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교보 아트 스페이스
광화문 교보는 아침부터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오픈하기를 기다린 고객들이 9시 30분이 되자,
회전문을 밀고 들어선다.
서점이 사라지는 요즘,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을 보는 시대지만
이곳에는 새로 쏟아져 나오는 신간들이
즐비하게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어 좋다.
도서뿐 아니라 예쁜 문구류와
내가 사랑하는 갤러리
[ 아트 스페이스 ]
가 있어 더욱 사랑스럽다.
Painter 박주에
부서진 코, 잘려나간 팔, 사라져 버란 손가락,
파손된 채 발견된 비너스,
어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조각난 머리.
고대 신체의 조각상은 상실의 상태가
인간의 처연한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
완전함을 벗어던진 형태로 부서진 채 서 있었다.
이는 우리의 불안정한 실존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하였다.
인간의 울음을 닮은 조각난 신체는 우연히 발견된
우리의 생과 닮아 있다.
신체는 실존적인 것이며, 가능성을 만들어 내며,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삶의 한계를 규정한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 속에 내재된
감정과 생명의 흔적을 반영하고 있다.
부서진 신체의 질량에서 짓누르고 폭발하고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상실한
신체를 재탄생시키고 불명확하고 불안정한 현실을
직시하여, 어떻게 온전한 인간으로서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탐구한다.
Painter 김혜원
몇 년 전부터 버스나 지하철 내부의 모습을 여러 번
그렸다. 출퇴근하면서 사람이 없을 때 종종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창밖으로 이동하는 풍경과실용적인 기물로
가득 찬 내부 공간의 대비가 그릴만하다고 생각했다.
작업실로 오가는 길을 찍은 장면을 그리는 내내 작업실은
장소의 이동이 전제된 공간으로 변했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그 자체로
삶의 루틴이자
그 모습을 담는 행위가 되었다.
비단 교통수단의 풍경뿐만 아니라 다른 그림
소재들도 단편적인 나의 하루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지시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작업에서 물감충을 과도하게 부각하여
이미지를 숨기고 그리는 과정을 드러내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회화에서는 붓으로 물감을 캔버스에 옮길 때
현실과 전혀 다른 차원의 이벤트가 발생하는데,
그 현상을 '그림' 자체로 나타내는 것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약간 문제가 있었는데,
그림의 전면을 사진으로 장식하면서도
작업을 이루는 하나의 도구로 여긴 것이다.
Painter 정아롱
옛날 옛적 우리 인간은 세계 안에 던져졌다. 그때에
인간은 세계와 하나였고 그곳에는 원형들이
살아 숨 쉬며 신비로 가득했다.
아직은 파악할 수 없는, 예측불가능한
세계 안에서 인간은 불안을 극복하고 희망적인 미래를
기원하며 마법으로 세계를 다스렸다.
인간을 세계와 연결하는 마법적 행위 속에서
예술이라는 도구가 탄생했고
그러한 예술이 지닌 힘을 믿으며 과거의 예술가들은
몰입하여 창작에 혼신을 다하고
예술작품을 만들어 냈으리라.
지금의 예술은 더 이상 마법적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마법적 순간들을 목격하게 되는데,
숲 그림들에서 그러한 신비로운 경험을 부각하고자 했고 '그리기' 속에서 마법성이 포착될 수 있길 바랐다.
숲은 신화와 전설,
정령들이 살아 숨 쉬는
신비롭고 마술적이며 원형적인 세계이다.
한 해가 지나가는 동안 날들은 눈처럼 소리 없이
한 겹 한 겹 덮인다.
그 밑엔 잃어버린 동전 같은 나날의 기억이 쌓인다.
포근한 눈을 덮은 기억은 잠에 빠져 있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일할 뿐 잠든 기억을 깨워볼 틈이 없다.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이,
30일 안에 일 년의 남은 빚을 모두 갚아야 한다는
계산서처럼 눈앞에 나타날 때,
비로소 사람들은 얼마간의
후회와 함께 정신없이 자고 있던 기억을 깨워본다.
그렇게 나 역시 한 해를 되짚어 본다.
그러나 나를 덮쳐왔던 모든 무거운 걱정들은
결국 죽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나가는 어떤 방식이 아니었던가?
삶은 삶에 충실하려 할 뿐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삶이 들고 흔드는 노래방의 탬버린이다.
끊임없이 요란스럽게 보채고 죽음을 건너다보기도 하지만 결국 서 있는 자리는 삶이다.
지난해와 새해를 서로 만나게 하는 연말연시는
내게 삶에 의자에 새겨진 눈금 같다.
깡충 뛰어넘으면 마술처럼 새 출발을 하게 되는 눈금.
삶은 너무도 귀중하기에,
이렇게 우리는 눈금을 긋고서 힘껏 도약하며
실망스러운 낡은 삶을 새해로,
갖고 싶은 신상으로 만든다.
서동욱
(시인/서강대 철학과 교수)
복잡한 세상과의 차단
번잡스러운 주변과 순간이동한듯한
이 작은 공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며
글귀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참 좋은 공간이다.
마치 문보장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