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나다아재 Oct 21. 2024

천사와 악마의 대화

지혜는 왜 요즘 지옥이 만원인지 궁금해 한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새벽 2시, 롯데월드타워 꼭대기 테라스에 천사중에 막내인 지혜와 악마중에 막내인 점백이가 급조한 소파를 놓고 가운데 원탁 테이블을 놓고 앉아 있었다. 원탁테이블 위에는 와인병과 와인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선배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든가요?” 

천사들에서도 제일 막내인 지혜가 입을 열었다. 


“야, 쓰바, 나도 막내잖아. 너무 바빠서. 뭐가 궁금해서 불렀어?” 

악마 중에서 제일 부하인 점백이가 답했다.  


“어차피 오늘 여기 와야 하잖아요. 전에는 일하면서 자주 부딪혔는데, 왜 그렇게 바쁘신데요?”


“야, 쓰발, 요즘 우리 쪽은 아주 대박이야. 다들 지옥으로 사람들이 너무 밀려 들어와. 심사할 필요도 없어. 그리니 난 매일같이 현장에 나와 있다고, 안 보이는 건 자네도 만.”


“호호, 맞네요. 우리 쪽은 문지기도 맨날 존다고 하더라고요. 덕분에 저까지 한가하죠. 다행히 오늘은 천국 예약된 사람이 있어서 왔지만요.” 


둘의 시선이 아래의 특정 00 모텔이라고 적힌 건물로 향했다. 


지혜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없어서 한가한 것 좋지만, 요즘엔 일이 없어도 너무 없다.  

지혜가 말을 이어서 계속했다. 


“선배님 쪽 대마왕은 좋겠어요.”


“이제야 깨달은 거지 뭐. 뭐. 흑사병이니, 2차 세계대전이니 하면서 인간 간들을 전쟁과 공포로 마구잡이 힘으로 몰면 인간들이 겁에 질려서 다 자신을 추앙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뿐이라고.” 

점백이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게 뭐 그렇게 실수였나요? ”


“허허, 천사인 자네가 이렇게 역사에 무지해서는 되겠는가?”


“저는.... 역사는 잘 몰라요.”


“자네 그럼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가 몇 명이나 학살한지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엄청 많이 했지요.”


“그래 몇 명인가?”


“.........................” 지혜는 딴청을 피우면서 은빛날개만 퍼덕였다. 


“그래, 자네가 그래도 천사라도 되었으니 다행이야, 우리 쪽에 왔으면 자네는 반 죽음이라고 봐야지. 히틀러는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을 죽였다네. 이건 역사책에서도 아주 기초적인 부분인데...”


“아, 600만 명 맞네. 맞아요. 이제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나네요.”


“허허, 참 천사가 이렇게 무식해서야. 뭐 자네만 그런 게 아니니 걱정 말게나. 내가 만나 본 천사 들치고 뭐 그렇게 똑똑한 천사들은 거의 못 봤으니까. ”


“선배님도 참 제가 천사가 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이해 좀 해 주세요.”


“그래, 뭐 때문에 이렇게 빨리 보자고 한 건데?” 점백이가 머리 쪽의 뿔을 만졌다. 


“궁금해서 그래요, 도대체 그쪽에 새롭게 영입된 브레인이 누군가 해서요 “


지혜가 은빛 날개를 한 번 펼쳤다가 다시 자신의 등에 잘 붙였다. 


“별 것 없어. 그냥 큰 틀의 전략이 바뀐 것뿐이야. 사실 새로 영입된 것이 아니라 그 친구의 전략이 이제야 빛을 발하고 있는 것뿐이야.”


점백이 와인잔에 와인을 가득 따라서는 한 모금을 마시고 담배도 입에 물었다. 


“그러니까, 좀 알려달라는 거지요.”


“인간의 본성을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그전에는 힘든 부분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심리학자, 선동가 이런 인간 본성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대거 우리 쪽에 영입되면서 시작된 걸세. 그 연구소의 선봉장이 누군지 아는가?”


“저는 그런 쪽으로 잘 몰라요. 누군데요?”


“자네, 괴벨스라고 들어보았는가?”


“아니, 난 처음 듣네요.”


‘허, 그러니까. 자네 대학은 나왔나? 난 국내 최고의 대학을 석사까지 졸업했다고’란 말을 점백이 하려다가 반짝이는 지혜의 날개를 보고는 주춤했다. 왠지 자신의 검붉은 뿔이 초라해 보이는 것 같았다. 


점백이가 자신의 휘어진 뿔을 오른 손바닥으로 훑듯이 만졌다. 그 뿔은 마치 머리의 한 장식처럼 반원모양으로 어깨까지 나와 있었다. 마치 물소의 뿔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과거 나치 독일 때 파울 요제프 괴벨스라는 사람이 있었다네, 1897년에 태어났지. 아돌프 히틀러의 가장 가까운 심복중 한 사람이었지. 그는 대중의 심리를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네. 결국 그가 설파한 반유대주의 덕분에 홀로코스트등 독일 나치의 악행의 설계가 가능했다네. 소아마비로 다리가 굽었지만 악행만큼은 엄청났지. 그는 살아서 악마의 칭호를 받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어. 사람들이 그를 두고 ‘절름발이의 악마’라고 불렀거든.”


“와, 정말 선배님은 정말 모르는 것이 없네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 지혜가 감탄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괴벨스가 남긴 아주 유명한 말이 있다네. 우리가 아주 좋아하는 말이지.”


“그게 뭔데요?”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란 말이야.”


“오, 섬뜩한데요.”


“그렇지? 허허. 대단한 친구야. 그런 괴벨스가 지옥에 와서 제일 먼저 놀란 것이 뭔지 아는가?”

“뭔데요?”


“그의 첫마디가 아주 웃겼지, 어라, 내가 보낸 유대인들은 다 어디 있어요?”


점백이가 양손을 벌려가면서 얘기를 하느라 담배연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가뜩이나 큰 몸집 차이가 양손을 벌리자 점백이는 엄청나게 커 보이고 상대적으로 지혜는 왜소하고 작아 보였다. 


“정말요? 다 어디 갔는데요?”


“허허, 다 자네 나라에 있지. 자넨 거기 국민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천국시민들의 출생국가도 모른단 말인가. 자신이 기획해서 죽인 600만 명의 유대인 대부분이 천국에 갔다고 말이야. 허허, 아주 놀라더군.”


“그건 뭐 그럴 수도 있겠죠?” 지혜가 어깨를 으쓱하고 올렸다. 


“그는 이런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 같았어. 홀로코스트 같은 학살을 벌 일 때 그가 조금만 더 생각했으면 좋았을 텐데, 괴벨스가 전혀 생각도 못한 것이니,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대마왕도 뭐라고 하진 않더라고.”


“홀로코스트 같은 사건은 영화로만 봤지만, 지금 생각해도 끔찍해요.” 천사 부하인 지혜가 어깨를 감쌌다. 


“하여튼, 괴벨스의 그런 만행 때문에, 아 히틀러도 마찬가지고 그 둘의 만행 때문에, 그 당시에 우리 쪽으로 들어오는 영혼들이 씨가 마른 것이었어. 우린 그때를 '지옥대기근'이라고 부른다네, 지금도. 난 물론 그때 없었으니 전설로만 듣고 있지만.” 점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요?”


“매주 몇 천명씩 그냥 천국행이더라고. 분명 겉으로는 가스실에, 총살에, 고문에 난리도 아니었는데 지나고 보니 이게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것이다고 하더라고.”


“아하, 그때 나도 들었어요. 그때가 '천국대흥행기'였다고 하더군요. 이곳에 오자마자 가브리엘이 일단 봐야 한다고 책을 줘서 ‘천국의 역사’란 책에서 읽었죠. 웃긴 건 보통은 걸어서 올라오는데 너무 한꺼번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특별 열차를 편성해 주었다고 하더군요.”


“그래, 그것 봐, 600만 명이 한꺼번에 천국엘 간 거야. 심지어 그 안에는 유대인이었지만 소매치기나 도둑이나 강간범이나 나쁜 놈들도 많았거든. 당연히 지옥에 와야 했고, 그 사람들도 인지를 하고 있었어. 우리가 가끔 꿈에 나타나서 어떤 놈을 스카우트해야 하나 하고 논의하고 그랬거든. ”


“그랬구먼요. 말씀 중에 죄송한데, 지금 밑에서 그놈이 8층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질렀어요.”

“그래, 그것 때문에 온 것이잖나. 뭐 맨날 일어나는 사건을 볼 때마다 저렇게 흥분하고.. 쯧쯧.” 점백이가 고갤 가로저었다. 


“덕분에 어디까지 말했는지 까먹었잖아.”


“600만 명이 천국에 갔다고'까지 말씀하셨어요”


“그래 맞아. 매주 그렇게 가스 수용소 만들어서 수천 명의 사람들을 실어 날라서 밀실에 가둬놓고 가스를 틀어 재꼈으니... 삶의 끝, 그 순간에 사람들이 어땠는지 알아?”


“어땠는데요?”


가스실에서 무릎 꿇고 울면서 기도하고 신께 구원을 빌었어.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빌었지. 신은 당연히 그걸 받으셨지, 마치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한 강도에게 했듯이 한 용서를 똑같이 베푸셨다네.” 아이러니하게도 악마 부하인 점백이가 입에 침을 튀겨가면서 말했다. 


“오호, 대단하네요, 저도 잘 모르는 걸 당신은 어찌 그리 자세히 알아요?” 지혜가 감탄한 듯이 말했다. 


“우린 자네들의 역사를 공부하거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그리고 잊었는지 모르지만 자네 쪽은 주로 무지하고 무식하고 부족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가지만 우리 쪽은 대학자, 대문호, 군대의 대장, 깡패두목, 빤스목사 등 웬만한 힘 있는 사람들은 다 온다네. JMS인가 웃긴 놈도 이곳에 예약되어 있다네 걔는 벌써 간부라네, 죽지도 않고 벌써 악마군단의 간부라니 웃기지 않나. 허허허.”


“호호호. 참 얘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컴백 선배는 말이 청산유수예요.”


“당연하지 웬만한 자네가 아는 정치가 이름을 대 보게나, 여기 다 있거든. 우린 정기적으로 그들을 불러놓고 세미나도 한다네. “


“오호, 대단해요”


“물론 그들은 그 세미나를 마치면 다시 펄펄 끓는 유황불속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단 하루라도 뜨겁지도 않고 시원한 물도 마실 수 있는 강사 자리를 차지하려고 정말 피 토하는 마음으로 고문을 견딘다네.”


“세미나는 자주 해요?”


“허허, 일 년에 한 번 정도 한다네. 그 한 번이라도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견디는 거야. 안 그러면 미치겠지. 자네 생각해 보게나. 프라이팬에 살짝 손만 데어도 얼마나 뜨거운데 그런 곳보다 훨씬 뜨거운 고통을 영원히 견뎌야 한다는 생각 말일세.”


“생각만 해도 끔찍하구먼요.”


“나야, 출퇴근할 때마다 매일 보는 광경이지만 아무리 봐도 절대 익숙해지질 않는다네.”

점백이가 뿔 달린 머리를 하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서, 선배님 쪽이 그런 상황인데도 요즘은 들어오는 사람들이 메워터 진다는 것인가요?”


“참, 나도 이쪽에 있지만 마케팅을 정말 잘하는 것 같아.”


“그쪽 브레인이 누군데요?” 지혜는 자신이 아까와 비슷한 질문을 하고 있다는 걸 못 느끼고 있었다. 


그런 지혜를 보면서, 범백은 화를 한번 삭였다. 


누가 '브레인'이란 단어를 한 번 써서 그 말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 일터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의 마케팅 방법은 괴벨스란 사람의 입국,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네. 그가 와서 모든 것을 바꿔놨지. 마케팅 방법과 사람들을 선전선동하는 방법 등은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네.”


“아......”


“그건 우리 악마들도 인정하는 바라네.”


“흠.. 참 그러고 보니 우리 쪽의 최고 마케터는 누구지 바보 이반인가?” 지혜가 혼잣말을 하듯이 생각을 해보니 천국에는 딱히 마케팅을 잘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혜, 자네는 정말 무식하군, 그래. 바보 이반은 사람이 아니야, 톨스토이가 쓴 소설의 주인공이지.”


“아, 맞네. 맞아요. 맨날 듣고도 까먹는다네요.”


“그것보게나, 정보의 빈익빈 부익부라니까. 자네 쪽도 마케터 좀 영입을 하게나.”


“문제는 선배님 쪽처럼 열심히 영업을 하는데 우리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으로 만족을 해 버려서 더 이상 영업이 안되네요. 왜 그렇게 열심히 영업을 하는 건가요? 정말 궁금하네요. 그게 무슨 인센티브라도 있나요요?”


“허허, 이 친구 아직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지옥에서 무슨 동기부여가 있는지 정말 궁금해서 그래요.”


“자네 날 놀리는 건가? 아니면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건가?”


“정말 몰라서 물어본답니다.” 지혜가 눈을 크게 떴다. 


우리는 이곳이 너무 최악으로 힘드네, 그것이 동기부여라네.


“허허, 미안하네요, 들었지만 한 번에 이해가 안 되는군요.”


“나만 이렇게 최악의 지옥에 있을 수 없다는 말일쎄. 그게 동기부여라니까.”


지혜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그런 동기부여 따위는 궁금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아. 이미 자네들도 향후 10년 후 20년 후 과학 발달 예측 리포트를 받아보겠지만, 우린 그것을 더욱 발전시킬 아이디어를 인간들에게 제공할 생각이네. 인간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요즘 우리 목표야.”


“인간을 돕는다니 아니러니 하네요.”


“처음엔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인터넷 발달과 AI 발전에 우리가 동의해서 지금의 인류의 과학문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나?”


“그렇긴 하죠.”


“그게 모두 천재 마케터 괴벨스의 책략이었다네.”


“호호. 그가 그렇게 예측을 했다는 말인가요.”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정확히 40년 전에 그런 말을 했었다네. 앞으로 트랜지스터의 발전이 컴퓨터 반도체로 이어지고 그것이 결국 통신의 폭발적인 성장을 통해서 인터넷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했지. 그는 혁신적인 과학의 발전은 결국 인간의 물질문명은 발전시키겠지만 그를 능가하는 본질의 이해력을 높이지 않는 한 인간은 결국 바퀴벌레와 다름없이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네. 우리 모두는 그의 세 치 혀에 매료되고 말았지. 그게 아부고 말도 안 되는 언어의 유희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빠져들었지.”

“오호. 그래요?”


“그 이후로는 자네도 다 아는 내용일세, 괴벨스의 예언처럼 사람들은 눈만 뜨면 핸드폰을 열어서 SNS를 접속하고 특별히 할 일도 없이 너무 자주 빠르게 거의 실시간으로 비교되고 있지. 과거의 선조들은 눈을 뜨면 어제 읽던 철학책이나 소설 같은 것을 봤었지. 그건 우리들에겐 정말 짜증 나는 일이었어. ”


“인간들이 책을 보는 것이 왜 짜증 나는 일이었을까요?”


“자네 정말 나를 아주 화나게 하는군.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아니면 멍청해서 모르는 거야?”

점백의 눈이 지혜를 향했다. 그의 붉은 눈에는 핏발이 올라왔다. 그가 눈에 힘을 주면 상대의 거짓말을 파악할 수 있다. 


'어허, 이 친구 정말 진실을 말하고 있군. 아주 좋겠어. 머릿속이 완전 백지야, 백지.'

점백은 눈에 힘을 풀었다. 그가 보기에 지혜는 순박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책은 너희들에게 속해있지. 물론 몇몇 책을 빼곤 말이야. 그 안에도 우리 쪽에서 작업을 해 놓은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거의 대다수의 책들은 사유의 깊이를 더해준다네.”


“사유의 깊이요?”


그건 인간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익힌다는 뜻이지. 우린 사람들의 상상력이 깊어지는 것을 매우 우려하지. 전 지구상에 저렇게 책을 깔아 놨는데도 사람들은 책을 보지 않아. 조금만 복잡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일세. 지금 우리가 서로 하는 말을 누군가 받아서 적어놓는 것은 사실 천기누설이야. 과거 같으면 난리가 나는 일이지. 아마도 직속으로 우리 보스에게 보고되어서 난 한 달 동안은 유황불 행일 거야. 하지만, 지금은 걱정 안 해. 왠지 아나? 아무도 두꺼운 책을 읽지 않아. 책을 안 보니 뇌가 심심하거든. 그럼 뇌는 바로 뭔가 자극적인걸 원한다네. 책으로 채워야 할 상상력의 공간을 영상이나 게임에게 양보해 버리는 셈이지. 그럼 뇌는 점점 말초적인 자극을 원하지. 그럼 이제 조금 어려운 문장이 나와도 이해를 못 해. 이해를 못 하니 다시 영상만 보게 되는 거지. 결국 지나서 보면 뇌는 마치 설탕만 먹은 치아처럼 변한다네, 그걸 요즘 과학자들이 뇌의 캔디화라고 부른다고 하더군. 하하하.” 


“와, 그런가요?”


“아주 쉽지 그다음은. 이건 단순히 자네처럼 순진한 것과는 차원을 좀 달리하지. 이런 사람들은 게임에 쉽게 노출되고, 화도 버럭하고 잘 내게 된다네, 뭘 봐도 깊이 생각을 하기 힘들어하지."  


“흠... 그렇군요.”


““참 웃기는 건 뭔지 아는가. 지구도 결국 유한한 무대일 뿐이야. 저 자네 쪽의 대빵이 그걸 창조한 걸세. 우리도 잘 아는 이것을 인간은 전혀 몰라. 그걸 서로 가지려고 싸우고 전쟁하고 아주 우린 뭐 살판났지.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고 SNS를 한번 봐봐. 서로 비교하고 조금 더 가지려는 전쟁이 따로 없어. 아주 재밌다고. 서로 경쟁적으로 나 어디 해외 갔었다. 유명한 사진 하나 찍으려고 폭포 위에 올라갔다가 거기서 핸드폰으로 셀카 찍다가 떨어져서 죽고 말일세.”


“인간이 좀 무지하긴 하죠. 눈앞에 것만 본다고 우리 쪽에서도 한탄을 많이 해요.”

“조금만 자기와 다르면 따로 배척하고, 모임을 반으로 쪼개버리고.”

“호호. 그건 인정해요.”


“그러면서 뒤로는 호박씨 깔 것은 또 다 까요.”  

“호박씨요?”

“저 밑에 인간들처럼 말이야. 우리가 데리러 온 저 남녀도 마찬가지고 말이지.”

“저는 정확히는 '가난한 가족과 아이'에요. 저 커플이 아니고요.” 지혜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래서, 괴벨스의 핵심 전략은 뭐였나요?”


“웃기게도 인간을 지금보다 더 부유하게 만들어주자는 것이었네.”

“오... 그래요? 그건 우리와 비슷한 목표인데요?”

“지금 봐봐, 못 먹고사는 사람들은 없잖아. 과거와 달리 굶어 죽는 사람들 말이지.” 점백이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렇긴 하죠. 자신만 부지런하면 막일을 뛰어도 먹고사는 시대니 까요.”

“그런데, 왜 젊은 친구들이 막일을 뛰지 않는지 아는가?”

“왜요?”

“너무 창피한 거야. 현장에서 땀 흘리고, 노동을 한다는 것이 말이지.”

“아...”


“자넨 정말 아는 게 뭔가? 아무튼 , 이놈의 SNS의 발달 때문이지. 맨날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서로를 비교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네. 뭐 솔직히 막일을 가서 뭘 사진을 찍겠나. 매일 보는 것이 땅 파서, 콘크리트 기초 올리고, 철근 양생하고 하는 일인데 무슨 거기 예쁜 사진이 나오겠냐고. 결국 불나방처럼 화려하고 폼나는 일을 하는 것이지. 비교를 하는 것도 별로지만, 비교를 당한다는 것을 인간은 못 견뎌한다고.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누구는 외제차 키를 올리고, 누구는 돈다발을 올리고 아주 난리부르스도 아니지. 허허."

“이렇게 마구잡이로 비판을 해도 되나요?”


“처음에 말했잖아. 우리 쪽이 바빠도 너무 바쁘다니까. 솔직히 우리 중간관리자도 다 사라지게 생겼어. 그것 때문에 짜증도 나고 말이야.”


“중간관리자가 왜요?”


“다들 자진해서 우리 땅으로 뛰어내려 오는데 대마왕 입장에서 뭐 하러 중간관리자를 둬야 하나?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찾아오는데 말이야. 과거에는 걸어왔는데 요즘엔 고속열차로도 부족해서 그냥 에스컬레이터를 깔았다네.”


“호호, 정말요?”


“그렇다니까. 그냥 죽으면 바로 우리 쪽은 지옥행 에스컬레이터야. 지상에서 죽는 순간 바로 에스컬레이터가 열려서 그걸 타면 지하갱도까지 순식간에 내려온다네. 이제 소비와 생산이 직거래시대야. 우리야말로 진짜 그냥 바로 새벽배송보다 빠르지. 그래도 옛날이 좋았는데 49일은 걸려서 천천히 지하계단을 통해서 내려오고 그랬는데.. 중간에 잘못 온 친구들은 돌려보내기도 하고... 허허. 내가 알기로 자네 천국 쪽은 아직 계단으로 올라가는 걸로 알고 있네만. 어험.” 


“맞아요. 저희 쪽은 5일 정도 걸리죠. 급하면 3일도 걸리기도 하고요. 기존 가족들도 좀 돌아보고 오라고 하죠.”


지혜와 점백의 시선에 멀리 구름사이로 보이는 천국의 계단을 느릿느릿 천천히 올라가는 몇몇의 사람들이 보였다. 지혜는 웬일로 사람이 올라가네 하고 생각했지만, 점백은 일부러 시선을 아래의 00 모텔 쪽으로 돌렸다. 


“지금 보이나, 저 밑의 군상들이? 지금도 저기 커플들 말이야.”


점백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슬슬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점백이가 시계를 봤다.


“아직 10분 정도 남았군.”

“그렇네요.”


“슬슬 내려가지. 그럼. 이미 연기가 상당히 올라오는 것 보니까. 곧 저기 사람들이 뛰어내릴 거야.”


“저 모텔에 얘를 데리고 사는 저 식구들만 빼고는 다....”


“아까 들어간 남녀도 그쪽 명단에 있는 거죠?”


“그럼, 저기 커플은 아주 유명해, 둘 다 저기 근처에 살고 있지. 거기 앞집 남자와 뒷집 여자가 각각의 커플이야.”


“정말요?”


“아주 우리가 하도 기가 막혀서 실시간으로 중계해서 다 봤지. 주말에는 각자 핑계를 대고 어쩔 땐 자기들의 아파트로 상대를 불러서 그 짓을 하곤 했지.”


“허허, 그랬군요.”


이제 둘은 멀리 떨어진 건물에서 올라온 불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아우성이었다. 

지혜는 그들의 안부를 위해서 두 손을 모았다. 


“자, 그럼, 수고 또 보자고.”


점백이 한 손을 들어서 작별 인사를 하려고 했다.

“잠시만요.” 지혜가 다급히 외쳤다. 


“그쪽으로 예약된 사람을 돌이킬 방법이 없나요? 마지막이라도?”


“허허, 지혜, 자네 말이야, 그걸 왜 나한테 묻는가. 자네가 더 잘 알면서. 마지막이라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면 받아주는 게 그쪽 대빵이 하는 짓이잖아. 자네 이제 보니 다 알면서 나한테 물어보는 것 아닌가. 가뜩이나 항상 화가 나 있는 나한테 그딴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다니 말일세. 맨날 그래서 예약된 우리 쪽 인간들도 막판에 가로채는 게 누군데. 생각해 보니 오늘 자네가 나타난 것도 여기서 불이 난 사이에 진심으로 회개하는 인간들을 찾으려고 왔구나. 천국 마일리지 쌓으려고..... 아, 쓰발, 생각하니 열받는구먼. 흠.”


그리고는, 몸을 돌리더니 악마는 휑하니 사라졌다.   


천사 지혜는 미소를 지으면서 앉아 있었다.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조금 더 있다가 갈 예정이었다. 


예정되어 있지만 가끔은 저쪽으로 갈 사람들이 진심으로 뉘우쳐서 오는 사람들이 있다. 


지혜, 자신처럼 말이다. 그래서 오게 되면 제일 말단 천사가 된다. 천사들은 천국시민들보다 그래서 직급이 더 낮다. 이건 성경에도 나와 있는 말이다. 오죽하면 예수님이 그랬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 가운데 침례인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은 없었느니라. 그러나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사람이라도 그보다 더 크니라 (마 11:11) >


세례요한조차 천국에서는 가장 낮은 사람이라고. 그가 우리의 본부장이다. 


여기서 천국 마일리지 100만 점은 쌓아야 천국시민이 될 수 있다. 


열심히 뛰어서 100만 점을 꼭 쌓을 생각이다. 사람 한 명당 0.1점이 쌓인다. 


100만 점을 쌓으려면 1천만 명은 데리고 와야 한다. 여기에 어차피 올 사람을 데리고 오는 기준이다. 저쪽으로 갈 사람을 데리고 오면 10점이다. 


자신이 맡은 서울지역에서 과연 얼마나 걸릴지 엄두가 안 나지만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10점짜리 인간들이 많으면 좋겠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좀 암울하다.  


그의 시선이 밑에 불타는 건물로 향했다. 


하지만, 지금은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정해진 것에 대해서 천사가 개입할 수도 없다. 


천국시민이 나서면 좀 다르지만.


지금 지혜가 바라는 것은 한 명이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자신들의 천국으로 오길 바라는 것뿐이다. 


저쪽과 달리 지혜네 쪽은 천국예정자가 준비되면 일단 지상에서 투어를 좀 시켜줘야 한다. 막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끝에 다다른 상황을 파악하고 미련이 생기지 않는다. 


어느 정도는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결국 나중에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야, 천국에서도 그들이 편안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으니 말이다.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