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놈의 코로나, 사라져야 할 무등록 컨설팅업자
역사적인 수능날 오후, 젊은 남자가 전화를 했다.
소형 평형에서 오래 거주한 부모님을 30평대로 옮겨드리고 싶다 하더니, 1시간 후 어머니와 함께 방문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나는 어머니의 눈빛을 기억해 냈다.
10년 전쯤 퇴근 무렵에 찾아와 숨죽여 울던 60대 후반의 여성분. 당시 인근에는 동네 이장이 식당을 운영하며 똠방 노릇을 하다 '푼돈 식당보다 부동산이 돈이 된다'며 중개사를 고용해 중개사무소를 차렸다.
동네 토박이다 보니 부동산 거래를 제법 했는데, 그러다 안 보인다 싶으면 구속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해에 몇 번씩 중개사가 교체됐다. 중개사마다 소송도 걸리고 어쩌고 시끄럽더니 어느 날 아침 폐업을 하고 종적을 감췄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니 오히려 동네가 흔들거렸다. 피해자들이 하나둘씩 나에게 찾아왔다.
70대 할머니는, 이장 와이프가 형님 형님 하면서 밥도 사주고 음식도 해다 주어서 세상에 이렇게 살가운 사람이 있나 싶어 흠뻑 빠졌다. 어느 날 아파트가 급매로 나왔는데 너무 좋은 물건이니 같이 사자 두배로 불려주겠다 해서 두말없이 5,000만 원을 주었단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집문서' 한번 안 보여주니 밤잠을 설치게 되었다고 찾아왔길래, 동호수를 물어보니 내가 관리해오고 있는 집이었다. 10여 년 동안 임대를 내왔지만 소유권이 변동된 적은 없었다.
결국 남의 집으로 돈만 뜯어간 것이다. 할머니는 앓아누웠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 돈을 떼인 주민이 한둘이 아니었다.
수천만 원씩 주고도 의미 없는 차용증 하나 달랑 들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차용증은 그 자체로는 안전장치가 될 수 없는데, 그걸 모르고 맹신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은 형님 동생 하며 살갑게 구는 그들 부부에 흠뻑 빠져서 이런저런 사유로 돈을 건넸다가
어느 날 잠적하고 나니 혼비백산이 되었다. 계모임으로 연루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 어머니도 그 피해자들 중 한 분이었다.
고향 선후배라서 달라는 대로 주었다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는데, 벙어리 냉가슴 앓던 중에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 거래 한번 안 해본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소형평형 집도 빌려준 돈 대신 당분간 전세로 들어가 살고 있으라 해서 입주한 건데, 선순위 근저당권이 꽉 찬 상태여서 몇 개월 만에 경매 넘어갈 상황이 되었다. 빌려준 돈을 돌려받기는커녕, 졸지에 마지막 전 재산인 전세금까지 날릴 상황이 되어 혼비백산한 그들은 결국 그 집을 인수하여 눌러앉게 되었단다.
어느 날 밤 찾아와 그 상황을 하소연하며 앞으로 어찌해야 하냐고 울먹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장성한 아들 손을 잡고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돈이란 돈은 다 날리고 빚만 잔뜩 안은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인수한 소형평형에서 아들이 장성하도록 살았는데, 최근 남편의 건강이 악화돼 큰 수술을 하게 되었단다. 그러자 아들이 더 늦기 전에 대출이라도 받아서 넓은 집으로 옮겨드리겠다고 설득하여 큰맘 먹고 따라나선 것이다.
나를 보자마자 예전에 느닷없이 찾아와 하소연하고 위로받던 생각이 떠올랐는지 눈물을 글썽거리자,
나도 울컥해져서 어깨를 한번 안아드린 후 팔짱을 끼고 따라나섰다.
전망 좋은 집을 하나 보더니 너무 좋아하길래 덩달아 신나서 대화 나누다가 사무실로 돌아와 나란히 붙어 앉아 물건분석 등 대출상담을 해주었다. 가격조율을 부탁한 뒤 또 가볍게 포옹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어제 아침, 가격 조율을 하고 계약 시간을 잡자고 전화했더니 탁한 목소리의 어머니가 계약을 일주일쯤 후에 하자고 했다.
"내가 어제 집을 보고 와서 저녁을 먹은 뒤부터 갑자기 심하게 앓았어요.
열도 나고 기침도 하고 목도 아프고.. 그래서 아침에 코로나 검사를 했더니 양성이래요."
헐..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어제의 잔상들. 나란히 앉아 대화하고 호호거리고 팔짱 끼며 집보고 등등.
나는 어제 이상했다.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데 유난히 바짝 붙어 앉아 호호거리고 연달아 서로 껴안고 등등....
나는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나요?"
"계좌 알려주면 계약금 먼저 걸고 다음 주쯤 하자니까요?"
"아니요 계약 말고 저는 어떻게 되나요 저는 흐엉.."
그 뒤론 목도 아파오기 시작했고 두통도 느껴지고 온몸이 욱신거렸다.
집에 와서도 남편과 거리 두기를 하며 잔소리 샤워를 했다. 아침에 키트로 검사해 보니..
나는 위로의 팔짱을 껴댄 덕에 코로나와도 팔짱을 끼게 되었다.
망할 놈의 코로나는 언제 지구를 떠나나.... 아니다. 사라져야 하는데 아직도 안 사라지고 부동산 거래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는 망할 놈의 똠방들, 자격증 대여업자들, 무등록 컨설팅 업자들.
하지만 다행인 건 오래된 상처 옆엔 늘 새로운 희망이 찾아온다.
물론 모든 희망에는 일정 정도의 리스크가 따라붙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