢰인들이 아들 소유의 카페를 찾아내 몰려가곤 했는데, 아들도 부모님의 의중을 알고 번번이 거절했다고 한다. 상업적 목적으로 다짜고짜 돈부터 들고 찾아오는 그들이 왠지 못 미더웠고, 이처럼 지인 간의 거래나 개발업자와의 직거래로 장기간 소송에 시달리며 고생하는 주변인들의 사례를 풍문으로나마 들은 적이 있어서 더욱 신뢰가 안 갔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이 시행사도 소유주와 아들이 직접거래 시도를 불편해하고 거절한다는 소문을 듣고, 매물이 접수된 곳을 찾으려고 인근 중개사무소들을 여러 곳 방문했는데 어느 곳에도 그 주차장 매물이 의뢰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안 되겠다 시간이 너무 지체됐으니 어쩔 수 없이 직접 찾아가 부딪쳐볼까 하다가, 그러다 역효과 나면 아예 물 건너가게 되니 확실히 소유주를 작업할 수 있는 중개사무소를 찾으라는 엄명이 내려졌다.


머리를 맞대던 박팀장이 마침 2년 전 설명회 때 한번 본 적 있는 나를 기억해 낸 것이다. 나는 주차장처럼 생기지도 않았고 지역토박이도 아니라 연관성도 없고, 또 박팀장은 내 사무실이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지도 모르는데, 왠지 나랑 연락되면 뭔가 해결을 해줄 것 같아 혹시나 하고 연락했다고 한다.


나 또한 중심상가를 방문할 때는 그 주차장에 주차를 한 적이 여러 번 있지만 소유주도 모르고 매물이 나온 사실조차 몰랐는데, 평소 친분 있던 중개사가 지역토박이라 왠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전화했는데 그 감이 딱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그 중개사가 마침 소유주 아들과 선후배 사이여서 전속중개를 의뢰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계약 진행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살다 보면 우연인 듯하면서도 설명되지 않는 선물 같은 순간들이 있는데 이 계약이 바로 그러했다.

시행사 대표는 말했다.


"아드님이 운영하는 카페에 가서 여러 차례 차만 마시다 조용히 돌아왔습니다. 사업하는 입장에서는 경기 흐름에 따라 준공 시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마음은 조급했지만, 중개사를 통해 계약하고 싶어 하신다는 소문을 듣고는 오히려 안심했습니다. 저도 중개보수를 내더라도 책임 있는 계약이 편하거든요."


시행사대표는 뻘쭘해하는 나를 바라보며, 덕분에 원하던 물건을 계약하게 됐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소유주도 가질 만큼 가진 재력가이지만 다른 건 몰라도 부동산 계약만큼은 중개사무소를 통해서 해야 한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수시로 들락거리는 시행사나 컨설팅이 혹할만한 조건을 제시해도 그 유혹을 뿌리치며 어서 빨리 중개사무소를 통해 연결되기를 기다려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늙기 전에 처분하고 싶었던 주차장 부지를 두 중개사님 덕분에 무사히 계약하게 되어 감사하다며 식사비까지 계산했다.


그동안 누군가 돈 보따리 들고 찾아올 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로 거절했더니


"그 땅 평생 못 팔 거다!"


라는 악담까지 하고 간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내가 직접 발로 뛰며 노력하고 애쓴 계약이 아니라는 자격지심에 계약 시 참석하는 것도, 식사자리 끼는 것도 불편하던 참이었는데 매도인, 매수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알게 모르게 움츠려 들었던 어깨가 갑자기 쭈~욱 펴졌다.


모든 계약이 이렇게만 진행된다면 참 바람직한데 말이다. 소유주도 알고 물건도 알지만 중개사를 통해 계약해야 한다! 그게 가장 안전하다! 고 느끼고 인정해 주는 분위기.


2억짜리 아파트 계약서 쓴다고 건성으로 넘길뻔한 80억 계약이지만, 어쨌든 중개사 통한 계약으로 흡족해하는 의뢰인들을 보니 기분이 참 괜찮아졌다.


앞으로 중개업을 이어가는 동안 800억짜리를 쓰게 될지 8000억짜리를 쓰게 될지, 아니면 내 스케일에 맞게 2~3억짜리에 삐질거리며 동분서주하게 될지 모르지만

아무 말 않고 모래알 같은 밥만 꾸역꾸역 먹고 있어도,


"부동산계약에는 공인중개사가 꼭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안심이다!"


고 말해주는 큰 손님들을 만났던 건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주차장 부지에 세워진 오피스텔은 한 달 만에 완판이 됐고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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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후 이번엔 시행사 대표가 직접 전화하여


"주변에 다른 부지 좀 찾아달라 후사하겠다"


고 하였다. 그래서 그땐 아파트 계약이고 뭐고 뒷전으로 미루고 열심히 찾아보았는데

기어코 못 찾았다.


역시 될 계약은 쉽게 되고 안될 계약은 용을 써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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