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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이고 또 때로는 가해자

《나의 아저씨》를 통해 투영해 보는 저의 직장생활입니다.

by 꿈꾸는 아재

오랜만에 TV리모컨을 들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나의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나의 드라마 원픽은 《나의 아저씨》다.


나는 한때 테돌이었다. 분명히 더 열광했던 드라마가 있었을 것 같은데 잘 안 떠오른다. 나의 뇌가 기억의 방에 《나의 아저씨》를 강제 원픽으로 들여 앉혀놓은 건 아닌가 싶다. 어떤 사건 이후부터는 마음 순위에서 나의 아저씨를 내렸다는 이도 있었고 드라마 남주를 성토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쭉 변함이 없다.


직장인 관련 드라마는 《미생》도 걸작이었고 며칠 전에 봤던 영화 《어쩔 수가 없다》도 괜찮았다.

그러나 나에게 《나의 아저씨》가 원픽인 이유는 '나의 직장'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써서 권선징악, 안락한 위안으로 연결시키지 않고 시간의 치유에 맡긴 것이 오히려 좋았다. 가장 어둡고 축축한 삶의 밑바닥을 보여준 다음 거기서부터 역설적으로 치유를 얻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욱신욱신했다.


내가 임원실을 문 걸어 잠그고 들어가서 무릎을 꿇었던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나의 직속 팀장들에게 말했다. 나를 믿고 무조건 내 방법을 따라달라고... 팀장들은 절대 내 편이고 나를 지지한다고 했다. 무작정 데리고 임원실로 밀고 들어갈 거라고 미리 알려 주지 않았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상무님의 모든 분노는 오직 저한테만 향해 주시고 직원들 괴롭히는 것은 거두어 주십시오."

"저희가 극단적 선택을 하면 오랜 기간 구축한 이 직제는 공중분해 될 것입니다. 원치 않는 불이익을 받는 직원도 발생할 것입니다. 저희는 이곳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이곳을 지킬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모시는 임원을 법적대응으로 쫓아낸 패륜 집단의 주홍글씨가 생기지 않도록 제발 살펴 주십시오."


예상 밖의 내 방식에 그 상사는 엄청 당황해 했다. 훗날 그 상사는 직원들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 채 결국 계약해지로 회사생활을 마무리했다. 돌이켜 보면 그 일 자체로도 나에게는 주홍글씨였다.


나의 30년 직장생활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나의 아저씨》가 방영되던 딱 그 시기였다.

젊은 시절에 너무 힘들어서 사직서를 던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어렸고 상황도 다른 이유였다.

《나의 아저씨》 방영 즈음은 달랐다. 나이도 오십이 눈앞이었고 직급도 여기까지면 끝일 수도 있겠다 싶을 때였다. 딱 하나의 이유, 위에서 말한 그 상사 때문이었다. 로열은 아니었지만 낙하산이었다.


나를 비롯한 몇 명에게 더 가혹했지만 대부분 직원들에게 무차별적이었다. 너무 처참해서 세부 내용이 뭔지 글로 옮기는 것은 평생 안 할 생각이다. 버티다 못해 퇴사를 한 직원도 있었고 휴직을 하는 직원들도 생겨났다. 서둘러 임신을 하고 출산 육아휴직을 당겨서 쓴 직원도 있었다. 일부는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공과 사를 넘나드는 상상 이상의 지시와 분노가 분출되었다. 대응 방법을 골몰했으나 늘 백약이 무효였다. 결국 회사 감사실 조사,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 법적 고발 세 가지 대응책을 놓고 고민하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이다. 아는 변호사 자문까지 받았던 상태였다. 직원들의 무언의 지지도 전달받아 놨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나는 다른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제도와 법에 호소하지 않고 무릎 꿇는 방법을 택했던 거였다. 명분은 진심 어린 마지막 직언과 조직에 대한 사랑으로 포장했지만 양심의 소리는 그게 아니었다.

나는 암치료 후 얼마 경과되지 않은 시기였고 애들 교육으로 큰 돈이 들어가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후폭풍으로 조직에 큰 변화가 생기고 최악에 해체까지 될 경우 올 수도 있는 폭풍한설에 대한 걱정도 컸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목에 가시처럼 지금도 미안한 것이 있고 너무나 감사한 점도 있다.
미안한 일은 불의에 대한 강력한 저항보다는 체제 연장에 순응을 내가 택했던 것이었다. 대기업 부장답게 유약하게도 안전한 온실을 택했던 거였다.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 부장이 초반에 보여줬던 모습처럼...

감사한 일은 직원 간의 '밑바닥 연대감'이었다. 업무 협업이나 팀플 같은 것에서 얻는 연대감과는 달랐다.

엄청난 일을 겪고서야 견디고 있는 서로의 직장생활에 대한 알아봄이 생겼다. 괜찮은 척 하지만 사실은 너무 지치고 안 괜찮은 서로의 피로에 대한 '들음'도 생겼다는 것은 참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 연대감이 안 생겼다면 임원실에서 무릎 꿇고 그 어줍잖은 직언조차 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시기와 겹쳤던 《나의 아저씨》가 내 원픽 드라마가 된 이유였다.


제목이 '아저씨'라는 것부터가 좋았다. 그 아저씨는 나이 많은 남성이 아니었다. 성실하지만 무기력했기에 시대의 효율 논리 속에서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아저씨였다. 그러나, 그 아저씨는 역설적으로 사회에서 시달려도 여전히 인간의 온기를 잃지 않는 공감과 연대를 향한 마지막 버팀목의 상징이기도 했다. 더 좋았던 것은 극 중의 박동훈 부장이 시대의 피해자이기도 하면서 가해자로 묘사된 부분이다. 그는 회사의 불의에 방관했고 체제의 연장에 순응하는 떼 묻은 인간이었다. 그가 곧 나였기에 드라마를 보고 있던 나는 수시로 발가벗겨졌다. 그렇지만, 그는 끝내 '상처받은 자들의 수평적 연대'를 지켜 냈고 결핍한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가장 평범한 방식으로 저열한 불의를 견딜 수 있는 울타리를 자처하였다. 그가 그렇게 하면서 만든 그 '견딤의 연대' 위에 나도 나를 밀어 올렸던 거였다.


좋았던 또 하나는 선악을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가장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서사 장치는 '도청'이다. 극 중 이지안은 박동훈 부장을 불법 도청한 가해자이다. 윤리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그녀의 행위는 역설적이게도 현대사회에서 실종된 '진정한 듣기'에 대한 깊은 은유가 되었다. 어떤 철학자는 타자의 고통을 듣는 것이야말로 윤리의 출발이라고 했다.

이지안은 도청을 통해 박동훈의 삶을 듣고 한숨, 침묵, 작은 친절들까지 듣는다. 이지안의 도청을 통해 직장인들의 '들림''듣기'의 회복이 얼마나 구원적인지를 그 드라마 보면서 생각했었다.


"다들 행복해 보여서 죽여버리고 싶다."라고 경멸하던 이지안은 도청을 통해 처음으로 타인의 고통에 접속하고 사람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박동훈 또한 이지안의 상처를 존재로서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네가 괜찮으면 나도 괜찮다'는 이타적 구원의 서사를 완성해 간다. 드라마를 보면서 그 평범한 재발견이 나는 좋았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탁월함은 조연이 없다는 것이었다. 박동훈의 형제들과 동료들, 이지안의 할머니까지. 모두가 각자의 고통과 희망을 안고 사는 주인공들이다. 그들이 곧 지금을 견뎌내고 있는 우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정이입을 많이 했었다. "저녁 먹었어요?" "네" "뭐 먹었어요?" "라면이요." "사람이 사람한테 힘이 돼 준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그래도 누군가의 다정함은 사람을 버티게 한다." 극 중의 이런 평범한 대사들이 내 것 같아서 그즈음 몇 년을 나도 잘 버텼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여전히 직장에서 때로는 가해자이고 또 때로는 피해자이다. 아수라 백작이다.

어느 날 생긴 질투심, 서운함, 경쟁심에 소심한 보복을 하고 그들의 견딤에 무관심해지기도 한다. 안전에 타협하고 순응하는 날도 있다. 그러다가도 돌아올 수 있는 것은 '밑바닥 연대감' 경험 덕분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惡은 평범한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나의 아저씨》는 "善도 평범한 것이라 말한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도 괜찮은 척' 준비하고 출근한 서로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주고, 그냥 옆에 있어 주고, 밥 한 끼 사 주고, 물어 주고 들어 주고 알아 주면 그것이 바로 평범한 선이다. 그러면 우리들의 내일은 또 잘 견디어질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져 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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