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부동산 대표님 보통이 아니죠?
"여기 부동산 대표님 보통이 아니죠?"
그날은 지역의 전통 문화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행사장에 있는데, 중개보조원으로부터 일이 겹쳤으니 일찍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사무실로 복귀했다.
행사 때문에 모자 쓰고 캐주얼 차림인 게 다소 걸렸는데, 사무실에 막 도착하니 사전 약속했던 여자손님이 들어왔다.
그 손님은 전날 전화로 인근아파트 24평을 매매하고 싶다고 하였다. 손님과 함께 내 차로 이동하여, 인근아파트 중개사무소랑 미리 약속해 둔 매물을 하나하나 훑어본 후 돌아오는 길에 손님이 느닷없이 말을 꺼냈다.
"여기 부동산 대표님 보통이 아니죠? 젊은 여자라는데 아주 깐깐하고 까칠하고 뻣뻣하고.."
"네? 아..."
얼결에 모자를 꾹 눌러썼다. 그리고 물었다.
"아.. 잘 아시나요~?"
"알지.. 내가 이 동네 중개사들 다 알아요. 아는 동생이 여기서 집을 샀다는데 여기 대표가 보통이 아니라고, 내가 집 산다니까 여기 가지 말고 저쪽 단지 중개사무소에서 알아보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라고. 아주 보통이 아니래. 그래서 어찌 생겼나 궁금해서 좀 보려 했는데 없네..."
아....(아 기분 나빠)
"왜요? 어떻게 보통이 아니래요?"
"몰라 암튼 보통이 아니래. 여기서 절대 계약하지 말래.
하긴 뭐 중개사들이 만만한 사람이 있겠어. 암튼 여기 대표님한텐 말하지 마요. 비밀이야"
비밀은 또 뭔 비밀이야. 나 여기 있는데...
"네.... 그런데 아는 분이 우리 부동산에 가지 말랬다면서 왜 오신 건가요? 그분 말대로 그쪽 단지 중개사무소로 직접 가시지 않고"
"아.... 근데 여기 대표가 일은 똑 부러지게 잘한대요. 그래서..."
뭐래는 거야. 절대 가지 말래 놓고 왜 일은 잘한다고 한 거야... 뭐 도통 앞뒤가 안 맞네.
아무튼 둘러본 물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집 하나를 골라 금액 조정을 부탁한 후 헤어졌는데......
기분이 너무 나빴다. 후덥지근한 어느 여름날 낯선 사람의 땀냄새를 들이마신 느낌...
중개보조원이랑 한바탕 웃프게 수다를 떨고 털어냈는데, 그녀에게서 계속 전화가 걸려왔다. 어쩔 수 없이(?) 금액 조정을 하여 다음 날 계약을 하게 되었다.
아파트 매물을 연결해 준 중개사무소에 만나기로 약속을 한 후 도착하자, 미리 와 있던 손님이 나를 보고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어색하게 계약을 마치고 헤어졌다. 헤어진 후 다시 그 중개사무소 찾아가 내가 대표공인중개사가 맞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더라는 후문이다.
잔금 전에 하자 처리 문제로 매도인과 약간의 분쟁이 있었지만 잘 해결되었고, 중개보수도 바로 입금해 주었다. 그런데 나는 계약 시부터 잔금 시까지 그 손님을 보고 한 번도 웃진 않았던 것 같다. 기분이 문제가 아니라 어색해서 예의가 차려지지 않았다.
'한 번도 본 적 없으면서 내 험담을 하고 다니던 사람이여!
아파트 중개가 잘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마주칠 일 없겠지!' 생각하고 정중히 인사한 후 헤어졌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녀는 그 뒤로 회사 직원 집 구해달라고 전화하는가 하면, 사무실에 군것질 거리를 사가지고 방문했다.
또한 가족들이 이사할 때도 나에게 전속으로 의뢰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직접 농사지었다는 알배기 배추로 겉절이를 한통 담아서 들고 온 그녀는 내게 김치통을 내밀며 말했다.
"대표님! 저랑 동갑이시던데 친구 하시면 어때요?"
내가 왜 저런 친구를...? 첫 만남에서 내 험담을 하던 사람이 손님을 연결해 주고 간식을 사다 주었다고 친구를 맺을 만큼 난 외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김치통이랑 친구를 딜하자는 건가? 나는 씨익 웃고 외면했다.
그녀가 올 때마다 내가 불편해하고 싫어하는 걸 너무나 잘 아는 중개보조원이 킬킬킬킬 아주 재밌어했다.
그녀는 김치통을 탁자에 놓고 돌아갔고, 이틀 후 다시 와서 같이 저녁을 먹자며 죽치고 기다렸다.
그래서 드디어 내가 물었다..
"우리가 친구가 되겠어요? 사실 난 좀 불편해요.
첫인상, 첫 느낌을 중요시하는 사람인데 우린 안 좋았잖아요."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술술 풀었다.
나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고향 동생이라고 했다.계약하지 말라, 보통이 아니다는 식의 추상적인 이야기만 듣고 구체적 내용은 듣지 못했기에, 아파트 계약을 체결하고 난 뒤 찾아가서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고향 동생과 나 사이에 있었던 대충의 사건을 전해주었는데, 듣다 보니 몇 개월 전 발생한 사건이 떠올랐다.
전셋집을 구하러 온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예전에 인근에서 분식집을 하던 사람들이라 그 가족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마침 전세가 귀한 시기여서 물건이 딱 한 개뿐이었다. 보여줬더니 아주 마음에 들어 하면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냐고 물었다.
은행상담사 연락처를 주면서, 일단 계약을 한 후에는 전세대출이 안 된다는 이유로 계약해제가 안되니, 계약서를 쓰기 전에 확실히 전세자금 대출이 가능한 지 확인 먼저 해보라고 권하였다. 확인하기 좋게 등기사항증명서까지 뽑아 건네면서, 전세물건이 귀하니 빨리 대출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연락 달라! 그때까지는 물건을 다른 손님에게 안 보여주고 잡아놓겠다고 약속까지 해주었다. 그녀는 너무 고맙다며, 제발 다른 손님 보여주지 말아 달라며 재차 부탁하였다.
그래서 연락 오는 손님들을 보류시켜 놓고 기다렸는데 3일 후에 전세자금 대출이 안 돼서 계약을 못하게 됐다는 연락이 왔다. 안타까워하며 기다리고 있던 다른 손님과 연결하여 계약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계약이 다 끝난 후에 임대인이 말했다.
"실은 이 집이 3일 전에 계약이 됐었어요. 물건을 내놓은 적도 없는 다른 부동산에서 갑자기 연락 와서, 이 집을 꼭 하고 싶은 분이 있으니 제발 계약해 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계약하러 만나서 보니 예전에 이 동네에서 분식집 했던 젊은 부부더라고요."
헐....
그런데 계약을 하면서 전세자금 대출을 알아봐야 한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집주인이 OO부동산 대표님은 전세대출 같은 건 계약 전에 미리 확인하게 하던데? 했더니 그 부동산이, 아니라고 웬만하면 다 나오니 계약부터 하는 게 맞다고 주장하여 계약이 진행됐다.
그리고 이틀 후 전세대출이 안 나온다고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중개사와 손님이 하루 종일 전화를 해대서 결국 돌려주고 해제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중개사도 나름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 손님은 내가 본인을 위해 다른 손님도 보류시키고 있는 상황을 알면서 뒷북치기를 한 사실에 나는 황당했다.
며칠 후.
그 손님과 부동산이 다시 월세를 구하러 왔길래 물건을 보여주고 계약을 체결해 준 뒤에, 나는 두 사람을 앉혀놓고 이야기했다. 둘 다 한동네에서 나를 모르지 않는데, 속여서 계약하고 어떻게 할 생각이었냐고. 앞으로는 부동산 계약이든 아니든 누구한테도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 손님이 말했다. 우리 사무실 들렀다 은행을 가는 중인데 원래 친분이 있던 그 부동산이 전화해서 자기랑 계약하면 중개보수를 깎아주겠다고, 전세자금 대출은 다 나오니 은행 갈 필요 없이 바로 주인 찾아가서 계약하자고 했단다.
그러면서 둘이 서로 네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싸우길래, 나가서 싸우라고 보냈다. 그 뒤로 나만 보면 슬슬 피하더니, 결국 지인에게 나에 대해 이도저도 아닌 험담을 뿌려댄 것이었다.
중개업은 사람을 통해 사람과 연결되는 것이 주방식인 거래 업무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속성을 여러 면에서 경험하게 된다. 본인들 스스로가 잘못한 것을 덮기 위해 문제가 마치 상대방에게 있는 것처럼 소설을 써대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아무튼 이 손님은 자초지종을 듣고 고향동생에게 그건 네가 200% 잘못한 것이고 중개업소 잘못이 아니니 당장 가서 사과하라고 나무랐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도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면전에 대고 험담해서 미안하다... 그리고 꼭 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린 얼떨결에 친구가 되었다.
중개업을 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의 얼굴과 마음이 스쳐 지나간다.
그중 누군가는 오해로 다가오고, 감정으로 떠나며, 진실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아주 가끔, 거래가 끝난 뒤에도 남는 사람이 있고, 그 관계는 중개보수 몇 배로도 환산할 수 없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중개업을 하며 얻은, 예상 밖의 큰 수익.
그리고… 내가 끝내 외면했던 김치통은 우리 우정의 시작점이 되어 우리집 냉장고에 죽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