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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로 Oct 21. 2021

서울로7017을 관광하는 어두운 방법

한 무리의 외국인 관광객이 공중보행로 서울로7017 앞에 나타났다. 한눈에 봐도 어색한 조합이다. 북미, 남미, 유럽, 아랍, 인도, 동남아 등 각지의 전형적인 외양을 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한국 유명 여행사가 기획상품으로 내놓은 서울로7017 여행에 참가한 이들이다. 짝을 지어 온 이들은 그나마 나아보였다. 혼자 큰 배낭을 메고 온 몇몇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혼자 온 한 남성 여행객이 투덜거렸다. "이거 뭐야, 왜 이렇게 상품이 전반적으로 어설퍼? 손님들 안내도 제대로 안 해주고?" 다른 단독 여성 여행객이 끼어들었다. "그러게. 그나저나 아까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희한한 광경을 봤는데 혹시 여러분도 봤나요?"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서울로 반대편에 있는 서울역 광장에서 본 광경을 소개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태극기를 든 한국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격앙된 목소리로 현 한국정부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그가 말했다. "한국 민주주의가 정말 발전하긴 한 듯 하네요. 반정부세력이 한국의 대표적인 공간을 차지하고 현 정부를 저렇게 비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걸 말해주잖아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남성 여행객이 말했다. "어쩌면 저 집회가 한국의 진면모일수도 있어요. 아무튼 이번 여행에서는 한국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네요. 방탄소년단이 펼치는 멋진 노래와 안무 같이 꾸며진 것들 말고 진짜 한국 말이에요." 그때 서울역 광장과 서울로를 연결하는 건널목을 통해 한 중년 여성이 걸어왔다. 모자를 눌러쓰고 안경을 낀 그는 목에 여행 안내원임을 알리는 표식을 걸고 있었다. 인자한 표정의 안내원은 한국식 영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제가 늦었습니다. 광장 쪽에서 사람들이 저를 보고 욕을 하는 바람에 그걸 뿌리치느라 좀 늦었네요. 외국에서 오셔서 잘 모르시겠지만 집회하시는 분들은 탄핵을 당하고 감옥에 가 있는 전직 대통령을 지지하시는 분들이에요. 저는 새로 취임한 현직 대통령과 조금 아는 사이인데 그렇다는 이유로 저한테 모진 비난을 하시네요."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관광객이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얼른 서울로 소개나 해줘요." 머쓱해진 안내원은 서울로 초입인 만리동 구역으로 관광객들을 이끌고 갔다.


안내원이 말했다. "자, 여러분 이곳이 서울로7017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딱 보시기에도 고가도로처럼 보이죠? 맞습니다. 여기는 원래 1970년대에 지어진 고가도로였고 40여년이 지나 안전점검을 한 결과 더는 차도로 쓰기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철거될 예정이었는데 서울시장이 이곳을 미국 뉴욕에 있는 하이라인 공원처럼 보행로로 바꾸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보행로가 됐고 그 위에 대형 화분들까지 놓여 공중정원 역할도 하고 있답니다." 관광객들은 원형 고정화분에 심은 나무와 풀들을 보며 즐거워했다. 만져도 보고 향기도 맡아보며 긴장을 풀기도 했다. 한 관광객이 안내원을 불렀다. "공중정원이 보기 좋긴 하지만 저 너머에는 빌딩밖에 없네요. 언밸런스하기 그지없어요." 안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에요. 서울로가 생기기 전에 이곳은 그야말로 콘크리트와 유리, 자동차들로만 채워진 삭막한 공간이었어요. 1970년부터 2017년까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급속한 경제성장은 한국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환경 파괴가 수반됐습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에 무시무시한 대형 건물들이 들어섰습니다. 무지막지한 개발에 자연은 속수무책으로 자리를 내줘야 했죠.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이 지상과제인 한국사회에 돈이 안 되는 자연이 차지할 공간은 없었습니다. 돈에 대한 욕망이 만든 빌딩 숲, 그 밑에는 자연의 시신이 묻혀 있습니다. 서울로에 조성된 저 인공숲은 자연성 회복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입니다. 뒤늦게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은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거죠. 한국에는 이제 빌딩 숲이 아닌 진짜 숲이 필요합니다." 관광객들은 안내원의 말에 저 멀리 빌딩숲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일행은 서울로 3분의 1 지점까지 진출했다. 일행은 철로 위 구역을 지나고 있었다. 한 관광객이 철로 위 구역에 설치된 철제 난간을 가리켰다. 그는 사람 키 3배정도는 될 것 같은 높은 난간 때문에 시야가 가려진다는 불만을 터뜨렸다. 안내원이 말했다. "네, 맞습니다. 안전난간입니다. 아래에 있는 철로 위로 물건을 던지거나 스스로 몸을 던지지 못하게 하려는 구조물입니다. 들으셨을지 모르겠는데 한국에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한류 열풍으로 가득해 행복한 사람들만 있을 것 같지만 실은 한국 사회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급격한 경제성장의 결과 서울은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속한 도시화를 경험했습니다. 도시는 세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번화해졌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마음의 병, 즉 정신질환은 개인의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것이라느니, 지나치게 예민해서 생기는 것이라느니 하면서 개인적 문제로 치부돼왔습니다. 그러나 정신질환과 그로 인한 자살은 명백히 사회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극도의 경쟁이 이어지는 학교와 직업세계는 사람들을 긴장과 불안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숨 쉴 틈 없는 경쟁 속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정신질환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보수진영의 사람들은 경쟁이 사회와 경제의 발전을 약속한다면서 더 채찍질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채찍질 당하는 쪽은 자신들이 아닌 빈곤층이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채찍질을 해야만 발전해야하는 사회가 정상적일까요? 노예제 사회에나 어울릴 법한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한국사회에 절반이나 됩니다. 그런데도 한국이 부럽습니까? 이제는 한국도 사람의 생명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언젠가 이 난간이 필요 없어질 때가 오기를 바랍니다." 관광객들은 지나가는 한국인들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한 관광객이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들 중 절반이 노예제 사회를 옹호하는 이들이란 말인가?"


안내원은 손을 들어 저 멀리를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 끝이 닿는 곳에는 고층 건물이, 아니 산이 있었다. 산이 있긴 한데 거의 대부분이 건물에 가려져있었다. 안내원이 말했다. "저기 건물들 뒤편에 산 하나가 보이시나요? 바로 서울의 명산 중 하나인 인왕산입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고층 건물에 가려져 수려한 경관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이게 한국사회의 현실입니다. 앞으로 서울을 다니시면서 다른 곳을 둘러보시겠지만 곳곳에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합니다. 그 아파트들은 아름다운 산야를 가리고 있습니다. 살풍경한 성냥갑 아파트들이 자연환경과 풍경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저 고층 빌딩과 아파트들은 한국인의 정신세계 그 자체입니다. 언젠가 땅을 사고 건물을 사서 세입자를 들이고 비싼 임대료를 받아 편하게 사는 것. 그것이 한국인의 꿈입니다. 자연과의 공존을 거부한 데 이어 빈곤층이나 신세대와의 공존까지 거부하는 삶이 바로 한국인이 꿈꾸는 삶이라는 겁니다. 적어도 개발독재시기에는 외국으로 일을 하러 나가서 돈을 벌어오면 자기 가족을 먹여 살리는 동시에 조국을 부강하게 만든다는 국가주의 성향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민주화와 함께 국가주의, 즉 국뽕의 마법이 사라진 현 시점에는 극단적인 가족 이기주의와 배금주의, 천민자본주의만이 한국인들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인왕산을 가려버린 고층 건물들, 저기에 공존하는 삶을 깡그리 잊어버린 한국인들의 겉만 번지르르한 모습이 있습니다." 그 순간 일행 곁으로 지나가던 중년 부부가 아파트 시세 이야기를 하며 탐욕스런 웃음을 지었다. 그들의 얼굴을 본 관광객들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내원은 관광객들을 이끌고 몇 걸음 더 걸었다. 안내원이 바라보는 곳에는 숭례문이 있었다. 예습을 조금 하고 온 관광객들은 저게 한국 국보 1호라며 아는 척했다. 안내원이 말했다. "저쪽에 있는 큰 문이 보이나요? 맞습니다. 국보 1호 숭례문입니다. 그런데 저 국보 1호가 불에 타버리는 어이없는 일이 11년 전 발생했다는 것도 알고 계시나요? 아마 모르실 겁니다. 한국인들은 부끄러운 일은 숨기려 하거든요. 숭례문에 불을 지른 방화범은 재개발 토지보상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었습니다. 재개발이란 건 노후 주거지 등에 새 건물을 짓기 위해 땅주인과 건물주들이 건설회사와 함께 벌이는 사업입니다. 문제는 이 재개발사업 과정에서 세입자들이 쫓겨났고 재개발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무시돼왔다는 겁니다. 갈등이 특히 첨예한 곳에서는 강제철거가 벌어지고 이 와중에 수많은 생명이 희생됐습니다. 서울역 다음 역인 용산역 부근에서는 강제철거에 맞서던 세입자들이 경찰의 진압 때문에 목숨을 잃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운상가 인근에서도 재개발을 놓고 갈등이 심각합니다. 을지면옥 등 유서 깊은 가게들이 재개발을 반대합니다. 세운상가 옆에서 수십 년간 일 해온 기술 장인들 중 일부도 재개발을 반대합니다. 그런데도 인근 토지주들은 재개발을 강행하겠다고 합니다. 재개발을 해서 새 건물을 올리면 건물주가 돼 엄청난 시세차익을 올리고 이후에 월세를 받으며 무위도식할 수 있으니 토지주들은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자칫 서울시가 토지주 손을 들어줬다간 강제철거 과정에서 또 누가 죽어나갈지 모릅니다. 숭례문이 불탔고 용산참사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도 이런 방식의 재개발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안내원의 말을 들은 관광객들은 숭례문 안내책자를 다시 살펴봤지만 어디에도 화재와 그 배경에 관한 설명은 없었다. 실망한 관광객들은 책자를 덮어 가방에 넣어버렸다.


안내원은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그는 대우빌딩과 남대문경찰서가 있는 쪽을 가리켰다. 관광객들은 그가 어디를 가리키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모두 고개를 빼들고 그쪽을 살폈지만 소득이 없었다. 안내원이 말했다. "저 거대한 건물들, 대기업 간판이 즐비한 저 빌딩 너머에 동자동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그곳에 서울시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이른바 '쪽방촌'이 있습니다. 쪽방은 생활환경이 아주 열악한 월세 방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서울역 주변에는 많은 노숙인이 있습니다. 세계를 호령하는 대기업과 부자들, 고급승용차들이 다니는 이 서울역 인근에 수많은 빈곤층이 있습니다. 심각한 빈부격차는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한국사회의 단면입니다. 경제성장은 승자와 패자를 동시에 낳았습니다. 경쟁에서 승리한 이들은 부자가 돼 승승장구했지만 도태된 이들은 빈자가 됐고 특히 운이 나쁜 이들은 집과 가족까지 잃고 노숙인이 됐습니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빈곤층과 노숙인을 금기시했습니다. 경쟁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선 경쟁이 지닌 잔인성과 참혹함을 가려야 했거든요. 경제성장과 빈곤 확산이 한 몸뚱이에서 자란 샴쌍둥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해야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를 어쩔까요? 빈곤층의 확산이 경제성장 자체를 발목 잡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유효수요의 만성적 부족은 경제공황의 일상화 버전인 경기침체를 낳았습니다. 빈곤층 확산으로 인한 사회 내부 불만과 갈등은 경제적 잠재력 자체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부와 빈곤이 실은 한 몸이라는 사실에 눈감았던 대가를 지금 한국 사회는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그 때 관광객 옆으로 참혹한 모습의 노숙인이 한명 지나갔다. 술 냄새와 불쾌한 체취를 풍기는 그를 보며 관광객들은 물러서며 공포에 질렸다.


이제 일행은 서울로 마지막 구간에 도착했다. 이들은 서울로에서 서울의 진면목을 알고 싶어 하긴 했지만 이정도로 어두운 부분까지 다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감수성이 예민한 일부 관광객은 거의 울상이 돼있었다. 울먹이는 일행을 달래던 한 관광객이 안내원에게 휴지가 있는지 물어보려했다. 그런데 안내원이 없어졌다.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마치 증발해버린 것처럼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관광객들은 어리둥절해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때 한 사람이 고층 건물 위에 달린 대형 화면을 가리켰다. 모두 화면을 올려다봤다. 아까 그 여성 안내원이 화면에 있었다. 한국어 수업을 받았던 한 관광객이 화면 속 자막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한 음절씩 겨우 읽어냈다. 서, 울, 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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