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링, 뇌를 내 마음대로

by 바담풍

앵커를 작동시키고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거기서 멈추지 말고 한 번 더 의도적으로 밀어 올린다. “지금 이 감정이다” 하고 다시 떠올리는 순간 연결이 더 깊게 박힌다.


몸과 마음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성공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지친 상태에서 발표를 하거나 시험을 보게 한다면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지 못할뿐더러 갖고 있는 능력의 반도 발휘하지 못한다. 최적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활기차고 기분이 좋을 때 그런 기회가 온다면 분명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수업을 들을 때나 혼자 공부할 때도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안하고 짜증 섞인 기분으로 시험을 치면 뇌는 에너지를 ‘감정 방어’에 쏟아붓는다. 정작 문제 풀이에 써야 할 연료를 걱정하고 화내느라 다 써버리는 셈이다. 반면에 좋은 기분은 뇌의 연비를 최상으로 끌어올린다. 똑같은 60분을 써도 기분 좋은 상태에서는 지치지 않고 마지막 문제까지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가 솟구치게 된다.


시험에서의 기세는 실력만큼 중요하다. 특히 수능 같이 하루 종일 이어지는 시험은 기세가 당락을 결정지을 만큼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첫 시험을 망쳤다는 생각을 붙잡고 있으면 뇌는 계속 그 장면을 재생하며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이미 끝난 과목은 잘라내듯 내려놓는 연습을 하면 뇌는 빠르게 다음 과목에 집중할 수 있는 ‘초기화 상태’로 돌아온다. 첫 시간부터 마지막 시간까지 좋은 기세를 이어갈 수 있어야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힘이야 말로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또 하나의 기술이다.


EBS 다큐프라임 <기억력의 비밀> 방송에서 이런 실험을 했다. 나쁜 생각을 한 그룹과 좋은 기억을 떠올린 그룹을 나눠 시험을 보게 한 결과 좋은 기억을 한 그룹의 시험이 더 좋은 성적을 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실험은 인간의 심리 상태가 학습에 깊이 관여한다는 걸 보여준다.


이런 기분 좋은 상태를 의도적으로 학습에 접목시키는 좋은 방법이 있다. 내 기분을 조절하는 기술, 바로 앵커링이다.


앵커링은 배가 움직이지 않도록 닻(Anchor)을 내리는 것처럼 특정한 감각적 자극을 특정한 감정이나 기억과 연결하는 기술이다. 드라마 주제곡을 듣다가 그 드라마의 장면이 떠오른 때, 혹은 어떤 냄새를 맡았는데 갑자기 어릴 적 기억이 훅 하고 밀려온 경험, 그게 바로 앵커링이다.


이는 NLP(신경언어프로그래밍)에서 나온 개념인데 쉽게 말하면 조건반사다.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게 된 것처럼 우리 뇌도 특정 신호와 감정을 연결해서 저장해 둔다. 중요한 건 이게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무작위로 생기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감정을 원하는 신호에 직접 묶어두어 원하는 시간에 튀어나오게 하는 방법이다. 감정과 자극이 연결되면 나중에 그 자극이 감정의 스위치처럼 작동할 수 있다.


앵커링은 시각(특정한 이미지), 청각(음악, 목소리), 촉각(특정한 접촉, 손동작), 후각 및 미각(냄새, 맛) 등 다양한 감각을 통해 설정할 수 있다.






나만의 앵커 만드는 6단계

공부 의욕이 떨어지거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긴장될 때 사용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기분 좋은 상태의 앵커를 만들어보자.


1단계 — 어떤 상황에서 필요한지 확인한다. 예) 발표하기 전에 긴장을 풀고 싶다. 시험 볼 때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싶다. 공부하기 전에 기분 좋은 상태를 만들고 싶다.


2단계 — 사용할 앵커를 정한다. 평소에 잘하지 않는 동작이어야 한다. 예)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맞잡기, 손목을 살짝 두드리기, 열 손가락 엇갈려 꽉 끼기. 너무 일상적인 동작은 다른 상황에서도 자꾸 발동되어 효과가 흐려진다.


3단계 — 기억 속에서 강렬한 성공 경험을 찾는다. 예)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느닷없이 안녕! 하고 인사할 때 그 설레던 순간, 발표를 잘해서 친구들이 환호하던 순간, 처음으로 어려운 문제를 혼자 해결했던 순간, 사랑받고 칭찬받았던 순간 등 감동받았던 순간이면 좋다. 기분 좋은 느낌, 충만한 느낌을 경험했던 순간을 찾아라.


4단계 — 눈을 감고 그 경험 속에 완전히 잠긴다. 그때의 느낌만이 아니라 모든 감각을 살려낸다. 주변 소리, 냄새, 공기, 빛, 사람들의 표정, 발밑의 감촉까지. 그 장면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린다.


5단계 — 그 느낌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 앵커를 연결한다. 절정의 순간에 2단계에서 정한 동작을 한다. 이 타이밍이 핵심이다. 감정이 가장 강렬한 그 찰나에 연결해야 앵커가 단단하게 박힌다.


6단계 — 앵커가 제대로 걸렸는지 확인한다. 잠시 평상시 상태로 돌아온 다음 앵커 동작만 해봐라.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면 성공이다. 느낌이 약하면 4단계로 돌아가서 반복한다.






성공적인 앵커링을 위한 팁

1) 강도가 중요하다. 밋밋한 기억으로는 앵커가 제대로 박히지 않는다. 가슴이 뭉클하거나 온몸에 소름이 돋았던 기억처럼 감정의 진폭이 큰 강렬한 경험을 골라야 한다.

2) 독특해야 한다. 앵커로 쓸 동작이 너무 일상적이면 엉뚱한 순간에 발동된다. 평소에 잘하지 않는 동작일수록 좋다.

3) 반복해야 굳는다. 한 번으로 완성되는 앵커는 없다. 강한 경험을 쓸수록 반복 횟수가 줄어들지만 어쨌든 반복이 필요하다. 처음엔 약하더라도 쌓이면 단단해진다.

4) 추진력을 끌어올려라. 앵커를 작동시키고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거기서 멈추지 말고 한 번 더 의도적으로 밀어 올린다. “지금 이 감정이다” 하고 다시 떠올리는 순간 연결이 더 깊게 박힌다.

5)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라. 표정은 생각보다 강하게 뇌를 자극한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억지로 미소를 지어도 뇌에서는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분비하며 좋은 기분이 올라온다. 이 상태에서 앵커를 걸면 감정이 더 빠르고 또렷하게 붙는다.


앵커링을 불러내는 순간에도 똑같다. 의도적으로 미소를 짓고, 기분 좋은 생각을 하며 앵커를 작동시키면 몸이 먼저 긍정 신호를 보내고 그 신호를 따라 감정이 빠르게 올라온다. 처음엔 어색해도 괜찮다. 표정이 먼저 길을 열고 감정이 그 길을 따라온다. 그래서 앵커는 동작만이 아니라 표정까지 함께 꺼낼 때 더 강하게 작동한다.


지금 당장 해볼 수 있는 연습

눈을 감고,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기뻤거나 뿌듯했던 순간을 30초간 떠올려라. 그 감정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순간 손 등을 찰싹 세 번 쳐라. 그리고 이렇게 암시한다. “앞으로 나는 손등 세 번 치면 이 기분이 되살아난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반복할수록 뇌는 그 신호를 진짜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공부하기 싫은 날, 시험 직전에 긴장이 몰려올 때 — 그때 ‘찰싹’ 세 번이다.



앵커링은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좋은 기억과 감정을 특정 자극에 연결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다시 꺼내 쓰는 방법이다. 고등학생에게 앵커링은 공부를 시작할 때 의욕을 높이고, 시험장에서 긴장을 줄이며,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억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상태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앵커링은 그 상태로 들어가는 작은 스위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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