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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솔 Feb 10. 2021

그냥 적응하세요.

말이야 쉽죠

돌발성 난청 진단을 받은 후 매일 아침을 절망으로 맞이했다. 자고 일어나면 말끔히 사라져 있길 기도했지만, 다음날 눈을 뜨면 어김없이 이명이 들려왔다. 병원에 다녀온 날 이명 환우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다. 하루에 몇 번이나 카페를 들락거리며 회원들이 올린 글 들을 읽었다. 


내겐 병명도 생소했던 돌발성 난청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원인모를 이명에 시달리는 이들도 상당수였다. 게시판의 주를 이루는 절박한 질문들, 치료 후기, 효과를 본 영양제, 식이요법 등 이명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들과 나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더 이상 고요를 느낄 수 없다는 것.

  

언젠가 지인과 얘기를 나누다 나도 모르게 발끈한 적이 있다. 내가 이명에 대해 말하자 그는 별일 아니라 듯 말했다.


"사람들 대부분 이명 들리지 않아?"

"대부분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한 번씩 삐- 하는 소리 말이야. 나도 자주 듣는데."

"그 한 번씩 삐- 하는 소리가 나는 24시간 들린다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


그는 아 하루 종일 들린다고.. 하며 얼버무렸다. 사실 그렇게 날카롭게 말할 일은 아니었는데 순간 울컥했다. 이 소리가 얼마나 신경을 긁어대는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저 상상만으로 "와 엄청 신경 쓰이겠다."하고 넘기면 그만이다. 그들과 대화하고 웃고, 밥 먹고, 영화를 보는 순간에도 나는 이명을 듣고 있다. 겉으론 아무 일없이 멀쩡해 보이지만. 그게 괜스레 억울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명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됐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7일 치 스테로이드 약봉지를 모두 비웠지만 이명은 차도가 없었다. 병원을 찾아 다시 청력검사를 했다. 그나마 다행으로 6000Hz은 정상 범위의 청력을 회복했지만, 8000Hz은 돌아오지 않았다. 의사는 이 정도면 썩 괜찮은 결과라고 했다. 8000Hz는 평소에 자주 듣지 않고주파이고, 청력이 심하게 떨어진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거라고. 그리고 고주파는 상대적으로 회복이 어렵다는 점도 덧붙였다. 

고막에 스테로이드 약물을 직접 주사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리 권하진 않았다. 치료를 종료할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더 해볼지는 결정해야 했. 나는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고 싶었다.


고막에 간단하게 마취를 하고 긴 바늘을 쑥 찔러 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고막 안으로 스테로이드 약물이 들어가는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회복실 침대에 모로 누워 15분 정도 약이 흡수되길 기다려야 했는데, 이때 침을 삼키면 안 된다. 스테로이드가 고막을 타고 코를 거쳐 입 안까지 들어와 씁쓸한 약 맛이 났다. 인체의 신비를 경험하는 순간이랄까. 간호사가 침을 뱉어내라고 건네준 휴지뭉치가 눅눅하게 젖어들었다. 

주사를 괜히 맞았나 살짝 후회가 들었다. 몇 주에 걸쳐 그 끔찍한 고막 주사를 총 3번 맞았지만 차도는 없었다. 그래도 뒤늦게 '그때 주사를 맞았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효과가 없더라도 일단 해보는 게 낫다. 이건 인생의 모든 선택의 순간을 관통하는 명언이기도 하다.


"그냥 적응하세요."

고막 주사를 더 이상 맞지 않기로 했을 때 의사가 말했다. 순간 '그게 환자에게 할 말인가?' 싶었지만 그의 말대로 별다른 대안은 없었다. 이명은 장기간 치료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따지자면 소리가 사라진 다긴 보단 이명에 점점 적응하면서 신경을 끄게 되는 것이다.(말은 쉽다) 한국만 해도 이명환자가 30만 명을 넘어섰고, 미국은 성인의 30%가 크고 작은 이명을 앓고 있다. 첨단 의학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현시대에 아직까지 확실한 이명 치료법이 없다는 게 참 기가 막혔다. 하긴 2020년에 전 세계를 휩쓰는 전염병이 창궐하리라곤 누구도 상상 못 했지.

나에겐 여러모로 어이없고 억울한 한 해였다.


이 무렵엔 매일 이명 환우 카페에 들어가 글을 읽었다. 누군가가 이명에 효과를 봤다는 영양제를 주문하거나,

몇 달이 지나 돌발성 난청이 회복되었다는 글을 보며 희망을 품기도 했다.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이명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글을 읽으며 연민과 동시에 이기적인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도 나는 저 정도로 심하진 않으니까.

누군가 나를 보며 그렇게 위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당장 내가 정상으로 돌아간다면 정말 끔찍한 날들이었다고,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고, 지금의 나를 떠올리며 치를 떨 것이다. 

하지만 참 얄궂게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들리는 이명에 크게 낙심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과 대화에 집중할 땐 이명이 신경 쓰이지 않았고, 혼자 있을 때나 잠들기 전엔 백색소음이나 빗소리 asmr 같은 걸 찾아들었다. 그럭저럭 견딜 만 해진 거지 괜찮은 건 아니었다.

당연하게 누려왔던 그 적요한 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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