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한 가지, 바람돌이 선물

by 바담풍



민지 엄마는 멀티태스킹의 달인이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믿는다. 요리를 하면서 강의를 듣고, 청소를 하면서도 강의를 듣는다. 강아지 밥을 주는 와중에도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손은 쉴 틈 없이 움직이고, 머리도 바쁘게 돌아간다. 물 흐르듯 막힘이 없다. 한 번에 서너 가지 일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러면서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한 것에 내심 뿌듯함을 느낀다.


많은 일을 해낸 것 같은 기분. 그러나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는다. 강의 내용은 희미하고, 대화는 끊어진 문장들만 남는다. 분명 무언가를 계속 하긴 했는데, 남은 것은 거의 없다. 이 이상한 공허함의 정체는 간단하다. “멀티태스킹은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고, 카톡 메시지에 답하면서 숙제를 한다. 많은 10대들이 이것을 '효율적인 멀티태스킹’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MIT의 신경과학자 얼 밀러(Earl Miller) 교수는 이렇게 단언한다.


“멀티태스킹은 망상에 불과하다.”


뇌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지 않는다. 뇌가 실제로 하는 일은 매우 빠른 속도로 과제 사이를 전환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동시에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A를 하다가 B로, 다시 A로. 이렇게 쉬지 않고 스위치를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


과제를 바꿀 때마다 뇌는 이전 과제의 맥락과 규칙을 '저장’하고, 새 과제의 ‘맥락과 규칙’을 불러오고, 새 과제에 맞게 '재조정’한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소모되고, 시간이 걸리며, 오류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스위치를 바꿀 때마다 뇌는 막대한 비용을 치른다.


미국심리학회(APA)데이비드 마이어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잦은 과제 전환은 생산적인 시간의 최대 40%를 낭비시킨다고 한다. 수학 문제를 풀다가 잠깐 카카오톡 알림을 확인하고 돌아와서 다시 수학적 사고의 맥락을 회복하는 데 평균 23분이 걸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잠깐 확인했는데 23분을 잃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과제 전환 자체가 은근히 중독성을 띤다는 점이다. 새로운 자극은 도파민을 건드리고, 뇌는 그 짧은 쾌감을 기억한다. 결국 우리는 집중을 깨는 행동을 스스로 보상하게 된다. 특히 10대는 이 유혹에 더 취약하다. 보상 회로는 민감하고, 억제 장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혹은 더 강하고, 브레이크는 더 약한 상태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부하면서 딴짓을 할 때, 그때 들어온 정보는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이 아니라 습관을 처리하는 쪽으로 흘러가 버린다. 머릿속에 저장되긴 하지만, 꺼내 쓸 수 없는 형태로 굳어져버린다. 열심히 했는데도 시험장에서 떠오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애초에 기억을 잘못된 서랍에 넣어버린 것이다.


예를 들어 공부하면서 유튜브를 본다고 해보자. 그때 배운 수학 공식은 ‘공부하는 자리’에 저장되지 않고, 보던 영상의 흐름 속에 섞여 버린다. 그래서 시험장에서 그 공식을 떠올리려고 하면 이런 느낌이 든다.


“분명 봤는데… 기억이 안 나.”


이건 기억이 없는 게 아니다. 엉뚱한 곳에 들어가 있어서 꺼낼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서랍에 아무렇게나 던져 넣은 물건처럼.


런던 그레셤칼리지의 글렌 윌슨은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이메일 하나가 ‘읽지 않은 상태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생각하는 능력이 눈에 띄게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다. 열어보지 않았는데도 그렇다. 단지 ‘거기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만으로 우리의 인지 능력은 보잘것 없어진다.


이쯤 되면 별거 아닌 것까지 죄다 끌어와 슬쩍 던져놓고 “보이지? 너 이미 망했어” 하고 은근히 겁을 주려는 심산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핸드폰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것만으로도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날리 칠 기세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이며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읽지 않은 카톡 수십 개, 계속 쌓이는 알림, 그걸 신경 쓰면서 공부했던 시간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이미 집중력이 깨진 상태였을 가능성이 크다.


알림을 볼까 말까, 답장을 할까 말까, 계속할까 잠깐 쉴까?


이런 사소한 선택들이 쌓이면 뇌는 금방 지친다. 그 결과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게 ‘참는 힘’, 즉 충동 조절이다. 그래서 결국 이런 일이 생긴다.


“딱 5분만 폰 볼까?”


그러나 그 5분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집중하는 능력 자체가 약해진다. 뇌는 쓰는 방식대로 바뀐다. 깊게 집중하면 점점 더 잘 집중하게 되고, 계속 산만하게 쓰면 점점 더 산만해진다. 결국 앉아 있는 시간은 긴데 실제로 공부한 시간은 짧은 상태가 된다. 노력은 많이 했는데, 결과는 잘 안 나오는 이유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결책은 놀랄 만큼 단순하다.


한 번에 한 가지.”


이 단순한 원칙이 뇌를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시키는 방법이다. 한 가지 일에 온전히 몰입할 때, 뇌는 비로소 제 기능을 회복한다. 정보는 제자리에 저장되고, 사고는 끊기지 않으며, 에너지는 낭비되지 않는다. 집중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방법도 복잡하지 않다. 먼저 환경을 정리해야 한다. 알림을 끄고, 시야를 단순하게 만들고, 지금 하는 일과 상관없는 것들을 책상에서 치워야 한다. 그리고 작업을 쪼개야 한다. 전체를 한 번에 붙잡으려 하지 말고, 가장 작은 단위로 나눠 하나씩 처리한다. 한 문제, 한 개념, 한 동작. 그렇게 쌓인 조각들은 나중에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속도를 내기 위해 여러 개를 동시에 잡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끝까지 붙드는 것이 오히려 더 빠른 길이다.


공부할 때 SNS 알림 끄고 음악 안 듣기, 책상에 다른 과목의 책이나 노트는 치우기, 쉬는 시간에는 오직 쉬는 데만 집중하기, 다른 공부를 하거나 핸드폰을 보면서 쉬는 게 아니라, 스트레칭을 하거나 산책을 하면서 쉬기.


밥 먹을 때는 스마트폰 끄고 밥 먹는 데만 집중하기, 음식을 천천히 씹으면서 맛과 식감, 향에 집중하기, 친구와 대화할 때는 폰 내려놓고 대화에만 집중하기. 친구의 이야기를 잘 듣고 진심으로 공감하며 대화에 적극 참여하기.


이런 단순한 연습이 쌓이면 주의력은 점점 깊어진다. 사소한 습관들이 집중의 깊이를 조금씩 확장시키고, 더 깊은 몰입을 유도한다.



멀티태스킹 습관의 가장 무서운 결과는 단순히 그 순간의 집중력 저하가 아니다. 반복적인 주의 전환이 일상화되면 깊은 집중 상태에 진입하는 능력 자체가 저하되고, 전두엽과 해마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등 뇌의 구조적 변화까지 일으킨다.


이처럼 10대 청소년이 지금 어떤 주의 습관을 형성하느냐는 평생의 인지 능력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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