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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새미로의 갤러리 이야기ㅡ한가람

예술의 전당 ㅡ 카라바죠

by 온새미로


카라바조 ㅡ한가람 미술관


도마뱀에 물린 소년

카라바조의 대표적인 도마뱀에 물린 소년

미세하지만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고 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수의 성전 봉헌


오늘날 일명 카라바조로 널리 알려진

미켈란젤로메리시(Michelangelo Merisi)는

1571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가족이 살았던 마을의 이름을 따서 "카라바조"

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

이었던 그는 종종 싸움과 범죄에 휘말렸고, 그로 인해

도망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교황의 용서를 구하려고 로마로 돌아오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1610년 토스카나주 포르토

에르콜레 해변에서 병에 걸려 비극적으로 끝을 맞이했다.


불과 40년이 채 되지 않는 생애 동안, 그는 당대

바로크 회화에 큰 혁명을 일으켰으며,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놀라울 만큼 현대적이고

"사실적인 회화"를

개척했다. 열정적이고 대담했던 카라바조는 로마의

거리와 선술집에서 만날 만한 인물들을 화폭에 담아

성경 속 이야기를 재현했고, 기존의 표현 방식을 뒤집고

계층 구조에 도전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어두운 배경 속에서 드러나는 반신 초상화들은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깊은 감동을 주며

강렬한 의미를 전달한다.

카라바조의 예술적 현상은 바로크나 고전주의와 같은 당시의 다른 예술적 흐름 중 하나로 완전히

국한시킬 수는 없다.

사실 그는 '가라바조주의(Ca-vageism)" 라는 독자적인 예술 운동을 시작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성가족과 아기 성 세례자 요한
황홀경의 성 프란체스코ㅡ귀도레니


성 토마스의 의심


비너스와 쿠피드ㅡ루이핀송

우리가 알던 비너스, 큐피드와는 거리가 있는듯하다.

삼손과 데릴라 ㅡ조반니 발리오네




묵상하는 성 프란체스코 ㅡ미켈란젤로 메리시

"묵상하는 성 프란체스코"는 이번전시 작품 중

가장 비싼 보험료 지불했다고 한다.

반면 그리스도의 체포는 보험료가 가장 저렴하다는 도슨트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리스도의 체포



로마에서 카라바조의 중요한 후원자 중 하나였던 마테이
가문의 궁전을 장식하기 위해

카라바조는 이번 전시에 소개하는

"그리스도의 체포"와

"묵상하는 성 프란체스코" 그렸다.
이 작품은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폰티우스 필라투스(본디오 빌라도)의 로마 병사들에게

체포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서 등불을 들고 체포 장면을 바라보는
인물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말쿠스(말고) 일 가능성이 크며, 이 인물은 카라바조 자신의 자화상으로 추정된다.

반면, 왼쪽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고통을 토하는 인물은

성 요한복음사가로 여겨진다.

전경에 있는 병사의 망토, 튜닉, 바지에 사용된 세
가지 주황색 계열의 붉은색은 카라바조가 로마 시기 작품에서 자주 사용한 특유의 벽돌색을 띤다.


회계하는 막달라 마리아ㅡ니콜라 르니에


성 로렌초와 성 프란체스쾨가 있는 예수 탄생ㅡ파올로 제라지


성 세바스티아노 ㅡ미켈란젤로 메리시


아브라함과 세천사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ㅡ미켈란젤로 메리시


취리히, 개인 소장 / Zurich , Private Collection
이 작품은 베들레헴 출신의 젊은 목동 다윗과 블레셋의 용사
거인 골리앗 사이의 결투에서

마지막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사무엘상 17장).

이스라엘의 사울 왕이 블레셋 군과의
전투에 나서며, 이 결투에서 승리한 쪽이 패자를 정복할 수
있는 운명이 걸린 상황이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전혀
전투 경험이 없는 다윗이 완전 무장한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서며, 오직 물맷돌 하나로 거인의 이마를 정확히 맞추어
그를 쓰러뜨린다. 다윗은 골리앗의 목을 베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승리의 징표로 이를 내보인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은 보르게세 가문의 로마 컬렉션에서 유래한 작품으로, 1606년경 보르게세 추기경의 의뢰로 카라바조가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벨로리가 1672년 언급한 바 있는 작품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당시 카라바조가 사용한 양식과 일치하며, 보르게세 미술관에 소장된 1609~1610년 경의 더 널리 알려진 또 다른 버전과는 스타일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기록에 따르면, 카라비바조는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을 두 점 제작했으며 ,

두 작품 모두 1693년 보르게세 미술관의
인벤토리 66호에 등재되어 있다.


첫 번째 기록은 첫 번째 방,
앞서 언급된 작품 옆, 금박 액자에 든 다윗과 골리앗의 머리.
[원문] 번호, 카라바조 작품'으로 되어 있으며,

두 번째는 "네 번째 방, 앞서 언급된 작품 아래. 임페리얼 캔버스, 금박 액자에 든 다윗과 골리앗의 머리, 358호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작품으로 기재되어 있다.

1790년 이후 이 전시된 버전에 대한
언급은 사라지며, 해당 작품은 1990년까지 보르게세 가문의 소유로 남아 있었다.


이 작품은 2004년 데니스 마혼과 2005년 미나 그레고리의
연구를 통해 학계의 주목을 다시 받았으며, 나폴리 카포디몬테 미술관의 카라바조파 작품 복원의 대가인 브루노 아르치프레테의 작업실에서 정밀하게 복원되었다. 복원 작업을 통해 카라바조의 독창적인 작업 방식이 확인되었고, 진단 검사를 통해

그의 작품 기법이 재차 입증되었다.



카라바조의 전기 작가들은 피가 흐르는 골리앗의 잘린 머리에서 카라바조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단순한 회화적 표현을 넘어. 작가 자신이 이미지에 내면적 투영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카라바조는 이 처참한 상장을 통해 자신의 죄, 특히 다윗의 겸손함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교만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자각하고 고백한 것으로 보인다.



성 바오로의 회심 ㅡ루도비코카라치


이 작품의 원작은 볼로니아 국립 회화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울은 하늘에서 메시아의 음성을 듣고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기독교를 전하며 헌신하게 된다.

성 바오로의 낙마를 그릴 때 이 그림을 참고한다.

우리나라의 예술품 사랑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전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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