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엄마가 지지난 주 부모님과 통화를 마친 후 얘기를 하셨다.
아빠가 엄마에게 "00 이가 자랑스럽다. 너무 잘했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딱히 뭔가 자랑스러워할만한 일을 말한 기억이 없는데, 무슨 얘기냐고 여쭤보니.
지지난 주 새로운 집을 알아보기 위해 간 뷰잉 한 곳에서 런던에 갓 도착한 워홀러 친구와 같은 곳을 뷰잉하게 되어 집주인이 오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런던 생활 팁도 공유하고, 방도 마음에 들었지만 그 친구에게 더 필요해보여 양보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러셨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생각하고 위할 줄 알고, 양보할 수 있는 걸 보고 감동하신 모양이다.
작년 가을 쯤에는 어느 주말 저녁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가기 전 강가 산책을 하다가 한 할아버지가 차 타이어 바람이 빠졌다고, 보험사에 전화를 해야하는데 핸드폰이 없다고 좀 빌려달라는 것 아닌가. 빌려드렸는데 보험사에게 내 폰으로 계속 업데이트를 해준다길래, 수리 기사가 올 때까지 1시간이면 되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여느 영국의 일들 처럼 1시간이 2시간으로 연장되고 결국 3시간 반을 기다려 저녁 10시에 가까운 시간에 기사가 도착했다. 중간에 기다리다 가기도 뭐한게, 할아버지는 80에 가까운 나이에 잘 걷지도 못하시고, 폰도 없는데 기사랑 길이라도 엇갈리면 ㅠㅠ 그래도 3시간동안 간간히 수다도 떨며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었다.
첫 사랑인 메리와 만난 이야기, 나중에 다시 만나고 싶었지만 그녀는 암에 걸려 먼저 세상을 떠났고, 본인은 나이가 들어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온 여자와 계약 결혼을 하여 와이프가 영국 여권을 얻는 대신, 본인을 보살펴주는 보호자?가 되기로 했다는 이야기. 본인의 취미는 영화 감상이고, 평생 버스 운전기사로 일했다는 이야기 등등.
여하튼 이런 얘기를 아빠에게 했을 때도 아빠는 나에게는 내색을 안하셨지만, 나중에 엄마에게 내 칭찬을 엄청 하셨다고 한다. 00 가 남을 위할 줄도 알고 도울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서 다행이라고.
아빠에겐 내가 어느 곳에 취업하고, 얼마를 벌고, 번듯한 사람과 사귀고, 런던에서 살고 이런 것들보다 나만 생각하는 게 아닌 주위를 둘러볼 줄 알고 가진 것을 나누고 도울 줄 아는 게 자랑스러우신가 보다.
아무래도 외동으로 자라서 내가 가진 걸 나누고 양보하고 이런 점이 부족했어서 조금은 이기적이고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 될까 우려하셨던 것 같다.
아빠는 칭찬을 직접적으로 나에게 하시지 않는다.
아빠의 가게에 앉아 간식을 나눠 먹으며 여유를 부리고 있으면 가끔씩 간식을 가지고 놀러오시는 아빠 친구분들을 종종 뵙게 된다.
그러다 여느 날은 한 친구분이 나보고 "런던에서 혼자 일 찾아서 일하면서 산다고 아빠가 자랑을 많이 하셨어."라고 하시는 걸 듣고, 놀란 기억이 난다. 아빠가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지 몰랐어서.
이렇게만 적어놓고 보니 아빠와 사이가 아주 좋은 훈훈한 부녀사이 같지만 아빠와 참 많이도 싸우며 지낸 청소년기와 20대를 지나고 지금은 서로 어느 정도의 상처를 그냥 묻어두고 이해하고 인정 겸 포기한 그런 사이가 되었다. 어떤 가족보다는 조금 더 드라마틱하고 어떤 가족보다는 덜 드라마틱했을 수 있는, 그런 시기를 지나고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씩 통화를 하며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부녀지간이 되었다.
여하튼 칭찬을 직접 하는 걸 무척이나 쑥스러워 하시는 전라도 상남자 장남 울 아빠가 자랑스러워한다니 어깨가 으쓱해지는 주말이다. 비록 가진 것이 많이 없더라도 가진 것 안에서 나누면서 살 수 있는 그럼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