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소설보다 더 할 때가 많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닫는다.
소희는 막 신논현역에 있는 1층 이자카야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그녀가 굳이 일자리를 구한 데에는 최근 쓰기 시작한 글이 잘 써지지 않았던 것과 지루한 일상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무덥고 후덥지근했던 한여름 더위도 신기하게도 9월이 시작이 되자 비가 내리면서 자주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소나기가 내리면 가끔 진풍경이 펼쳐진다. 가게 밖으로는 우산을 준비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발걸음 속도로 지나갔다. 빗방울이 보도블록 사이에 떨어지면서 지면 아래의 흙냄새를 풍기곤 했다. 소희는 그 흙냄새가 좋았다. 식당은 오후 4시에 시작한다. 주인이야 식사 준비로 분주하지만 소희는 출근하면 테이블 위와 카운터 등에 쌓인 먼지를 닦으면 끝난다.
어제 만난 그 남자도 그렇게 소희의 등에 쌓인 흙먼지들을 핥았다. 테이블을 노란 행주로 닦으면서 그 남자가 자신의 금테안경을 노란 안경닦이로 닦던 것이 생각났다.
‘아’
소희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입 안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수, 그래 이건 실수야.
이게 다 전 남자친구, 그 새끼 때문이야.
어제 낮에 남자친구가 뜬금없는 헤어지자는 문자를 보냈다.
그의 문자는 간단했다.
[[ 그동안 고마웠다. 우린 여기까지인 것 같아.
이제 새로운 길을 가보려고 해. 많이 좋아했고, 사랑했다. 잘 지내고 건강해라. ]]
미친놈.
지난 2년 동안 개새끼에 던져진 소뼈다귀 빨듯이 물고 빨고 지랄발광을 할 때는 언제고.
만나서 딱 1년간은 손도 못 대게 했었다.
맞아. 그랬지.
살짝 손만 잡고
살짝 키스만.
“안돼. 미안.”
“키스 이상은 싫어.”
“이것도 내게는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야.”
“나 약간 강박이 있어.”라는 말은 백번 즈음 했었다. 아니다. 300번이었던가.
이걸 이해해 주지 못한다면 이것도 아니라면 언제든지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에 만나던 아이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이기도 했다.
다행히 그는 그 말에 이해를 해 주었다.
테이블에서 2시간 내내 앉아 있어도 다 들어주고 다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만날 때마다, 늘 그는 소희의 칭찬을 했다.
“넌 눈이 맑아. 그래서 좋아.”
“와, 넌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냐.”
“잘록한 허리에 큰 키. 너무 매력적이다.”
딱 날짜 하나도 안 틀리고, 작년 9월 9일이었다.
9월 9일은 뭐라고 하던데, 소희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 기억하기도 좋네. 생각해 보니 그건 그의 전략 같은 것이었다.
밤 9시였으니까. 그 문자는 아직 핸드폰에 있다.
[[ 나 죽어버릴 거야. ]]
뜬금없이 문자 한 통이 남자친구에게서 왔었다.
소희는 너무 놀라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다 가도록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시 그 행동을 세 번 즈음 더 하고 나서야 그는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야. 어디 있어? “
남자의 전화기 너머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겹쳐서 났다.
소음으로 추측건대 밖인 듯싶었다.
“가도 돼?”
자신도 생의 끝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걱정이 일단 안도로 바뀌면서 소희는 원칙을 깼다.
처음 소희의 오피스텔에 들어온 그는 술에 꽤 취해 있었다.
그가 들고 온 와인을 마셨다.
“안된다고 했잖아.”라고 했지만 그는 완강히 그녀에게 직진했다.
이건 신고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녀는 아프기만 했다.
막상 다 하고 난 뒤에 그의 말은
“어라, 처음이 아닌가 봐?”
그의 말은 유리파편처럼 소희의 가슴 어딘가에 박혔다.
그래서 다시 허락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이제는 오피스텔에 술 취해 와서는 결혼하자고 난리를 피웠다.
그게 진심인 줄 알고 모든 것을 허락했다.
약속했던 말은 아침이 되면 그건 증발한 수증기처럼 사라졌다.
“내가? 결혼을 얘기했다고? 에이 우리 집 형편 알면서 그래. 아직 형도 가야 하고 택도 없어. 그야 그 말하면 네가 좋아하니까 한 것이겠지. 너 시집 많이 가고 싶은가 보다. “
같은 입으로 두 말을 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걸 뻔뻔하게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소희는 속옷만 입은 채로 남자친구의 뻔뻔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갈비를 먹고 이빨을 쑤시듯이 그는 때가 낀 긴 손톱으로 어금니 쪽을 쑤셔대었다.
그녀는 한번 참기로 했다.
반복되는 패턴이 지난 일 년간 이어졌다.
설레던 만남은 매일 다가오는 식사시간처럼 규칙적이 되고 유통기한이 지난 밑반찬처럼 군내 나고 짠내가 풍겼다.
이제 카페에 앉아서도 남자친구는 핸드폰에 눈길을 더 많이 두었다.
소희가 작정하고 빨간 팬티에 분홍색 레이스가 달린 브래지어를 하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간 적이 있었다.
남자친구가 자신을 쳐다보는 시간을 세었다. 5분 남짓 그 외에는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오히려 불쌍했는지 그녀를 2시간 내내 지켜봐 주었다.
그녀가 남자였다면 소희는 그녀와 사귀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이는 매년 나무의 나이테처럼 피부에 결을 다르게 했다.
마음도 조금씩 조급해졌다. 과연 이 남자와 결혼을 해도 되는 것인지 확신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것도 귀찮았다. 그냥 이 남자 만나고 있다가 나이가 들어서도 이 남자가 옆에 있으면 결혼하는 것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소희는 울적해졌다.
남자의 관심사항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엔 자신인 줄 알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남자는 이력서를 백 군데도 넘게 냈지만 번번이 떨어졌고, 서류통과한 곳도 몇 군데 되지 않았다. 그리곤 최종에서는 항상 탈락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지만 몇 달 반짝하다가 이젠 동네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고 했다.
돈을 못 버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만 성실하게 해도 먹고사는 것은 문제가 없으니까.
금이 가기 시작한 사이는 때로는 허물어진 벽 보다 위험하다는 걸 소희는 몰랐다.
“수영으로 한번 아르바이트해봐. 그것 국가대표 상비군도 들어갔었다며.”
“에이, 그건 아줌마들에게 둘러싸여 살아야 해서 싫어.”라고 말할 땐 이 남자가 믿음직해 보였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이 알고 보니 수영강사를 하는 것이었으며, 그가 핸드폰을 계속해서 보는 것은 수강생관리를 한다는 핑계로 그녀들과 문자를 주고받는 것이란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추궁을 하니, 그는 아니라고 잡아떼다가 술술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 뱉어냈다. 하긴 본인도 가슴에 담긴 힘들었을 것이었다. 소희는 기가 막혀서 한마디를 했다.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수강생들이랑, 그것도 멀쩡한 아줌마들하고 섹스나 하고 다니고 네가 인간이야?”
“적당히 해라.”
그게 그저께까지의 일이었다.
추궁당하는 일이 싫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어제 온 그 문자.
[[ 그동안 고마웠다. 우린 여기까지인 것 같아.
이제 새로운 길을 가보려고 해. 많이 좋아했고, 사랑했다. 잘 지내고 건강해라. ]]
소희는 일하는 내내 밤 10시까지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손님이 뜸해지자 좀 일찍 나간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냥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늘 알바를 하려고 오고 가고 하던 길 옆 클럽 앞에 섰다.
이런 곳은 친구랑 같이 간다고들 하던데, 그 흔한 절친 하나 없었다.
그냥 학교 다닐 때부터 조용히 지냈다. 존재감도 없이 고요한 하루하루를 보냈을 뿐인데.
사회라는 곳이 그렇게 친구가 필요한 곳인 줄 몰랐다.
생각해 보니 학교에서는 도대체 뭘 배운 것일까.
미분 적분 보다 친구들과 잘 지내는 법이나 리더십 같은 것을 가르치는 편이 더 실용적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소희는 어제 난생처럼 클럽이란 곳을 갔다.
이제 겨우 27살.
뭐 하고 산다고 클럽도 제대로 못 가봤다.
토토가라는 촌스런 이름이었다.
평일 9시까지 무료입장이라고 쓰인 곳.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 속에 숨어 있었다. 하도 화가 나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친구를 생각하면서 분을 삼켰다.
그녀의 분노는 춤으로 이어지고 귓청을 울리는 소리를 따라갔다.
소희는 이따금씩 바 옆에 난 검은 유리 쪽에 자신을 비추어 보고 했다.
껑충한 키에 핏기 없는 얼굴, 절대 예쁘지 않은 민낯.
그냥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눈을 감고 음악에 몸을 맡겼다.
머릿속에서는 그 새끼 생각이 영화처럼 흘러갔다. 그뿐이었다.
다행히 사람들이 많아서 자신이 혼자 온 것을 예의주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괜찮아요?”
얌생이 같은 남자라면 거절을 하려고 했다.
너무 잘생긴 남자도 부담스럽다. 남자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덩치가 큰 곰 같은 남자였다. 돌아가신 아빠 같은 남자였다.
일단 소희는 전 남자친구와는 다른 비주얼에 합격점을 주었다. 10점 만점에 8점.
좀 더 또래였으면 더 주었을 텐데 아쉽게도 한 눈에도 키는 컸지만 배 나온 아저씨였다.
놀란 눈으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남자는 연애에 익숙했다.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여기 처음 왔어요.” 남자는 소희가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여자의 변화구 싸인을 알아들었고, 바로 포수 미트를 들이댔다.
“나갈래요? 많이 취한 것 같은데.”
남자는 마치 선인장을 옮기듯이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남자의 차는 기사가 있었고, 남자는 처음이니까 하면서 바로 그녀를 남산 쪽의 별 다섯 개로 쏘아 올렸다.
자동차가 미사일처럼 미끄러져 단번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호텔 객실의 문이 닫히기 전까지 둘은 남처럼 뻘쭘하게 서 있었다.
술이 더는 깨지 말아야 할 텐데.
오만가지 생각이 소희의 머리를 스쳤다.
일단 술은 많이 마신 것은 분명했다.
한 가지 이렇게 푹신한 바닥은 도대체 청소를 얼마나 어떻게 해야 관리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이 열리자 남자는 소희를 번쩍 들었다.
힘이 세다.
남자친구는 가냘펐다.
중년 남자가 이렇게 힘이 세도 되는 건가 싶었다.
이런 건 반칙이 아니던가.
남자는 그라운드 위에서는 메시 같았다.
세계적인 축구선수 메시.
그는 강함과 부드러움을 다 가졌다.
남자친구는 그녀보다 키가 조금 컸는데 이 남자는 무게감은 거의 두 배다. 그녀는 한라산을 상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굵은 팔뚝과 허리힘에 소희는 몇 번을 산을 오르내렸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모래톱을 넘나드는 흰 파도의 철썩거림이 오고 갔다.
이게 원래 이렇게 땀이 나는 것이었나.
그녀는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아. 도대체 몇 번을...”라는 말이 다음 차례에 또 묻혔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아저씨라서 미안.”
격렬한 시간이 지나서야 제대로 남자를 보았다.
남자의 나이는 많아 보였다.
“아가씨라서 미안.” 소희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금 전 엎어서 정상을 보내준 남자에 대한 예의의 인사였다.
남자친구와 딱 한 번 이것보다 별 하나가 낮은 호텔에 간 적이 있었다.
그녀가 반 강제로 한 후, 두 번째는 버틸 때 전 남자 친구가 결혼 어쩌고를 시현할 때였다.
그때 4성 호텔이라면서 짐짓 티를 내던 전 남자친구는 이내 호텔 객실 내부에 있는 바에 있는 것은 절대 손도 대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 절대의 금기된 것들은 지금 소희 앞에 있는 반달곰만 한 남자 앞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헝클어지고 있었다. 그는 큰 손으로 작은 양주병 두 개를 땄다. 저런 양주가 있었던가.
“부족하면 더 시키면 돼요.” 남자가 웃었다.
작은 초콜릿바도 반으로 쪼갰다. “ 다 먹으면 살찌니까 이건 나누어 먹어요.”
양주에 초콜릿이 잘 어울린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쓴 알코올이 단물이 얹어지니 미소가 나왔다.
식도를 통해서 술이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가끔은 양주 한잔씩 해도 좋아요. 대신 운동도 해야 하지만.” 남자는 여유가 넘쳐 보였다.
“아저씨는.... 결혼하셨죠?”
소희는 남자의 다음 대답이 예스일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물었다.
만남은 이것으로 끝이니까.
“아니. 사실은 나 오늘 이혼하고 오는 길이야.”
의외의 말이 직구로 들어왔다. 어쭈 이것 봐라.
남자가 작은 납작 양주병을 들어서 한 모금을 들이켰다.
“정말요?” 소희가 물었다.
남자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점수가 막 0.5점 올랐다.
“남자친구 있어?”
“저도 오늘 이별통보받았어요.”
남자가 자신의 시선이 툭 튀어나온 자신의 가슴을 향하는 것을 느끼자, 소희는 하얀 이불을 가슴께까지 끌어올렸다. 속옷만 입은 채로 창 밖을 보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니 몸집이 자신보다 거의 두 배는 커 보였다. 몸이 좋았다.
“그럼 우린 패자부활전이네.”
남자가 환하게 웃으면서 몸을 돌렸다. 정면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땐 그랬었다. 간도 쓸개도 빼줄것 처럼 하더니만.
개새끼가 둘로 늘었다.
팔자에 결혼이고 연애고 없다고 하던 점쟁이의 저주가 생각났다.
그게 지난주의 일이었다.
그리고 연락도 없었다.
그럴 줄 알았지만 소희는 내내 서운했다.
"어험..." 하는 소리에 식탁을 닦다 말고 식당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환한 밖 햇살 때문에 막 가게에 들어온 남자의 모습이 검정 실루엣으로만 보였다.
눈살을 찌푸려서 얼굴을 보니 어디서 많이 본 남자다.
그 아저씨?
여긴... 어떻게?
반팔 폴로셔츠에 흰 바지를 입은 사람은 지난주에 만난 그 남자였다.
지난주에 말했잖아. 여기서 근무한다고. 4시부터 시작한다고 했잖아. 벌써 잊었어?
설마 날 실수 정도로 생각한 거야? 이거 아주 실망인데.
그럼 왜 연락을 안 했는데요?
소희의 표정이 새침했다.
나 두바이 출장 간다고 말했잖아.
기억 안 나요? 아가씨?
“저 아르바이트해야 하는데요.” 소희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이거.” 하도 당황해서 남자의 손에 들린 분홍색종이와 투명비닐로 겹겹이 싼 푸짐한 꽃다발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어디 유명한 플로리스트가 만든 작품 같은 꽃다발이었다.
“흠, 당장 그만 두면 안될까?.” 남자의 표정이 부드러웠다.
“네?” 당황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기분이 살짝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멋진 남자는 왜 버려진 것일까.
어쩌면 운동을 싫어하는 여자가 한 번도 안 신고 버린 운동화 같았다. 소희는 운동을 좋아했다.
“운동 좋아해요?” 소희가 뜬금없이 물었다.
“저야, 정말 좋아하죠. 뭐 할까요. 수영? 골프? 테니스? 다 좋습니다.” 남자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뭘 하든지 우리 회사에서 직원이 필요해요, 회사 돈 좀 관리해 줄. 나랑 데이트도 하고.”
“지금 저한테 같이 일하자고 하는 거예요?”
“아니, 같이 살자고 하는 건데.”
“아니 이렇게 막무가내면 어떡해요. 시간도 필요하고.. 또.”
“세상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는 거지. 꼭 사랑에 한 가지가 어딨어. 우리가 무슨 아인슈타인도 아니고.”
“아인슈타인이 거기서 왜 나와요?”
“그러니까 삶의 방식에는 이유가 없다고 하는 거지. 그냥 우연히 만났는데 난 네가 나랑 너무 잘 맞다고 생각했어.”
“저에 대해서 뭘 아시는데요.”
“그러니까 알아가면 되지.”
“넌 뭐가 불만인데.”
“...............”
'불만이 없어서 불만이라면 이해를 해 줄까?'라고 소희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라서 싫어?”
“그건 아니에요.”
“그것 빼곤 다 해줄 수 있어.”
“혹시 가정부나 빨래를 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 그런 거예요?”
“가정부는 있는데 무슨.” 남자가 양손을 벌렸다.
소희는 그냥 화가 났다. 몸에 걸쳐진 앞치마를 던졌다. 자신의 일상에. 자신을 버린 남자친구에게.
2년을 만나고, 20년을 만나고 무슨 의미가 있는가. 늘 긴장감을 가지고 신선함으로 만나면 그게 최선이다.
어쩌면 하룻밤의 원나잇일 수도 있고 그게 계단의 시작인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데, 거창한 호텔을 잡고 '선'이라든가 '소개팅'이라든가 하는 격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나에게 딱 맞는 한 사람은 우연히 동전을 줍다가도 만나고 당근마켓을 물건 팔러 나갔다고도 만난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다가도 만나기도 한다. 그녀에게는 처음 간 클럽에서 만난 것뿐이다. 소희라는 짚신에 맞는 다른 한 쪽말이다.
그냥 남자에게 몸을 날렸다. 이번엔 직구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