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의 꿈> 리뷰
한 편의 소설이자, 한 폭의 그림이었다. <기차의 꿈>은 관객과의 적절한 거리두기를 통해 벌목꾼으로 살아간 한 남자의 일생을 덤덤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그린 작품이다. 놀라운 건 한 인간의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면서 인생의 희로애락은 물론, 자연, 그리고 우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삶의 순환 의미를 전한다는 데 있다. 극단의 상황에 놓인 인물에 감정이입하며 도파민을 분출하는 시대에 다소 심심할지언정 한 발 짝 물러서서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고 말하는 영화를 만나는 건 기적 같은 일. 이 또한 삶의 순환 속에서 벌어지는 작은 점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부모의 이름도 모른 채 어른으로 성장한 로버트(조엘 에저튼)는 벌목꾼으로 살아간다. 기차 레일을 깔기 위한 목적으로 벌목하는 그는 몇 개월 동안 산속으로 들어가 나무를 벤다. 그가 벌목한 수만큼 그 또한 나이를 먹고, 여느 사람들처럼 사랑에 빠진다. 교회에서 만난 글래디스(펠리시티 존스)와 연인으로 발전한 그는 결혼하고, 소중한 딸을 얻는다. 행복한 시간도 잠시, 벌목일로 집을 비운 사이 가족에게 큰 변이 생기고, 뒤늦게 돌아온 그는 망연자실한다.
<기차의 꿈>은 데니스 존슨의 동명 소설을 옮긴 작품이다. 시대적 배경은 20세기 초 급격한 산업화로 변해가는 미국을 배경으로 했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상실, 그리고 희망은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연출은 <씽씽>의 각본을 담당했던 클린트 벤틀리가 맡았는데, 올해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등 각색상 후보에 오르며 그 이름을 알렸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수입은 됐지만 국내에서 개봉을 못 하고 있다. ㅜㅜ) 소설 각색이 처음이었던 감독은 <씽씽>의 연출과 각본을 담당했던 그렉 크웨다르와 함께 공동 작업을 했다. 중요한 건 이 작업을 한 시기인데, 바로 코로나 기간이었다.
감독은 “비극적인 일(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은 좌절과 상실감에 빠져있었고, 지금도 그 고통에 허우적거리는 이들이 많다. 극 중 로버트의 이야기는 그 힘듦 속에서 어떻게 삶을 다시 시작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으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인생의 굴곡과 명암의 순간 모두 중요한 삶의 가치라 생각하고 이를 스크린으로 옮긴다.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내레이션.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을 대변한 내레이션을 활용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되는 로버트는 특출난 사람도 아니고, 특별히 기억남을 행동을 한 사람도 아니다. 그냥 자신도 모르게 격변의 시기를 스쳐 지나간 평범한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에서 원작 소설을 소개한 문학동네 리뷰를 보면 이렇게 쓰여 있다.
한 단어 한 단어 공들여 선택해 꾹꾹 새겨나간 듯한 문장은 꾸밈없이 간결하고, 공간적 배경이 되는 미국 서부의 황무지와 장엄한 대자연은 작품 전체에 어두우면서도 아름다운 분위기를 드리운다. (로버트) 그레이니어 생애 대부분은 생략되거나 간단한 문장으로 축약되는 한편, 벌목과 교각 건설, 자연에 대한 디테일은 빽빽하게 살아 있다.
감독은 데니스 존슨이 했던 것처럼, 로버트의 80년 생애에 살을 덧붙이지 않는다. 소설의 지문처럼, 내레이션을 통해 소개할 뿐이다. 이 방식을 통해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로버트의 삶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최대한 관객이 이 인물에 스며들지 않도록 하면서 그의 인생 역경을 보여주고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탐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이를 도와주기 위해 영화는 인물이 살아 숨 쉬는 공간과 자연환경에 집중하도록 한다. 인물을 잡고 있다가도 어느새 줌아웃해 자연 풍경을 보여주며 거대한 자연 속 한없이 작은 인간의 모습을 비춘다. 인간 또한 서 있는 나무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이런 감독의 거리두기는 초반 낯설게 다가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이 겪은 고통과 좌절이 그동안 수없이 급변하면서 자리를 지켜낸 거대한 자연에 비해 얼마나 미미한지, 그렇기에 우리의 힘듦은 한낱 찰나에 불과하다고 보여준다.
1.33:1 화면 비율 선택도 삶의 행복과 슬픔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려는 방법으로 사용됐다. 기존 1.85:1, 2.35:1 등의 화면 비율보다 폭이 좁기 때문에 상승과 하강의 낙폭을 임팩트있게 보여줄 수 있는데, 이는 행복했던 시기를 뒤로 한 채 한순간 가족을 잃은 그의 비극을 담기에 주요한 그릇이 된다. 더불어 나무와 사람이 쓰러지는 장면 등도 잘 담을 수 있어 최대한 관객들이 감독의 의도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중반 이후, 영화는 점차 모든 풍파를 겪어내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나무처럼 되어가는 로버트의 삶을 비춘다. 로버트는 자신이 벌목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가족을 살릴 수 있었다고 자책하지만, 산림청 직원으로 마을에 온 클레어(게리 콘돈)는 남겨진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를 다독인다. 삶의 이유를 탐구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라고 했을 때, 로버트는 이후 재만 남은 자신의 보금자리에 묘목이 뿌리를 내리듯 새로 집을 지어 살아간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언제가 돌아올 것이라는 한 가닥의 희망과 자신이 남겨진 이유를 알아보기 위한 마음으로 버티고 버틴다. 그 한없는 기다림은 아내의 환영과 이름 모를 소녀의 방문으로 응답하며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로버트에게 작은 위안을 남긴다.
아이러니하게도 벌목이 직업이었던 사람이 점점 나무처럼 한곳에 머무는 이 과정은 묘한 편안함을 전한다. 마치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가는 나무의 나이테에 우리의 이야기가 스며드는 과정이랄까. 의지할 곳 없이 절망만 펼쳐졌던 로버트의 삶이라는 점에서 자연에 융화되어 가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그래서 더 평온해 보인다. 한 마디로 아름답다.
이 작품을 설계한 건 클리트 벤틀리 감독이지만, 안내자는 조엘 에저튼이다. 그는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는 로버트라는 인물을 특별하게도 유별나게도 연기하지 않고, 숲에 있는 나무처럼, 초원에 있는 들풀처럼 연기한다. 그 시대에 살았을 법한 인물이자, 남들은 모르는 고통과 희망을 수반한 인물로 이 캐릭터를 연기한다. 말하지 않고, 그의 표정만으로도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그만의 연기는 이 낯선 영화의 안내자로서 제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드라마부문 남우주연상, 제31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유력한 오스카 후보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는 나무에 박힌 벌목꾼들의 신발이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목숨을 잃은 벌목꾼들은 그곳에서 장례를 치르고, 이름 대신 나무에 그들이 신었던 신발을 박는다. 그들의 육신은 사라지지만 그들의 정신은 나무에 깃든다는 걸 은연중에 보여주는 이미지로 말할 수 있다. 마치 오래된 고목처럼 보이는 영화 속에서의 삶과 죽음은 그 순환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삶이 있다. 장대한 생명의 순환 속에서 우리가 갖는 상실감과 슬픔은 작은 점에 불과하다. 이를 알게 된다면 비로소 이 영화의 거리두기가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도 쉽게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덧붙이는 말
OST를 맡은 이는 브라이스 데스너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두 교황> <시라노> 등의 OST를 작업한 그는 <씽씽>에 이어 두 번째로 클린트 벤틀리 감독과 협업했다. 모든 스코어가 좋지만 역시 주제곡인 ‘Train Dreams’가 묵직한 감동을 전한다.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이 곡은 브라이스 데스너가 작곡을, 배우이자 작가, 그리고 싱어송라이터인 호주의 국민 예술가 닉 케이브가 작사와 노래를 맡았다. 영화의 감흥을 더 살릴 이 곡을 들어야 이 영화를 다 봤다고 할 정도로 깊은 울림이 있으니 꼭 들어보길 바란다.
사진출처: 넷플릭스
평점: 4.0 / 5.0
한줄평: 장대한 삶의 순환 속 너무나 작은 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