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먹고 있다고?

by 바담풍



내 지인은 유별난 동물 애호가다. 개 세 마리를 키우는데 그렇게 지극 정성일 수 없다. 특히 먹는 것에 대해서는 영양학 박사를 능가할 정도다. 유기농 사료만 먹이며 개 전용 등심 스테이크와 영양제도 챙겨 먹인다. 반면에 그와 그의 딸은 인스턴트 음식 애호가다. 햄버거와 김밥, 치킨, 피자가 주식이다. 한 집에서 상전인 개와 사람의 계급이 나뉘어 있다. 이쯤 되면 무엇이 중요한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반려견에게는 자극적인 음식이 질병을 일으키고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그렇게 철저히 신경 쓰면서, 정작 자기 자식과 자신의 몸에 쓰레기 음식을 쳐 넣는 것엔 아무런 저항이 없다. 이건 일종의 모순이 아닐까?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학대에 가깝다.


반려동물 사료 성분표를 현미경 들여다보듯 꼼꼼하게 살피는 정성이라면 우리 아이 식탁은 종묘제례를 지내는 마음으로 차려야 마땅하다. 청소년에게 음식은 단순한 허기 채우기가 아니라 인생의 기초 공사와 같기 때문이다. 장은 제2의 뇌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평화로워야 머릿속도 꽃길이 열린다. 한창 발달 중인 청소년의 뇌에 쓰레기 음식을 들이붓는 행위는 마치 고성능 엔진에 폐유를 들이 붙는 것과 다름없다.






장은 제2의 뇌다


컬럼비아대학교의 마이클 거션 박사는 장을 ‘제2의 뇌’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장에도 뇌세포가 있다는 뜻이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 장에는 1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다. 척수에 있는 신경세포보다 많다.


장은 뇌와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능력도 갖췄다. 뇌를 제외하고 자체 신경계를 가진 유일한 기관이 바로 장이다. 우리는 이걸 ‘장신경계’라고 부른다. 중추신경계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더 놀라운 점은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낄 때 분비되는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95%가 장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뇌에서 발견되는 거의 모든 신경전달물질이 장에서도 발견된다. 쉽게 말하면 장이 기분 좋으면 뇌도 기분 좋다는 얘기다.



장 건간상태는 집중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집중이 안 되는 이유를 성격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나는 원래 산만해”, “집중력이 약해서 그래” 같은 말들이다. 하지만 이건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연료 시스템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뇌는 우리 몸무게의 2%밖에 안 되지만, 우리가 먹은 칼로리의 20% 이상을 소모한다. 음식이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차가 정제된 연료를 필요로 하듯, 뇌도 깨끗하고 안정적인 영양 공급을 원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아침에 단 시리얼로 시작해서, 점심엔 급하게 라면 한 그릇, 저녁엔 치킨과 피자. 이건 마치 고급 차에 석탄을 집어넣는 것과 다름없다.


정제 탄수화물이나 당분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혈당이 급상승한다. 그 순간만큼은 에너지가 폭발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곧 추락한다. 혈당의 급격한 저하, 즉 ‘슈가 크래시’가 온다. 머릿속이 멍해지고, 집중력은 바닥으로 떨어지며, 감정은 널뛴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 하루 종일 당과 카페인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다.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또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우리는 매 끼니마다 스스로 불안정한 뇌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집중력 결핍, 충동적인 행동, 감정 조절 실패는 당연한 결과다.



과거엔 우울증이나 집중력 문제를 단순히 뇌의 화학물질 불균형으로만 봤다. 세로토닌이 부족하거나 도파민이 낮으면 약을 먹어서 채우면 된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요즘 뇌과학은 다르게 본다. 뇌는 고립된 기관이 아니라는 거다.


울트라웰니스 센터 설립자인 마크 하이먼 박사는 우울증과 ADHD, 집중력 장애 같은 문제가 단지 뇌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의 화학적 반영’이라고 말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코르티솔이 계속 높으면 뇌는 이걸 생존 위협으로 인식한다. 그러면 뇌는 에너지를 생각하는 데 쓰지 않고 ‘투쟁과 도피’에 쓴다. 그러면 기억력, 계획력, 감정 조절, 주의 집중 능력이 전부 떨어진다. 설탕이 많은 정크푸드 역시 인슐린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인슐린이 급등락 하면 뇌에 연료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도로에 교통 체증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다. 학습이나 업무에 치명적이다. 뇌가 몸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뇌는 결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내분비계, 소화계, 순환계, 에너지 대사 시스템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 잘못된 식사는 뇌 전체 회로를 흐리게 만든다.






장이 우리의 기분을 만든다


앞에서 장은 제2의 뇌라고 했다. 그런데 장이 하는 일은 그보다 더 대단하다. 장은 우리의 감정과 성격까지도 조절한다.

장내 미생물, 즉 마이크로바이옴이 불균형을 이루면 불안, 우울, 스트레스 민감성이 증가한다. 더 재미있는 건 동물 실험에서 장내 세균을 이식했더니 성격이 변했다는 결과다. 장에 사는 미생물이 기분과 성격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장내 미생물은 미주신경을 통해 뇌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염증을 일으키거나 진정시키는 화합물을 생성하고 이게 뇌로 전달된다. 그래서 정제 탄수화물 과다, 섬유질 부족, 프로바이오틱스 결핍 같은 식습관이 장내 미생물 균형을 깨뜨리면 뇌 기능과 감정 조절에도 악영향이 온다.


또한 장은 배고픔과 포만감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그렐린과 렙틴의 균형을 맞춘다. 이건 우리가 얼마나 오래 집중할 수 있는지, 에너지를 어떻게 쓰는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0대 뇌의 연료가 특히 중요한 이유


특히 중요한 사실이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10대 여러분의 뇌는 익히 알고 있듯이 아직 ‘공사 중’이다. 뇌는 평생에 걸쳐 발달하지만 25살까지가 발달 속도의 피크다. 특히 전두엽이라는 부분이 그렇다. 전두엽은 계획을 세우고, 충동을 조절하고,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뇌의 CEO다. 이 CEO가 아직 훈련받는 중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이 결정적인 시기에 뇌에는 어떤 연료를 넣어야 할까? 만약 정크푸드, 설탕 폭탄, 카페인 음료로 버티고 있다면 뇌는 최적의 상태로 발달할 수 없다. 마치 건설 현장에 시멘트와 모래 대신 흙을 넣는 것과 같다. 건물은 올라가지만 부실 공사가 된다.


UCLA 대학의 페르난도 고메즈-피니야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기의 식습관이 성인기의 인지 능력과 기억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10대 시절에 건강한 음식을 먹은 사람과 정크푸드로 버틴 사람의 뇌는 20대, 30대가 되었을 때 명백한 차이를 보인다는 뜻이다. 시험 점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창의성, 문제 해결 능력, 감정 조절 능력까지 전부 영향을 받는다.



청소년기는 뇌가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게임으로 치면 캐릭터 생성 후 보너스 스탯을 몰빵(집중 투자)할 수 있는 황금 튜토리얼 기간이다. 이 금쪽같은 시간에 라면 국물로 뇌 세포를 적시는 건 레전드 아이템을 얻을 기회를 발로 차버리고 인벤토리(잡동사니)만 채우는 꼴이다.


고성능 엔진에 저질 기름을 넣으면 당장은 굴러가겠지만 결국 엔진 경고등이 켜지기 마련이다. 햄버거와 탄산음료로 점철된 식단은 뇌라는 슈퍼컴퓨터에 끊임없이 렉을 유발하는 악성코드와 같다. 반면 신선한 채소와 좋은 단백질은 뇌의 처리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최신형 그래픽 카드와 메모리를 장착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세상의 온갖 자극적이고 달콤한 맛을 단칼에 끊어내는 건 고행 중의 고행이다. 치킨과 피자, 엽떡의 유혹 앞에서 우리의 의지력은 한 없이 작아진다. 청소년들이 이런 맛있는 음식을 포기할 재간은 없다.


그렇다면 평일에는 뇌에게 최고급 연료를 넣어주고 주말에 한두 번 정도 입이 즐거운 치팅 데이를 즐기는 식으로 바꿔보자. 평일에는 달걀이나 두부로 단백질을 챙기고, 오메가-3가 풍부한 등 푸른 생선과 견과류를 조금씩 끼워 넣자. 탄산음료 대신 물이나 녹차, 과자 대신 바나나 하나로 대신하자. 주말에는 보상으로 치킨이든, 마라탕이든, 디저트든 가족 또는 친구들과 함께 행복하고 달달한 한 끼를 즐겨보자.


뇌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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