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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얀 Nov 04. 2021

돈이 좋다고 말해

'금수저'에게 가장 부러운 한 가지 






사람은,



"사람은 절대 안 변해"라고 말하는 사람 빼고 다 변한다. 매사에 화가 나서 여기저기 싸움을 걸고 다니던 내가 변했고, 아침 수업이라면 일단 날려 버리던 내가 변했다. 



어린시절부터 화가 많았던 것은 타고난 기질도 있겠지만, 생각해 보면 뭐든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인간의 유년 시절이란 주로 부모가 만든 환경에서 결정된다. 즉,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항상 불만이었고 불공평하다 생각했다.  



아빠는 주로 무직자로였고 때론 산 속 별장지기, 뱃사람, 택시기사, 공장 경비원으로 일했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대신해 도시락 공장 단기 아르바이트, 대학가 호프집, 여자가 나오는 노래방의 주방 이모로 돈벌이를 했다. 



나의 부모는 돈에 대해 잘 몰랐고, 그러니 우리 주변에 큰 부자가 있었을리 없었다. 우리 가족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바빴고 늘 돈에 쫓기며 살았다. 그러니 어쩌면 돈은 우리에게 공포에 가까운 것이였단 생각도 든다. 



내가 아는 돈이란, 한 지역에 정착할 틈도 없이 서둘러 이삿짐을 싸게 만드는 것이었고 친척들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어렵게 전화기를 드는 엄마의 뒷모습이었다. 무언가에 화가 난 아빠를 더 화나게 만들어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돈이었다. 



따지고 보면 가정에서 많은 문제들이 돈 때문에 발생한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는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어렸고, 집이든 학교에서든 '돈'에 대해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자연히 돈을 벌어오지 않는 아빠를 미워했고, 화목해 보이고 여유로워 보이는 집 아이들이 싫었다. 



TV만 봐도 그랬다. 드라마를 보더라도 '돈'을 가진 쪽은 주로 나쁜 놈들이었고 동화책을 봐도 가난한 흥부는 선(善)이었고 돈이 많은 놀부는 악(惡)이었다. 가난한 신데렐라는 선이었고, 돈을 가진 계모와 언니들은 악이었다. 나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돈'과 멀어졌다. 대신 잔꾀가 발달한 나는 "적은 돈으로도 행복하게 사는 법"을 빨리 찾았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책이 좋았다.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원하는 것, 세상에 신기하고 행복한 것들은 현실이 아닌 죄다 책 속에 있었다. 여고 시절에는 주로 록음악을 들었다. 옆학교의 잘생긴 밴드부 남자들과 어울려야 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는 입학과 동시에 캠퍼스 커플이 되어 연애에 푹 빠져 살았고, 취업을 하고는 월급을 받는 족족 각국을 떠돌며 여행을 했다. 그리고 서른살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홀로 상경했다. 그리고 1년 뒤, 그 꿈을 이뤘다.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을 내는 것.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이었지만, 막상 책을 내고 나니 이상하게 허무감이 몰려왔다. 그 감정의 최대 원인은 책만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아,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작가가 되기 전과 다를 것 없던 나날. 치과를 다니며 남은 시간에 글을 써야 하니 오히려 몸과 마음이 더 힘들었다. 하루 중 가장 황금같은 시간을 직장에서 쓰고 집으로 와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오히려 내 꿈이 나를 더 괴롭게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드라마를 쓰게 되면서는 더 했다. 첫 계약금으로 800만원을 받고 1년 6개월동안 아무런 수입이 없이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며 글에 매달려야 했다. 마치 언제 올 지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지만 이제 나는 곧 마흔을 앞두고 있었고, 아빠의 나이는 곧 70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자본주의에서의 '행복'이란 이런 것이었다. 좋아하는 뮤지컬 공연이 열렸을 때, 제일 싼 티켓으로 무대와 가장 떨어진 곳에서 공연을 보더라도 내가 더 많이 느끼고 즐길 수 있다면 VIP석에 앉은 사람이 부럽지 않은 것이라고. 나는 살면서 늘 월 200 언저리의 일을 하며 살았어도 늘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았다. 그러나 이런 생활이 계속 지속된다면, 공연을 보러 갈 여유 조차 생길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드라마를 쓰면서는 뮤지컬 공연은 커녕, 내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책 사는 돈이 부담스러워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38살에 '돈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살 수 있는 것'을 깨닫고 지독하게 돈 공부를 했다. 돈을 공부하고 벌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 한 가지는 바로, 돈은 너무너무 좋은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원하는 공연을 내가 원하는 자리에서 보고, 여차하면 친구 것까지 끊어줄 수 있는 것. 그런 문제를 떠나서 돈은 나를 정말로 독립적이게 만들어 주었다. 나의 24시간을 온전히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쓸 수 있게 되었고,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우울. 이것 역시 뜯어 보면 돈 걱정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도 그게 돈이 되지 않으면 그것만큼 괴로운 일이 없다. 그것은 내가 누구보다 더 잘 안다. 평생 돈 걱정을 하지 않는 것만 하더라도 우리는 인생의 가장 큰 고민을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다. 대신 그 시간에 보다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제껏 내가 돈에 초연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그것을 제대로 가져본 적 없었기에 내가 먼저 거리를 두게 된 것이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확실히 깨닫는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에게 가장 부러운 한가지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돈이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돈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것인지 그것을 최악의 상황이 아닌 좋은 경험으로 체득한다. 돈과 친해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시작점을 가졌다는 것. 그것은 정말로 축복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껏 돈을 가져 본 적 없었던, 누구에게도 제대로 배워본 적 없었던 예전의 나와 같은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도 이젠 웃으며 돈이 좋다고 말하자. 



돈은 정말로 좋은 것이고 우리를 더 우리답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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