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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Nov 08. 2022

콜레스테롤 & 도시에서 짝퉁 헬렌 니어링으로 살기

고지혈증 탄수화물 중독자의 갱생기

올봄 건강 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당장 약을 먹으라고 했다. 약은 언제든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나 사는 꼬락서니를 돌아보다     

끼니를 규칙적으로 정성껏 챙겨 먹지 않았다. 

나는 복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요리하고 장보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냉장고가 가득하면 저걸 언제 다 먹나 싶어 답답하고 한숨이 나온다. 남편은 밥과 국 김치 반찬과 후식까지 한식 한상을 먹어야 한다. 나는 고기는 안 먹고 익힌 채소 요리나 김밥 스파게티처럼 바로 해서 먹는 일품요리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남편 끼니를 챙기면서 나 먹을 거 준비할 여력이 별로 없었다. 솔직히 결혼 생활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살림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 더 그렇다. 결국 허기진 배를 빵처럼 손쉽게 먹을 수 있는 탄수화물로만 채우고 있었다. 커피와 단 것을 너무 좋아했다.


육체 활동을 별로 하지 않았다. 

아파트 7층에 사는 나는 밖으로 한 번 나가려면 큰 결심을 해야 한다. 우습지만 그렇다. 날씨가 사나우면 더 그렇다. 게다가 우리 집은 베란다를 확장한 볕이 아주 잘 드는 남향에 시야도 확 트였다.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 큰 만족감을 준다. 또한 요즘은 뭐든 문 앞까지 새벽 배송이 되는 신기한 세상 아닌가?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많았다.

나는 감정을 속에다 잘 담아 두는 편이다. 정리하고 해소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런 탓에 쉽게 긴장하고 심신 이완이 잘 안 된다. 당연히 스트레스가 많았다.      


                                                      꿈과 현실의 엄청난 간극 


"날이 밝아 눈이 떠지면 몸이 아침에 적을 할 때까지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몸이 준비되면 문 밖으로 나와 땅을 밟는다. 새소리를 듣고 아침 햇살을 맞는다. 아침으로 작은 텃밭의 푸성귀로 샐러드를 만들어 빵이나 감자로 한 끼를 해결한다. 후식으로 마당의 작은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신다. 그후에 생활을 꾸리기 위해 배가 고파질 때까지 농사일과 살림에 보탬이 되는 노등을 한다. 점심에는 스파게티나 국수 같은 든든한 한 끼를 먹는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에는 집에 머문다. 뭘 해도 상관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집 주변을 산책하며 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따뜻한 수프로 저녁을 먹는다. 목욕을 한다. 적막하고 조용한 밤이 되면 이런 하루를 주신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달이 밝으면 가만히 쳐다본다."   

  

예전부터 꿈꿨던 효율적이고 이상적인 삶의 방식은 버몬트 숲에 집을 짓고 자급자족했던 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이었다. 성인병이나 스트레스 따위는 없을 것 같지 않은가? 

하하하! 한갓 꿈일 뿐! 현실의 나는 고지혈증 약을 먹어야 하는 움직이기 싫어하는 탄수화물 중독자다. 물론 부지런하지도 않고 별로 독립적인 사람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50년 넘게 길들여진 도시의 쾌적하고 편리한 삶에서 벗어난 살 자신도 없다.     



                                              타협-도시에서 짝퉁 헬렌 니어링으로 살아보기     

처음에는 오직 고지혈증 약만은 먹지 않겠다는 이상한 집요함과 집착이 동기였다. 하지만 별일 없으면 그래도 살아야 할 날이 짱짱하지 않은가? 정신 차리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방법을 강구해야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어쩌고 이러고만 있을 순 없지 않은가?      


‘내 비록 헬렌처럼 매끼 소박한 밥을 먹을 수는 없다. 건강한 육체노동을 하며 자급자족하는 조화로운 삶을 살 수도 없다. 하지만 흉내는 내 보리라.’   

  

나만의 원칙을 만들었다. 

‘느슨하지만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뭐든 몰아서 하는 나. 먹고 자고 운동하고 쉬는 것, 집안 일과 글쓰기 심지어는 사람 만나는 것까지 몰아서 한다. 습관을 조금씩 고쳐보기로 했다. 균형과 배분이 필요했다. 자기 전에 다음 날 꼭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메모해뒀다. 다음 날 계획대로 정확하게 지키지는 못해도 대충 그 틀에서 하루를 보냈다.      

2끼는 꼭 챙겨 먹으려고 했다. 신선한 채소와 두부나 계란 같은 단백질 식재료로 간단하지만 정성껏 만들어 먹었다. 생각보다 재밌고 맛있었다. 

'집안일이 나에게는 건강한 육체노동이다'라고 생각을 달리하기로 했다. 마지못해 하는 일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해보기로 했다. 뭐 할 만했다. 

글쓰기는 아침 먹고 한 번, 늦은 오후부터 저녁 하기 전까지 2번 하기로 했다. 그런대로 잘하고 있다. 물론 노트북 앞에서 멀뚱 거리 거나 딴짓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일단 글쓰기 모드에 들어는 간다. 

운전하기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되도록 많이 걷는다. 

걸어서 장을 보러 다녔다. 당연히 무거우니까 필요한 만큼 조금씩 장을 보게 된다. 냉장고에 식재료 남은 일도 줄었다. 외출할 땐 좀 일찍 나와 집 주변을 산책하다 시간에 맞춰 전철이나 버스를 탔다. 물론 가끔은 맘먹고 오래 걷기도 했다.      


여름이 되자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범위를 약간 벗어난 경계선까지 내려갔다. 의사가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체중이 줄었다. 가을이 되고 겨울이 다가오는 지금 삶에서 군더더기가 많이 사라졌다. 단순하지만 충족감을 느낄 때가 많아졌다. 비록 짝퉁이지만 나름 조화롭게 살고 있다. 그리고 현재 진행 중     


주-헬렌 니어링(1904-1996)은 미국의 작가다. 1932년 남편 스콧 니어링과 도시를 떠나 버몬트 숲에 집을 짓고 자급자족하는 조화로운 삶을 20년간 살았다. 저서로 ‘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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