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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치 Nov 22. 2022

생리 멘쓰 마법 그날 말고 월경이라고 하는 글

PMS가 극심했다. 여러 일들이 짜증스러웠으며 지난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점이 없고 호르몬에 관해서는 명확한 일정표가 없다는 이유 탓에 감정은 수시로 바닥을 쳤다. 그런 와중에 제대로 된 섹스를 하고 싶었고, 그럴 기운도 시간도 없다는 게, 그리고 가지고 있는 욕망에 비해 그걸 나의 욕망으로 이름 짓고 내보이고 싶지 않다는 반감의 몸집이 훨씬 큰 탓에, 내내 우울감이 곁에 도사렸다.

요즘 회사 사업 중에 월경에 관한 내용이 있어서, 그 덕에 월경하는 내 몸과 월경 자체를 긍정하는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생각과 현실은 달라도 한참 달랐지.

열세 살에 초경을 시작한 이래로 내내 불규칙한 주기에, 산부인과 가기를 통 무서워해 병원에 임의로 가지 않은 지 벌써 몇 년 된 나로서는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사면초가의 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월경하지 않은 지 두 달이 넘어갔고(임신 가능성은 극도로 적었으며), 배를 쥐어짜는 야밤의 고통에... 월경통이 분명해! 하면서 (드디어) 구입했던 월경컵을 착용했고(사실 꽁기꽁기 집어넣었고에 가깝지 않을까), 그런데 월경통이 아니고 배란통이었다는 사실에, 그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으며, 무슨 일이라도 난 것처럼 '쾅쾅쾅, 너 이제 월경할 거야... 언제냐면 5... 4... 3... 2... 1...' 정도의 고통이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가 그대로 가셨다가 아주... 난리부르스였기 때문이다. 호르몬들이 만들어낸 물살 위에서 나는 완전히 부서진 잔해처럼 요동쳤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랬다.

오늘 아침엔 꿈을 꾸다가 깨어났다. 토요일 당직 근무였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알람을 하나도 안 맞추고 잠든 건지 모르겠다. 축축했다. 잠결에 손으로 이불을 쓸어보았는데 이불에 월경혈이 묻었을 때 특유의 느낌이 없었다. 아닌가... 하며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축축한 감각에 벌떡 일어났다. 두터운 수면 바지를 입고 잔 덕이었을까? 면 팬티가 어느 정도 흡수해준 덕이었을까? 다행히도 이불을 적시지 않았다. 이불을 적셨으면 또 얼마나 화가 났을까...

애인의 집에 들러 강아지까지 데리고 나와야 하는 촉박한 일정 때문에 쓰기 편한 탐폰을 착용했지만, 파우치가 어디 있는지 몰라 대충 주머니에 구겨 넣고 나온 월경컵까지 어쨌거나 오늘의 준비는 마음에 들었다. 회사엔 월경컵 세척이 가능하도록 작은 세면대가 비치된 화장실 한 칸이 있다. 그게 얼마나 사람들의 여러 면을 바꿀 수 있는지 생각한다. 아마 나의 월경도 또 변화해 갈 테지. 그런 생각을 하면 뭉쳐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진다. 조금씩 조금씩 풀어져 발끝으로 서서히 흘러나간다.

연질 캡슐로 된 진통제가 그나마 잘 듣는 편인데, 아무래도 하나 더 먹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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