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이 요리를 완벽하게 완성하고 싶다면 일단 배가 고파야 한다.
샌드위치 한 조각 입에 넣을 시간도 없이 진종일 업무에 시달린 월요일 저녁, 집에 돌아와 요리를 시작해보자.
일단 물 927mL를 냄비에 붓는다. 불행은 장시간 푹 우려낼수록 깊은 맛을 내는 법이다. 물론 당신의 부엌에 개량 컵 같은 건 없을 테니 대충 어림잡아 물을 채운다. 물이 조금 모자란 것 같기도, 과한 것 같기도 하지만 상관하지 말고 일단 물을 끓인다.
물이 끓는 동안 당신의 주변 사람들을 손질한다.
냉장고 한 켠에 너무 오래 방치된 탓에 하나 같이 짓무르고 심지어 파랗게 곰팡이까지 피어 있다.
‘이건 버리고 슈퍼에 가서 새로 사 올까?’
잠시 망설이지만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듯 배에서 요동치는 소리가 난다. 어쩔 수 없이 썩은 부위들을 대강 잘라내고 나니 양이 절반 넘게 줄어들었다. 이 정도론 굶주린 당신의 배를 채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틀 전 먹다 남긴 자존감이 눈에 들어온다. 냄새를 맡아 보니 아직 상하진 않은 모양이다. 퍼석하게 마른 자존감을 최대한 잘게 잘게 다진다. 씹히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이제 손질한 재료들을 냄비에 전부 넣고 끓인다. 이 레시피에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가스레인지 불을 항상 켜놔야 한다는 것이다. 물이 끓어 넘치지 않는지 곁눈질로 확인하며, 서둘러 양념을 만든다.
당신이 14년 전부터 잘 숙성시킨 트라우마를 크게 두 스푼 뜬다. 늘 선반 위에 올려져 있던거라 당신이 만들었다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건 어머니에게 건네받은 것이다. 불행의 깊은 맛을 내기에 이만 한 것이 없다. 그리고 감칠맛을 더해줄 자괴감을 반 스푼 섞는다. 실수로 한 스푼을 넣어버려도 뭐, 크게 상관은 없다.
잘 섞은 소스를 끓는 물에 곱게 푼다. 당신은 간이 맞는지 맛을 보려다 어쩐지 내키지 않아 그만둔다. 재료에 비해 물이 많아 보이지만 양념을 넣은 이상 이제 돌이킬 수 없다. 그대로 뚜껑을 덮고 30분 동안 푹 끓인다.
자 드디어 요리가 완성되었다.
평소 아끼는 예쁜 그릇에 옮겨 담았지만, 그다지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색감은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당신은 너무 배가 고프고, 유일한 음식은 이것 뿐인데.
처음 한 입은 예상대로 끔찍하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먹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먹다 보니 그렇게 나쁘진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