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는 올해 45살이다. 아이도 없이 10년을 살았고, 이혼 5년째가 지나자, 삶이 심심해졌다. 중소기업에서 총무과 부장을 하고 있지만 과장이랑 월급이 겨우 50만 원 차이나는, 그야말로 말만 부장이었다. 직원이라야, 이제 겨우 6개월 전에 입사한 사원급 직원 한 명이 전부.
이혼한 아내가 그의 친구들과도 친했던 터라 그는 이혼하면서 친구들 관계도 대충 소원해졌다. 그렇게 5년이 지나자 그는 사람들과 만나서 부대끼는 분위기가 그리워졌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슬슬 모임을 나가기 시작했다. 인터넷 동호회에서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원래 그는 이런 곳에 나올 자격이 안되지만, 이곳 총무가 그의 절친 찬주였다.
“나도 좀 그 대표들하고 좀 만나고 그렇게 해주라.”
그는 친구 찬스를 썼다. 두세 번 그렇게 찬주를 졸랐다.
“그래, 대신에 나와서 절대 찐따짓 하거나 격 떨어지게 행동하면 그날로 바로 넌 아웃이야. 알겠어?”
“그래, 잘 알았어. 친구 좋다는 게 뭐냐. 크크.”
명주는 찬주가 이끄는 모임을 잘 알고 있었다. 대표들이 모여서 세미나도 하고 어려운 사람도 도와주는 일종의 소셜기부의 형태로 운영된다고 들었다. 엄청난 부자부터 적당한 규모의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각종 책을 집필한 저자들도 있고 그런 모임이라고 술 마실 때마다 찬주가 말하곤 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명주는 모임에 나가자마자 한 여자에게 꽂혔다. 시선이 그냥 고정되었다. 첫눈에 반한 여자를 만나긴 처음이었다. 딱 더도 덜도 말고 자기 스타일이었다. 첫 결혼한 아내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찬주야, 저 여자 누구냐? 엄청 미인이다.”
“캬, 예나 지금이나 여자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저 누나는 네가 넘볼 수준의 누나가 아니야. 신경 꺼라.”
“몇 살 차이인데 누나야?”
“두 살.”
참고로 찬주는 명주보다 한 살이 어렸다. 그럼 뭐 거의 동갑이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여자의 이름은 현아였다. 그녀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회사의 오너라고 했다. 정기 세미나를 마치고 그는 뒤풀이 모임장소로 향했다. 그가 모임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모임의 총무인 찬주와 한 테이블에 앉았다.
“부자들이 더 이런 소탈한 맛집을 좋아해, 여긴 실내포차 같은 분위기지만 서울시내에서 생골뱅이를 먹을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어. 왠지 알아? 여기 사장의 친동생이 동해안 포구에서 선장이거든.” 찬주는 물어보지도 않은 말들을 마구 쏟아냈다.
“저번에 삼성동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 와인을 마셨어. 그런데, 그 누나가 뭐라고 하냐면 그런 곳은 하도 다녀서 식상하다는 거야. 한 번을 먹더라도 시그니쳐가 될 수 있는 곳으로 좀 찾아보라고. 그래서 여기 찾은 거야. 누나는 많이 먹지도 않아. 근데 맨날 저러지. 물론 기부도 많이 하고.”
어느 모임에나 섹시하고 돈 많은 이성은 관심의 초점이다.
“현아 누나는 한 번 결혼했었어. 그때 남자와 헤어진 이후로 사랑보다는 제대로 된 사람을 찾고 있다는 소문만 들었어. 저 누나 돈이 정말 많아. 천 단위가 넘는다는 것만 알지.”
찬주는 이런저런 말을 섞어서 정보를 명주에게 주었다.
“에이, 무슨 말이야? 현찰만 그 정도고, 정말 자산까지 하면 5천억도 넘어간다는 소문이 있다니까.”
명주는 눈앞에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명주는 그의 맞은편 쪽 테이블에 앉은 여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갑자기 식욕이 확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자신을 등지고 있는 여자는 원피스 차림에 몸매도 삼십 대 후반이라고 하기엔 엄청 젊어 보였다. 그는 턱을 여자 쪽으로 향하면서 옆에 앉은 찬주에게 물었다.
“찬주야, 네가 왜 안 사귀고?”
“야, 누나? 말도 마라. 이미 남자라면 신물이 난다고 하는 누나야. 지금도 돈보고 들이대는 녀석들도 많고. 하지만 눈하나 깜짝 안 해요. 진실한 사랑이라면 모를까.”
마지막 말이 명주의 귀에 탁하고 꽂혔다.
마치 ‘언어’라는 화살이 명주의 귓속 타깃에 10점 만점으로 정중앙에 꽂히는 것 같았다. ‘진실한 사랑이라면 모를까’
그 문장은 그의 호기심을 자극할 뿐 아니라, 그의 도전의욕을 불태우게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명주는 그녀가 그런 큰 회사의 오너인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저런 부자가 이런 포장마차 같은 허름한 식당에 와서 저렇게 앉아 있다고?
블랙펄 은사가 고급스럽게 수 놓인 원피스와 은색과 검정 구슬이 섬세하게 장식된 하이힐은 한눈에 보기에도 미끈한 다리와 한쌍처럼 어울렸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 법이지.’
남자 쪽 테이블에 앉아서도 그의 시선은 여자에게서 떠나질 않았다.
마침내 여자의 오른쪽 좌석이 비자 명주는 얼른 자신의 잔을 들고 여성의 옆자리로 가서 천연덕스럽게 앉았다.
멀리서도 예뻤는데, 가까이서 보니 더 예뻤다.
“안녕하세요, 왜 술은 안 드세요?” 명주가 미소를 지었다.
“호호, 새로 오신 명주씨군요. 따라주는 분이 없어서요.”
명주는 얼른 눈앞에 맥주병을 들어서 한 손은 가슴팍에 대고 공손히 한 손으로 따랐다. 양손으로 따르는 것보다 격식은 챙기면서도 남성미를 돋보이게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가 맥주병에 집중하지 않고 여자의 얼굴을 훔쳐보다가 맥주가 잔에서 확 넘쳤다. 당황한 그가 서둘러 병을 들다가 맥주병 속에 든 액체가 여자의 손으로 넘쳐흘렀다.
“어이쿠,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실수를 다하네요.”
“호호호, 그러시네요. 이런 실수를 자주 하시는 분 아니신가요?”
명주는 굳이 날 선 답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미소를 지으면서 맥주잔을 눈앞으로 들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첫눈에 반했습니다.”
“제가 미인이라서요? 아니면 돈이 많아서요?”
“돈이 많은가요? 후후 그럼 제 대답은 둘 다입니다.”
“호호호, 솔직하시네요. 전 남자 만나러 나온 게 아니에요. 필요하지도 않고요. 하룻밤 상대를 찾으러 나온 게 아니에요. 정말 저에게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진실한 사랑을 원해요. 명주 씨는 첫날부터 이곳 모임의 목적과는 달리, 너무 이성 쪽으로 빠르신 것 같은데요.”
살짝 뼈가 있는 말이었지만, 명주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사랑에 첫날, 둘째 날이 어디 있나요. 하하하.”
“패기 있게 직진하시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란 것이 있답니다.”
그날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다음 모임은 한 달 후였다. 명주는 시내 책방에 들려서 책을 한 권 샀다.
<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 지은이 : 나태주>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서 그는 당당하게 책을 건넸다.
“어머, 이게 뭐예요?”
“누님께 드리고 싶어서요.”
“흠, 고마워요.”
2차 자리에 갔다. 이번에는 와인 숙성 삼겹살집이었다.
이번엔 주춤거리지 않고, 기다렸다가 여자가 먼저 자리를 잡자 작정하고 여자 옆에 앉았다.
“아까 오면서 차 안에서 시 읽어봤어요. 시 받아보고 다시 봤어요. 살면서 시집 선물 받아본 것 처음이네요.”
“그래요? 많이 받아 봤을 것 같은데, 의외네요.”
“여기 사람들은 사랑을 믿지 않아요, 시는 사랑을 믿는 사람들이 쓰는 거잖아요.”
“누님 근처에 계신 분들은 뭘 믿나요?”
“돈을 믿죠. 가족끼리도 유산 때문에 싸우고.” 그녀의 미소가 쓸쓸해 보였다.
현아는 사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을 접근이었다. 하지만 하도 많은 남자들이 이런 식으로 접근했다가 사라졌다. 명주라는 사람도 그럴 것이다. 남자란 동물은 몸이 아니면 돈을 목적으로 하니까. 어차피 자신은 저승길 동반자를 찾는 중이다. 누구라도 좋았다. 혼자 가면 외로운 길이 아니던가. 자신에게 돈이라는 미끼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마리의 불나방이 되고 있는 자신의 앞의 남자는 생각보다 순수한 것 같았다.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도저히 여자가 빠지지도 않을 어리석은 행동으로 여자를 꼬시려는 남자. 자신의 낚싯대 바늘이 직선이어서 도저히 물고기 한 마리도 못 잡을 낚싯대를 가지고 대어를 낚으려는 남자는 왠지 매력이 있었다. 그 직선 바늘을 자신의 아가미에 끼워보기로 결정했다.
“명주 씨는 일단 제 기준에 합격했어요. 시집 한 권의 미끼를 덥석 물다니, 저도 참.... 제가 시간이 많지 않아서 일단 급하게 합격드린 것이니까. 핸드폰 번호 하나 여기 찍어줘 봐요.”
어설픈 꽃 같은 것 들고 오거나, 계속 구애하는 건 시시했다. 시집이라. 한 번도 시집을 볼 생각을 못했다. 시집 같은 것은 한가한 사람들의 넋두리라고 생각했으니, 이 남자가 들고 온 미끼는 그래도 제법 구미를 당기게 했다. 밀당을 적당히 해야 했지만, 지금 자신의 병세는 그런 밀당을 견딜 만큼의 힘이 없었다. 그래, 불나방 한 마리 추가요.
현아가 명주에게 쑥하니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명주는 순간 날아갈 것 같았다. 마치 보물창고의 키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각자의 번호를 저장했다.
어차피 모임 회원들은 나중에 엑셀로 다 연락처가 공유되니 미리 연락처를 주고받는 것이 눈치가 보이는 상황은 아니었다.
명주는 메시지로 날아온 계약서를 보고 놀랐다. 신기함에서 나오는 놀람이었다. 맨날 매스컴에서만 떠들어대서 이런 것이 그냥 설정인 줄 알았는데 이건 혼전계약서 등이 실재한다는 것이 우스웠다.
‘그래,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대시를 했겠어. 부자라면 나라도 이런 계약서를 쓸 거야. 단지, 좀 무섭긴 하구먼. 뭐 그래도 결혼해서 저 많은 재산을 한번 써 보고 죽는 건 나쁘지 않지 않겠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자가 맥주잔에 가득 맥주를 따랐다.
“계약서는 읽어보셨어요?”
“네, 지금 막.”
“그럼 생각해 보고 답을 주세요.”
현아는 핸드백을 챙겼다. 모든 남자에게 바로 이런 답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앞에 앉은 남자는 덩치도 큼지막하고, 눈은 작지만 안경을 끼고, 적극적인 모습이 맘에 들었다. 아무리 자신이 맘에 들더라도 첫날부터 대시를 하다니. 이런 감정은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자신도 시간이 얼마 없었다. 아직은 버틸만했다. 그녀는 말기암 통보를 받고 각종 신약과 최고 약품으로 버티고 있었다.
주치의는 암세포는 더 커지지 않았지만 길면 2년이라고 했다. 2년이면 신혼생활은 충분하지 않나. 그녀는 서른다섯 살이었던 오 년 전에 첫 남편을 잃고 자신을 너무 혹사해 왔다. 그 마음에 깊은 병이 든 것인지도 몰랐다. 재산을 노리고 접근하는 남자들은 이 동호회에서도 서너 명은 된다. 그중에는 자신이 좋아서 접근한 남자도 있었다. 하지만 이 계약서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아직 체질이 그런지 통증이 거의 없어서 살만했다. 핸드백을 챙겨서 일어서는 그녀는 자신의 귓가에 들리는 말을 의심했다.
“할게요. 저.”
“네?” 현아의 눈이 커졌다.
“저, 그 순장제 연얘한다고요.”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은 취기가 올라서들 다들 자신들의 얘기에 심취해서 식당 한 구석에서 남자 여자가 서서 얘기하는 모습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저 쥐뿔도 없는 놈이에요.”
현아의 눈이 남자의 낡은 등산화 위에 머물렀다. 가죽은 낡았고, 밑판과 가운데 둥근 두포 쪽은 실이 헤어졌고, 미드솔 사이는 본드가 갈라져서 살짝 벌어져 있었다. 남자의 바지 밑단과 바지부리 쪽은 삭아 있는 것이 최소 10년은 넘어 보였다. 디자인과 패턴을 감안하면 20년 전의 제품이 틀림없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후, 그래 보이네요. 그럼 우리 진지하게 한번 마셔볼까요?”
의사는 절대 술은 마시지 말라고 했지만, 정말 가끔이면 마시되 물을 많이 마시라고 충고했다. 대신 끝까지 안 먹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현아는 혹시라도 자신의 마지막이 사랑이 될 남자를 알고 싶었다. 손님이 없어서 사용하지 않고 있던 테이블로 가서 명품 백을 탁하고 놓았다. 그리고 테이블에 붙어있는 진동벨을 눌렀다.
“명주 씨, 양념되지갈비 먹어요?”
“허허, 먹죠. 너무 좋아한답니다.”
“여기, 소주 2병 하고요. 돼지갈비 2인분 추가요.”
“담배는요?”
“피웁니다.”
“사장님 잠시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요.”
현아는 테이블 위에 자신의 핸드폰을 놓았다.
명주는 익숙한 폼으로 담배를 태워 물었다.
가게 앞까지 따라 나온 여자는 담배향이 싫지 않은 듯이 옆에 서 있었다.
“멋있어요. 냄새는 아직 별로지만.”
“네?”
“냄새는 별로라도 담배 피우는 남자 멋지다고요, 명주 씨는 주량은 얼마나 돼요?”
“저요? 한 두병 되나.”
“운동은 뭐 잘해요?”
“그냥 골고루 잘해요.”
테이블에 앉아서도 둘은 서로에게서 시선을 떼기 힘들었다.
여자의 불타는 붉은 입술과 환한 빛 같은 미소.
여기에 알코올이 부어지니 명주는 정신이 없었다.
남자의 마음이 동했다. 명주의 시선의 여자의 가슴을 향했다.
“학교 다닐 때 미련하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전 제 가슴이 싫어요. 큰 것이 마치 미련한 저를 대변하는 것 같아서.”
“그게 아니고, 아까부터 여기 고춧가루가 하나 큰 게 묻어서...”
명주의 손가락이 여자의 가슴께를 향했다.
현아가 고개를 숙여서 자신의 가슴 위를 보았다. 거기 손톱만 한 김치 조각이 붙어 있었다.
“어머, 잠시만요. 아까 김치 먹을 때 튀겼나 봐요. 제가 김치를 좋아하거든요.”
그녀는 물티슈를 들어서 얼른 닦아냈다.
“호호호, 저는 자꾸 명주 씨가 여길 보길래. 제 사이즈 때문에 그런 줄 알고. 오해해서 미안해요.”
“아뇨, 현아 씨 사이즈가 작은 것은 아니죠. 그런데 워낙 고춧가루가 커서... 하하하 죄송합니다.”
드문 일이 벌어져서 덕분에 두 사람은 기분 좋게 웃었다. 둘은 한참을 웃다 보니 서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사람들이 구석자리로 가서 크게 웃는 두 사람 쪽으로 시선을 한 번씩 주곤 했다.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둘은 그날을 계기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서로의 SNS를 공유하고, 매일 문자를 주고받았다. 하루는 영화, 그다음 날은 저녁식사 그리고 다음날은 미술관 관람으로 매일 오후에는 만났다.
명주는 마침 티켓예약 플랫폼 회사에 근무하는 친구가 90% 할인된 직원가로 구해준 VIP석 오페라 티켓을 구해서 전화를 걸었다. 한일전 월드컵 예선 축구가 있어서 일주일 전부터 취소가 불티나게 생긴 오페라였다.
“내일 오후에 오페라 티켓이 있는데 같이 갈래요?”
“좋죠, 어디서 만날까요?”
“예술의 전당 지하 3층 카페에서 만나요.”
“아뇨, 한 시간 정도 일찍 만나면 어때요? 제 사무실로 오세요. 주소 보내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가뜩이나 궁금하던 차였다. 예술의 전당 맞은편에 현아의 회사가 있었다. 그녀가 운영하는 IT회사는 제법 컸으며, 빌딩 전체를 소유하고 있었다.
"와, 이 큰 법인에 빚도 없네."
친구 성진이에게 자랑을 했더니, 그가 부동산 감정평가사답게 바로 확인해 주었다. 주식투자에도 일가견이 있는 친구는 묻지도 않은 지식을 늘어놓았다. 코스닥에 상장된 회사는 부채비율이 보통 200%는 기본인데 여기처럼 15%대는 거의 없다고 했다. 1층 로비에 가니 이미 비서실 직원이 내려와 있었다. 20층짜리 건물의 제일 꼭대기층에 현아의 사무실이 있었다. 직원이 사무실 입구에서 노크까지 대신해 주었다.
‘똑똑’
“들어와요.”
그녀는 화사한 흰색 바탕에 화려한 장미의 붉은 입과 녹색의 이파리들로 크로테스키하게 장식된 원피스를 입고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녀의 입술이 그를 향했다. 둘은 잠시 입맞춤을 했다.
“호호호, 명주 씨 입술에...”
여자가 책상 위에서 티슈를 건넸다. 그걸 받아서 닦으니 붉은 립스틱이 묻어났다.
명주가 소파에 앉자, 그녀는 책상 쪽으로 가서 단추 하나를 눌렀다.
“네, 회장님”
“김변호사 지금 와 있나?”
“네, 접견실에 와 있습니다. 회장님 방으로 뫼실까요?”
“그래, 그렇게 좀 해줘.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잠시 후, 명주가 집무실 벽에서 서초대로 쪽으로 난 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낡은 가죽 가방을 들고 나타난 사람은 변호사 명함을 내밀었다.
“그럼, 여기서 두 분이 말씀을 좀 나누세요. 저는 회의가 있어서 좀 다녀올게요.” 그렇게 여자는 집무실을 나섰다. 방문이 닫히자마자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뭐, 어떤 경로로 오셨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질문은 마시고 일단 잠깐 좀 들어주세요. 회장님의 재산은 현재 약 4천억 원 정도입니다. 법인 재산을 합치면 더 크겠지만 현재 저희가 위탁관리하고 있는 개인자산은 그렇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회장님께 관심이 많습니다. 사실 회장님께 어디까지 얘기를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상세한 내용은 회장님께 직접 들으셔야 하고 제가 오늘 드릴 말씀은 이 계약서의 내용이 그냥 허황된 내용은 아니라는 겁니다.”
변호사는 이미 명주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황명주 씨가 순장제를 우습게 아실까 봐 드리는 고언입니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빠져나갈 수 있는 마지막 순간 일 수도 있으니까요. 회장님, 남편은 5년 전에 죽었습니다. 혹시 왜 죽었는지 그 이유는 아십니까?”
“아뇨, 그런 것은 얘기를 전혀 못 들었습니다.”
“남편분은 결혼 전에 혼전계약서를 쓰셨습니다.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계약서였죠. 굳이 표현하자면 결혼유지계약서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요?”
“회장님은 그때도 돈이 아주 많으셨습니다. 지금처럼 말이죠. 사랑은 믿지 않으셨죠. 그때는 회장님이 아니라 저희가 그 계약을 제안드렸어요. 사랑을 믿지 않는 회장님께 사랑한다는 사람이 왔으니까요. 그건 혼인기간 동안 서로에게 충실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단서조항이 하나 있었죠.”
“단서조항이라면?”
“배우자에게 충실하지 못하면 죽임을 당해도 좋다는 내용이었어요.”
“네?”
“허허, 그 봐요. 놀라시잖아요. 회장님은 결혼은 하지 말자고 그냥 이렇게 연애만 하자고 했고, 남자는 막무가내였죠. 꼭 결혼해서 행복하게 해 주겠다. 뭐 이런 얘기였죠.”
“인간이란 누구나 세 가지를 꿈꾸죠. 돈과 권력 그리고 여자 말이죠. 안 그런가요? 명주 씨는?”
“저... 저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겠죠. 평균적인 사람이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회장님은 정말 미인입니다. 그런 미인을 아내로 두면 돈과 권력이 따라와요. 그런 경우가 어디 흔하게 있을까요? 선대부터 걱정이 많았죠. 그래서 회장님은 결국 저희 의견을 따랐어요. 저희는 굉장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죠.”
“그렇군요.”
“뭐, 그렇게 돌아가신 겁니다. 스스로 뛰어내렸습니다. 그게 덜 고통스럽다고 저희가 경고를 했거든요.”
“경고요?”
“저희가 시간을 드립니다. 한 달의 시간을 두고 도망가도 좋다. 하지만 우린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반드시 잡는다. 그리고, 영상을 하나 보여줬어요. 그 영상은 진짜 우리의 가신들이 나쁜 놈들을 고문하는 장면이 담긴 것이었죠. 금방 죽기를 바라지만 최장 한 달까지도 고문을 한답니다. 손톱 사이로 이쑤시개를 박는 장면을 보여줬어요.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닌데... 쯧쯧.”
변호사는 준비해 온 가방에서 서류를 한 장 꺼내 책상 위에 놓았다.
명주의 머리끝이 쭈뼛하고 섰다. 변호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에 사인만 하시면 됩니다. 그럼 이제 두 분은 부부로 갈 수 있는 첫 계단을 밟으시게 됩니다. 아 그리고 일단 사인을 하면 저희 팀이 옆구리 안쪽으로 작은 GPS칩을 하나 심을 겁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시 도망가게 되면 바로 찾을 수 있게 말이죠.”
테이블 위 계약서에 명주의 시선이 닿았다.
[ 혼전계약서 ]
[ 변호사 입회하에 본 계약서에 사인을 하며, 순장제를 포기하고 도망갈 시에는, 죽임을 당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 ]
자신이 한 줄로 요약해서 생각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가슴에 품고 있던 펜을 꺼내서 테이블 위에 놓았다. 계약서를 내려보면서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 생각을 좀 해도 될까요?”
“얼마든지 하셔도 됩니다. 절대 회장님께서 이 계약이 강요로 이루어지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변호사가 잠시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잘 아시겠지만, 명주 씨에 놓인 이 계약서 자체는 불법적인 계약이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구두계약도 계약이고, 함부로 아무런 의지도 없는 사람을 생매장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이건 사실 회장님보다는 그 휘하의 있는 저희들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일종의 작업지시서 같은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런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요?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생각해 보면. 그럼에도 이런 서류를 받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정당한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각인시키기 위함입니다. 이게 지식층로 가면 갈수록 설득하기 힘든 내용일 겁니다. 하지만, 평생을 특별하게 하는 일 없이 회장님의 은총을 받아서 온 가족이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되지요. 회장님이 손가락만 까딱하면 목숨이라도 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죠. 소위 슈퍼부자들의 눈에 들려고, 지랄발광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어요. 참 희한한 건 옆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잘 안 보이는데, 위에서는 색이 달라서 그런가. 아주 잘 보인다고 해요. 명주 씨가 사인한 것을 알면, 회장님의 가신들은 일정한 조건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꼭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시점이겠죠. 그 순간에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그쪽을 향해서 칼이든지 몽둥이든지 휘두를 겁니다. 그러니 제발 신중히 생각하시고 결정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회사의 고문변호사로서 말씀드립니다.”
“변호사님, 충고 고마워요. 제가 사인하는 것이 작업지시서 같다는 말 인상 깊군요. 전 남편의 얘기도 아주 인상 깊고요. 1절만 하셔도 다 알아듣습니다.”
어차피 이판사판이었다. 여자만으로도 맘에 들었다. 하지만 전 남편이 그렇게 자살함을 당한 것이 맘에 걸리긴 했다. 하지만 그 또한 그의 선택에 따른 결과일터였다. 그는 과거의 남자고, 명주 자신은 지금 현재의 남자였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명주는 한 치의 바로 펜을 들어서 사인했다. 자신은 그냥 현아라는 여자가 좋아서 대시한 것뿐인데 마치 길 가다가 멋진 오리가 맘에 들어서 데리고 왔더니 그 밑으로 줄줄이 오리들이 떼 지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자신은 더 물러날 곳도 없었다. 하긴, 이렇게 큰 부자이면서 미인이 왜 자신과 데이트를 선택하겠는가. 어쩌면 이유가 있어서 더 좋았다.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결말을 생각하면 섬뜩했지만, 그렇다고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여자는 자신이 그렇게 원했던 황금티켓이었다. 자신을 톱클래스로 이끌 여자였다. 그래, 순장제가 아니라 순장제 할아버지라도 할 거야. 그는 심지어 여자가 미인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또 한 달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둘은 미술관도 가고, 지방의 음식축제도 쫓아다녔다. 사이사이에는 5성급 호텔 스위트 룸에서 지내기도 했다. 제주의 리조트와 강원도 리조트도 갔다. 이틀에 한 번꼴로 만났다.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살기로 약속했다. 그 전날 여자가 명주에게 연락을 했다. 내일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꼭 할 말이 있다면서 부른 거였다. 카페 입구에는 경호원이 서 있었고, 입구에는 휴업이라는 팻말이 크게 붙어 있었다. 카페 안에는 여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테이블 위에는 아메리카노 두 잔과 작은 시폰 케이크 조각이 놓여 있었다.
“제가 할 말이 뭔지 궁금하지는 않아요?” 그녀가 미소 지었다.
“뭐, 곧 말하겠지요.”
명주의 손이 커피잔으로 갔다.
“사실 전 지금 췌장암 말기예요.”
하마터면 커피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명주는 당황하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고 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고칠 수는 없는 건가요?”
“네, 현대의학으로는 힘들다고 하네요.”
“왜 그 얘기를 이제야 하는 거요?”
“그냥 제 투병사실을 숨기고 이대로 혼인신고 마치고 데리고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최소한 명주 씨가 뭘 선택하는지 알고 선택을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이제 마지막 경고예요. 뭘 선택하셔도 저는 명주 씨를 비난하고 싶진 않아요. 지난 몇 개월간 충분히 행복했으니까요. 아 선물도 드릴게요. 저랑 연애를 해 준 대가예요. 음.... 10억 정도 드릴 생각에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돈이지만 아껴 쓰시면 여유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금액이죠. 여기서 포기한다면 현찰 10억을 드릴게요. 세금도 다 내 드리고요.”
여자의 시선이 명주의 커진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향했다. 명주의 머릿속은 빠르게 연산을 시작했다. 그 연산은 명주의 의도가 아니었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반드시 생존을 위해서 자연스럽게 최적의 경로나 선택을 찾는 것은 적자생존의 원리 같은 것이었다. 그 선택의 순간이었다. 지금 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 목숨은 건지게 된다. 하지만 평생 거지로 살다가 죽겠지. 모아둔 돈도 없고, 회사는 길어야 오 년에서 길면 육 년이다. 아무도 50대를 지나서 사무직으로 근무를 하고 넘은 사람도 없었다. 전산팀이나 연구개발팀은 50대 이상도 많이 있지만, 사무직은 달랐다. 인사부에서 언뜻 들은 말이 기억났다.
‘대충 안 그만두면 못 배기게 해요’라는 말이었다. 인사부 대리가 웃으면서 한 말이 그렇게 공포스러운 단어인 줄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냥 농담처럼 한 말은 항상 술을 거하게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한 번씩 떠올리게 되는 저주 같은 말이 되고 말았다. 아니, 지금 10억을 준다고 하니 거지는 아니다. 10억이면 아껴 쓰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현아는 현명한 여자였다. 돈을 원하면 적당히 여기서 끝내도 좋다는 사인을 주고 있었다. 인생 한번 살지 두 번 사냐. 멋진 여자인 줄만 알았는데, 많이 아프다고 하니 명주의 마음도 아파왔다. 어디 흠 없는 사람이 있으며, 어디 완벽한 사람이 있으랴. 자신이 돈을 좋아하면 여기서 멈춰도 좋을 터였다. 하지만 단순히 돈 만은 아니었다. 현아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여자였다. 사랑을 믿지 않는 여자라니. 이보다 완벽한 목적이 있을까. 신중하게 결정하자. 그대로 누구에게나 목숨은 소중한 것이다.
장사를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장사도 해 본 사람이 한다고, 주변에서 이미 장사를 하겠다고 나간 선배들은 줄 서서 창업을 했고, 줄 서서 문을 닫았다. 닭집을 시작하고 조류독감이 터진 선배도 망했고, 고깃집을 오픈하고 아프리카돼지열병사태로 망한 선배도 있었다. 맥주집을 오픈한 선배는 코로나19 사태를 넘기지 못했다. 앞서 나간 병사들이 죽어 자빠지는데 전쟁터로 과감히 나설 용기가 차마 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이곳이 정년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매출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나름 회사에서 오래 데리고 있었지만 자신은 영업력도 정치력도 없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는 자체가 스트레스였기에 지금 이 여자를 만난 것도 어찌 보면 행운이었다.
여자의 안색을 살폈다. 얼마나 살 수 있을까. 말기라면 짧으면 3개월일까, 6개월일까. 여자가 죽고 그 많은 재산이 다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정말 행복한 남자의 삶이 펼쳐질 수 있지 않을까. 이제야 여자가 이따금씩 맞는 주사가 당뇨가 아니라 진통제일 거란 생각에 미쳤다. 아직은 괜찮아 보인다. 그럼 2년에서 3년을 살 수 있을 수도 있다. 생명이 아깝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노숙자라면 어떤가. 만약 자신이 노숙자가 되면 주변에서 손가락질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인생의 밑바닥에서 앞으로 40년을 더 산다면 과연 그것이 행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2년을 살더라도 20년 같은 2년을 살면 되지 않을까. 화끈하게 살다가 가자. 무슨 미련이 더 있겠는가.
명주는 손을 뻗어서 와인잔에 담긴 레드 와인을 천천히 비웠다. 그러자 인근에서 기다리고 있던 종업원이 다가와서 한 손에 하얀 암타월을 일자로 한 상태로 다른 손을 받치듯이 하고 천천히 붉은 적색 고급 포도주를 따랐다. 투명하고 주둥이가 넓은 와인잔에 붉은 와인이 따라지면서 그 안에서 작은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그 순간 와인 잔은 작은 연못으로 변해서 붉은 축복의 물결이 가득 파도를 일으키면서 와인잔 안을 돌아가면서 서로 색깔을 뽐내듯이 채웠다. 와인 병에 묻은 조금의 와인들은 암타월로 종업원이 닦았다.
“사랑이란 것을 제대로 배워보질 못했어요. 재산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고, 그건 이제 제가 소문을 막을 수 없을 정도죠. 저는 사랑을 믿지 않아요. 그냥 제 병을 오픈하고, 나머지는 운명에 맡기는 것이죠. 현재로는 길면 2년이라고 들었어요.”
“고칠 길은 없나요?”
“명주 씨가 몇 번째 같은가요?”
“.................”
“호호호, 긴장할 일도 아닌데, 긴장을 하시네요. 여섯 번째예요. 방금 그 질문을 한 사람요. 아마 저 경호원은 웃을 거예요. 다들 이 단계에서 물러났거든요. 이렇게 많은 금액을 제시한 사람은 그래도 처음이네요. 다들 3억 정도씩은 받아 갔네요.”
인생 한번 죽지 두 번 죽냐. 무엇보다도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은 파리한 표정이지만 그것이 또 매력으로 다가왔다. 멋진 미인과 황금같이 쌓인 돈. 여기에 순장제라는 매력 넘치는 불덩어리. 그것을 향해 돌진하는 자신은 어쩌면 불나방일 것이다. 날개가 타들어가는 순간에 후회를 하겠지. 살아 있는 상태로 흙이 얼굴에 덮인다면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인생의 흙에 자신의 인생 자체는 벌써 덮이고 있었다. 가자, 순장제로.
“할게요. 저.”
현아는 의외의 말을 들었다는 듯이 와인잔에서 시선을 떼서 남자를 쳐다보았다.
“명주 씨, 정말 후회하시지 않으시겠어요? 이건 실전인데요. 이제 농담도 아니고. 여기 있는 친구들이 제가 눈을 감는 순간에는 명주 씨를 처리해서 제 관 옆에 묻을 거예요. 부부 무덤이 되겠네요. 돈이면 사람하나 처리하는 건 문제도 안돼요. 설마 정말 죽이려고 하는 것일까 하는 요행일랑 버리시는 것이 좋아요. 전 진심이에요.”
물론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는 여자를 보니 소름이 쫙 올라오긴 했다. 하지만, 이미 스스로 건너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
“저, 황명주, 한번 내뱉은 말은 끝까지 갑니다.”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혼인신고하고 바로 한남동 주택으로 이사를 들어갔다.
서로 나이도 있고, 사회적인 시선도 있기에 따로 신혼여행은 나중에 가기로 했다. 다행인 것은 둘 다 아이들이 없었다. 그는 아내와 푹 단잠을 자고 새벽녘에 커피를 한 잔 내려서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실크 잠옷 위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로브가운을 걸치고 발에는 슬리퍼를 신은 채였다.
개인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는 마당 구석에는 눈에 띄지 않게 양복에 선글라스까지 낀 청년들이 경호부스 근처에서 뭔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으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누가 한밤중에 잔디밭에서 웃는 그를 보면 미친놈이라고 부를지도 몰랐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만큼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맘껏 써보고 죽자. 하지만 그 유쾌함 속에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얇은 독약캡슐을 어금니 위에 올려놓은 기분이었다. 명주는 스스로 이렇게 용기 있는 줄 몰랐다. 일단, 위기의 순간에서 물러서지 않은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물론 손끝이 살짝 저릴 만큼 겁이 났다. 위기란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이런 것일까. 세상에 이렇게 행복한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미인에 재산까지 재계 순위에 들어가는 미모의 아내를 얻었으니 말이다. 나이 마흔다섯 살에 정말 성공한 느낌이었다.
40억 도 큰돈인데 400억 도 아니고, 4천억이라니, 말이 되는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미모가 출중한 아내다. 몸매도 좋다. 아프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당장의 눈앞의 그녀는 예쁘기만 했다. 그녀의 병세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거의 죽 외에 식사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병은 진행이 되고 있었고, 말라가는 그녀의 몸은 조금씩 앙상해져 갔다.
2층에서 주로 부부가 생활하고, 1층에는 파견 나온 응급처치 간호사 2명이 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다.
“회사는 언제부터 출근할까?”
“당신, 집에 있으면 뭐해요, 오늘부터 가서 보면 어때요?”
“오케이. 좋아.”
아내옆에 앉아서 운전기사가 몰아주는 차를 타고 출근했다. 입구에 차가 서니 경비원 2명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차 문을 양쪽에서 열어주었고, 로비에는 이미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는 회장의 비서로 보이는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20층까지 바로 올라갔다. 20층 회장실로 향하는데 그전 방에 섰다.
“이거. 당신 방이에요.”
현아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방문 앞에 ‘Vice President, Myung Joo Hwang’란 작은 은색 문패가 보였다. 은색 금속 위에 검정 굵은 글씨체였다.
“어, 내 이름이네.” 명주의 눈이 살짝 커졌다.
“당신도 이제 방이 있어야지요.”
현아가 방문을 열자, 큰 책상과 소파 그리고 낮은 책장들이 복도 쪽을 향한 벽 쪽으로 붙어 있고, 창문가에는 큰 창이 세 개나 붙어 있었다.
“와, 여기가 내 사무실이여? 너무 큰 것 아닌가?”
“미안해요, 그래도 제 쪽이 더 커서요.”
“에이, 당신 회사인데 당연하지. 난 아직 업무도 잘 모르는걸.”
“당신을 어디 비서실에 들여놓기도 그렇고, 회사의 기획실이나 이런 곳도 그렇고 일단은 옆에서 회의 참석하면서 분위기나 보세요. 회사 일은 결국 주어진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는 것이죠. 당신 이번 제 제안을 받아들인 것을 보면 판단력은 뭐 탁월하지 않을까 싶어. 용기도 있고. 이미 그걸로 당신은 우리 그룹의 부회장감인거지. 당신, 참, 골프 좋아한다고 그랬죠?”
“어, 그렇지 뭐. 라운딩피가 비싸서 평일에 주로 다녔어. 싼 곳 위주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후후, 앞으로 회사 골프장 이용하세요.”
“회사에서 법인 회원권도 가지고 있어?”
“그럼요, 블랙스톤, 나인브리지 등 일류 골프장만 한 10개 정도 있어서 아마 부킹 하는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와, 최고구먼. 고마워.”
“그럼 전 회의가 있어서...”
“그래, 어서 가봐요.”
명주는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명패를 보았다.
< 부회장 황명주 >
입구 문패는 영어였는데, 이곳은 한글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책상 앞에 놓인 소파에는 한쪽은 3인 소파와 다른 한쪽은 1인 소파 두 개가 가운데 낮은 서랍장을 끼고 배치되어 있었다. 소파 위에는 나무 케이스가 있는데 그걸 열어보니 자신의 명함이 들어 있었다. 명함을 하나 꺼냈다. 두툼한 두께감이 쉽게 구겨질 것 같지도 않았다. 수입지로 만든 것인지 이런 질감의 명함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내친김에 큼직 막한 책상으로 향했다. 의자에 앉아 보니 가죽 질감인데 손 끝으로 눌러보니 질감이 부들부들한 것이 소가죽은 아니다. 양가죽인 것 같았다. 전에 어디 브로셔에서 본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의자랑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의자는 편하고 좋으면 그만이지 뭐. 책상 위에는 A4지 한 장 놓여 있다. 자세히 보니 필요한 일에 있어서 불러야 할 부서 담당자 이름과 연락처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몇 개를 보다가 재밌는 제목도 발견했다. 골프장 부킹이라고 적힌 칸에는 비서실의 김점백 대리라고 적혀 있었다.
책상에 앉아서 아래를 보니 가죽 슬리퍼가 놓여 있었다. 구두를 벗고 그걸로 갈아 신었다. 발이 편해졌다. 명주는 의자를 한 바퀴 돌려보았다. 아무도 없는 뒷 공간으로 의자가 양탄자 위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몇 바퀴를 더 돌았다. 흠, 고개를 드니 시선이 잘 보이는 곳에 둥근 벽시계가 있었다. 뼈대는 녹슨 철근 같은 것인데, 초침은 없고 시침과 분침만이 있었다. 묘하게 현대식 가구와 어울리는 빈티지 시계였다.
오전 내내 동창이고, 친구고, 아는 선배고 모두에게 전화를 돌렸다. 오후가 되니까 명주의 사무실로 축하 난이 쇄도했다. 특히 은행 지점장이나 보험을 하는 친구들은 바로 찾아오고 싶다고 문자를 연신 해 대었다. 전화기도 불이 났다.
‘따르릉, 따르릉.’
SNS를 통해서 중견 그룹의 부회장 명함을 올리자 자리에 있는지 확인차 회사 사무실 직통번호로 걸려온 전화들이었다. 처음엔 ‘여보세요’로 받던 답은 점점 ‘네, 황명주입니다’하고 약간 일부러 목소리 톤을 조금 낮춰서 받기 시작했다. 큰 소리로 웃으면서 통화를 막 마친 명주가 소파에서 다리를 꼰 자세를 풀었다. 자신의 아내인 현아가 문 입구에서 미소 지으면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방해한 것 아니에요?”
“아, 전혀, 막 통화가 끝났어.”
“할 말이 좀 있어요. 이제 결혼도 했으니까요.”
“뭔데 편하게 말해.”
“당신한테 용돈도 드려야 하고, 남자가 집에만 있는 것도 우습잖아요. 제가 다음 주말에 2주간 미국 출장 가는데, 당신은 어디 친구들하고 여행이나 다녀와요.”
“그래? 좋지. 안 그래도 사람들이 만나자고들 난리인데, 잘 되었네. 당신 없는 사이에.”
사실 현아는 미국에서 신약이 나왔다고 해서 그걸 처치받기 위해서 급히 미국 출장을 잡은 것이었다. 그 신약은 기존 수술하고 번진 부분을 처리하고 적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자신과 같은 환자를 완쾌시킨 의사가 있는데, 췌장 쪽의 전문가라고 해서 가 보려고 하는 터였다.
“수술을 받다가 사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유가 발생 시 법적 책임이나 위자료 청구를 전혀 하지 않겠다는 서류에 사인을 해 주셔야 진료예약 및 수술예약이 가능합니다. 물론 오시면 바로 수술을 할 수 있게 이미 조치는 다 해 놓았다고 합니다.”
비서실장이 직접 해당 의사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었다.
여자는 손에 들고 있던 가죽 명함지갑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거기서 검정 카드 한 장을 꺼내서 남편의 앞에 놓았다.
“이게 뭐야?”
“블랙카드라는 거예요.”
“어, 고마워.”
명주는 카드라니까 받았지만 블랙카드가 뭔지까지는 감이 퍼뜩 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도요. "
그녀는 투피스 상의 허리춤에서 반으로 접혀있던 봉투를 꺼냈다.
“이건, 수표 1억이에요. 어디 가서 현금 쓸 일 있으면 이거 써요. 당신 카지노도 좋아한다고 했던 것 같은 데 강원랜드라도 가서 쓰고 와요.”
명주의 눈이 커졌다.
“아냐, 이건 너무 커.
”
“가서 2주 정도 맘 편하게 놀고 와요. 다 좋지만, 여자 끼고 술만 먹지 마세요. 제 조건은 이거예요. 다른 것 다 참아도 그건 못 참으니까요.”
“..... 어 그럴게요. 알았어.”
명주는 놀라면서 돈과 카드를 주섬주섬 챙겼다.
“사실은 저 췌장암 수술받으러 가요. 이번 수술이 잘못되면 한국에 못 와요. 그럼 당신도...” 현아가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에 말 끝을 흐렸다.
명주는 그 순간 머릿속에 당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무.... 뭐라고?”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수술 권위자가 가능할 것 같다고 해서 존스홉킨스 병원으로 가는 거예요.” 명주는 아내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이렇게 빨리 결정을 한다고. 아니 최소 1년 정도만 더 있다가 가도 될 텐데. 빨라도 너무 빨랐다. 손끝이 저려오는 것 같았다. 이 좋은 것들을 다 두고 가야 하는 상황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공포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뭐... 뭐야 이거. 자신의 테이블 위에 놓인 1억과 카드를 보았다. 이거 뭐 내 노잣돈이네. 순장할 테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놀 수 있을 때 놀라고 하는 것이네. 그것도 아내가 수술을 받는 2주 사이에.
야....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누마.
아내가 회의가 있어서 다시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생각났다.
명주는 성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그날 저녁에 힙지로 근처 고깃집에 앉았다.
“축하한다. 졸지에 거부 와이프가 생기고 사람 팔자 시간문제야.”
성진이는 소주를 잔에 넘치듯이 따르면서 말했다.
“근데, 야, 이거 꼭 좋아할 일이 아냐. 큰일인거지. 이건 비밀인데, 내가 와이프랑 혼전계약서를 작성했거든.”
“뭐, 재산 분할 안 받는다고 혼전계약서를 쓰기라도 한 거야?”
“아니, 순장제에 사인을 했다고.”
"아, 그 왜 남편이 죽으면 아내를 묻는 그런 순장제 말이야."
“뭐? 푸하하하하. 요즘 시대에 순장제가 어딛어.”
“성진아, 네가 몰라서 그래. 여긴 그런 것에 사인하면 킬러를 고용해서라도 데리고 가. 무서운 바닥이야.”
“그래? 그럼 뭐 나 같으면 잘 쓰고 잘 살다가 멋지게 가겠다. 천하의 명주가 그런 걸로 다 졸고 그러냐.”
둘은 소주잔을 채워서 건배를 한번 했다.
“문제는 와이프가 췌장암 말기란다.” 한참 동안 다른 얘기를 하다가 다시 화제는 명주에게로 넘어왔다.
“어? 뭐라고? 그래? 이거 제수씨에게 하하하. 된통 당했구먼.”
“그러게. 나 똥 밟았다.”
“사랑해서 결혼한 것 아니었어?”
“어, 맞아. 물론 속인 건 아냐, 혼인신고 하기 전에 나보고 말하더라. 자신이 췌장암 말리니까, 아니다 싶으면 지금 물러서도 된다고. 그런데도 결정을 내린 건 나야.”
“하하, 죽을 각오로 했구나.”
“생각해 보니 이 여자랑 이렇게 짧은 사랑을 하다가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흠.... 그래도 고민이 되긴 하겠다. 네 의지가 아니게 가야 하는 거니까... 더구나 시한부일 거잖아.”
“그래서 그냥 답답한 마음에 불렀어. 소주 한 잔 하자고.”
“아, 그랬구나.”
명주는 친구를 만나서 소주를 한 잔 했지만,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는 않았다.
“너 나랑 같이 여행 안 갈래? 아내가 미국으로 수술받으러 가거든.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어봐야 그렇고.”
“야, 내가 너처럼 마음이 한가한 줄 아냐? 난 직장 다녀서 어디 못 가.”
그러자, 명주가 지갑에서 카드랑 봉투를 꺼냈다.
“이게 뭐야?”
“와이프가 준 것이야. 현금 1억하고 블랙카드.”
“뭐, 현금 1억? 블랙카드? 햐, 부럽다. 부러워.”
성진이가 카드와 봉투를 번갈아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친구는 블랙카드를 쥐고는 형광등에 비춰보기도 했다.
“햐, 내가 살면서 블랙 카드는 첨 본다. 이게 연회비만 해도 몇 백만 원이라고 들었는데.”
“그래, 나도 오늘 처음 봐.”
명주의 목소리는 우울했다.
“너 돈 필요하지 않냐?”
“돈은 필요한데, 그 돈은 싫다. 네 저승길 노잣돈 같이 받은 돈을... 흠... 그런 돈은 네가 써라. “
“..............” 명주는 대답 대신 빈 잔에 술을 따랐다.
“대충 네가 말하는 것만 들어도 상황 알겠어. 그러니까 수술이 잘못되면 네 목숨도 날아간다는 말이잖아. 맞지?”
명주가 시선을 소주잔을 향한 채로 고개만 천천히 끄덕였다.
“남자가 야,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괜찮아. 인마. 갈 때 가더라도. 가서 실컷 네가 하고 싶은 것 하고 놀다가 와. 걱정한다고 상황이 뭐 달라지겠냐. 하하하.”
친구는 이런 상황이 사뭇 진귀한 풍경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요즘 세상에 순장제라니, 웃기긴 하다. 와... 그쪽 세상은 그렇게 사는 모양이구나. 어이구...” 그러면서 소름이라도 끼친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침내 일주일이 지나고 아내가 공항으로 출국하는 날이 왔다.
비서가 짐을 차 트렁크를 싣고 공항으로 가기 직전이었다.
대문 앞으로 천천히 아내는 명주의 팔을 잡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
“이리 와 봐.”
명주가 고개를 돌려서 아내를 한번 불렀다.
아내가 차에 타려다가 명주를 향해서 몸을 돌렸다.
양팔을 벌려 안아주었다.
“잘 받고 와요. 나 정말 쫓아가면 안 돼?”
“난 누가 내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 것 정말 질색이야. 그냥 혼자 조용히 다녀오게 해 줘요.”
“그래, 사랑해. 현아.”
“저도요.”
그렇게 아내를 태운 차가 언덕을 내려서 골목길을 돌아서 내려갔다. 명주의 집이 위쪽이라 차가 큰 길가로 나갈 때까지 이따금씩 보였다. 그 자동차의 흔적까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아내의 차가 사라지자, 현실감이 그를 엄습했다.
도망을 가야 하나?
1억 원과 블랙카드라.
45살이면 아직 어리다곤 할 수 없지만 뭐든지 할 수 있는 젊은 나이다.
뭐든지 할 수 있는 가능성의 나이말이다.
10억을 선택했으면 좋았을까.
뭐 죽을 때까지 편안히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내 지금 이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아마 어쩌면 시간이 흐른 후에 현아가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무릎을 탁 치게 될지도 몰랐다. 회사에 가도 당장 할 일이 없다.
어차피 큰 회사는 오너가 한두 번의 채찍질만 하면 자동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마치 엔진이 달린 팽이 같은 것이 큰 회사였다. 생각도 하면서 편안히 쉴 곳이 필요했다. 그런 곳이 어디에 있을까. 그냥 바닷가나 산장에 들어가서 경치나 보고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였다. 뭔가 시끌시끌하면서 자신의 마음속 승부욕도 불태울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때 생각난 곳이 강원랜드였다. 에라 모르겠다. 옛날에 재미 삼아한 두 번 가 본 강원랜드를 가보고 싶어졌다. 그때는 1박 2일로 가면서 50만 원인가 들고 갔었지. 전 아내와 이혼하고 그냥 머리 식힐 겸 가본 곳이었다. 지금 가면 어떤 기분일까. 그는 그룹 비서실에 전화를 걸었다.
“저 강원랜드로 좀 다녀오려고 하는데요. 머리도 식힐 겸..... 거기 호텔 이름이 뭐죠?”
“하이원 그랜드 호텔이 같이 붙어 있습니다. 부회장님.”
“거기로 한 2주만 예약해 줘요. 다음 주 금요일까지요.”
아내는 이 주 정도 지난 토요일 오전에 도착한다. 그때는 공항에 나가면 될 터였다. 그리고 아내의 부고장이 날아온다면 그전에 경호원들이 자신을 잡으러 오겠지.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넓은 잔디밭에는 지난 주말에 자신이 골프 연습을 한 골프채와 골프공이 몇 개 나뒹굴고 있었다. 나무 파라솔 밑에 앉았다. 그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아내를 처음 만난 순간에 그는 아내의 아름다운 자태에 반했다. 그때가 어쩌면 아내는 이미 췌장암 2기나 3기 정도였을 터였다. 어쩐지 바싹 말랐더라. 그런데도 얼굴에는 광채가 났었다.
명주는 자신의 마음속을 알고 싶었다. 자신이 속물인가. 정말 돈을 밝히는 제비족인가. 개쓰레기 같은 인간인가. 자신의 마음을 자신도 알기 힘들 때가 있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자신이 아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건 자신의 진심이었다. 까짓것 사랑을 믿지 않는 여자에게 사랑하는 남자를 만들어 준 것만으로도 자신의 할 일은 다한 것 같았다.
‘잘했어. 명주.’
담배를 피우고 2층 서재로 들어가니 이미 집사가 자신의 짐을 싸서 한쪽 구석에 잘 놔두었다. 간단한 짐들도 다 챙겨주고, 말만 하면 다 그냥 쉽게 되는 것이 이 집안의 특징이다. 이런 삶은 그전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아직도 적응은 되질 않았다. 핸드폰과 지갑만 챙겼다. 그리고 내려오니 이미 운전기사가 짐을 받으려 뛰어왔다.
차 뒤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에 깜빡 들었다.
“부 회장님, 부 회장님?”
“어... 어디?”
“다 왔습니다.”
벌써 오후 4시였다. 지갑에서 수고했다고 하고, 식사나 하시라고, 현금 20만 원을 우선 건넸다. 보통 이 삼일의 일정이면 같이 있다가 가겠지만 기간이 2주나 되니 마침 고향집이 강원도 평창 근처라면서 언제든지 차가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자신이 이곳에 있는 동안 기사는 그냥 2주간 휴가 같은 날을 보낼 터였다.
짐을 풀고 바로 지갑에서 1백만 원만 꺼냈다. 다행히 센스 있게 9천만 원은 1천만 원짜리 9장으로 나머지 1천만 원은 100만 원권으로 준비해 준 아내였다. 카지노 칩 교환소에 가서 수표 한 장을 현금 100만 원으로 바꿨다. 슬롯머신을 찾았다. 돈이 워낙 많으니 슬롯머신 기계 앞에 앉았는데도 감흥이 별로 없었다.
천 원씩 홀짝홀짝 돈을 천천히 넣었다. 생각해 보니 너무 웃겼다. 전에는 이틀간 예산으로 50만 원을 들고 왔고 결국 현금 서비스 50만 원을 받아서 총 100만 원을 썼다. 그 돈이 아까워서 집에 돌아간 뒤에도 한참 동안 이곳을 생각하면 배가 아팠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호주머니에 현찰 1억이 들어 있다. 여기서 1억을 벌어간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아내는 이미 4천억의 부자였다.
생각해 보면 돈이 없을 때는 참 경마, 카드, 슬롯머신, 주사위 같은 야바위를 통해서 상대의 돈을 따려고 그렇게 얘 썼는데 정작 블랙카드에 현금 1억 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넣고 보니 돈에 대한 욕심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5만 원짜리 하나를 기계에 넣고 멍하니 버튼을 눌렀다. 그가 버튼을 한번 누를 때마다 모니커에서 경쾌한 소리가 나면서 숫자와 그림들이 아래위로 오르내렸다. 그의 손은 움직이고, 눈은 돌아가는 그림판을 향했지만 머릿속은 다시 아내와 만남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세차를 하면서 딴생각을 하듯이 그는 다른 상념의 숲을 헤매고 있었다.
그런 행운들이 모두 이 순장제 한 방에 턱 걸린 느낌이었다. 게임을 저녁 내내 했다. 중간에 배도 고프지 않아서 그냥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저녁 10시까지 하고 나니 눈이 따갑고 아팠다. 어디 보자 계산을 해 보니 그렇게 4시간 넘게 놀았는데 돈은 약 20만 원 정도 잃은 것 같았다.
그래, 매일 뭐 이 정도는 잃을 수 있지. 그는 잠시 편의점에 들렀다. 소주 2병과 안주로 먹을 라면과 핫바 같은 것과 담배 그리고 맥주 한 병과 생수도 챙겼다. 과자도 몇 개 넣었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TV를 틀고 소주 한 병을 깠다. 라면에 소주를 먹으니 속도 풀리고 좋았다. 1층 흡연구역을 찾아서 근처에서 담배를 한 두대 피웠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서 양치하고 샤워하고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그는 호텔 조식당을 찾아서 조식 뷔페를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이 들고 있다가 다 잃으면 스스로 화가 날 것 같았다. 아니, 너무 허무할 것이 당연하지. 결국 도박도 확률을 조작해 놓은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따는 것도 운이고, 잃는 것도 운이다. 슬롯머신은 아내가 그에게 말한 오더의 일종이었다. 차라리 내 것도 아닌 이 돈이 무슨 의미인가. 아내의 수술이 실패할 것은 뻔한 일이다. 췌장암이 고치기가 얼마나 힘든 병인데. 본인이 세상을 하직하고 나서도, 그 기부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을 기억해 줄 터였다. 살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한 적이 몇 번이나 있던가. 고민 끝에 그는 컴퓨터를 켜고 들어가서 한 두 군데 검색을 해 보았다.
그리고 몇몇 군데를 찾다가 마음이 가는 한 곳을 정했다. 크지도 않은 돈을 나눠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강원랜드에서 차로 한 40분쯤 떨어져 있는 사회복지법인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돈 1억 중에서 9천만 원을 기꺼이 기부했다. 기부자의 이름은 자신과 아내의 이름이었다. ‘명주와 현아’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그는 뭔가 하나를 세상에 남긴 것 같아서 마음이 뿌듯했다. 어차피 아내가 자신에게 다 쓰라고 준 돈이니 자신이 맘대로 기부했다고 해도 뭐라고 할 이유는 없을 터였다. 돌아오기는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호텔에 와서 옷을 편하게 갈아입고 다시 카지노로 향했다. 어제와 달리 사이사이 맥주도 마시고 바람도 쐬면서 다시 게임에 빠져 들었다. 마음이 편안했다. 그 이유는 몰랐다. 그냥 사람들 사이에 묻혀서 익명성을 즐겼다. 잃었다가 땄다를 반복했다. 결국 그날은 30만 원 정도 잃었다.
그는 그런 식으로 한 십일을 그곳에서 보냈다. 모레는 아내가 돌아오기로 한 날이었다. 이제 게임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중간에 작은 잭팟이 하나 터져서 약 120만 원 정도를 땄다. 그간 잃은 돈이 150만 원 정도니 한 전체 기간 동안 겨우 30만 원 정도만을 잃은 셈이 되었다.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돈을 덜 잃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호텔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아내가 돌아올 날이었다. 오후에는 차를 타고 귀가할 계획이었다. 아내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때 그에게 한 통의 문자가 떴다.
[ 아내분이 수술 중에 출혈이 심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서울로 속히 귀가 바랍니다. 변호사 김동영 드림 ]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그는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를 타고 바로 서울로 돌아왔다. 올 때처럼 그는 차 안에서 뻗었다.
[ 유언집행과 관련해서 저녁에 들리겠습니다. ]
변호사에게서 온 문자였다.
[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명주도 바로 답장을 보냈다. 유언 집행이라 함은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가겠다는 것이다. 명주의 마음은 담담했다. 조금 더 길게 잘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 마음이 들었다. 그는 선택을 했고, 이번에 한 그의 선택은 잘못된 방향이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아내가 고통 없이 수술을 받다가 생을 마감해서 그런 다행이란 마음이었다.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먼지가 자꾸 껴서 안개처럼 막이 생기는 것 같았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고지식하게 말한 아버지 장례식에도 그는 울지 못했다. 그 트라우마가 겹쳐졌다.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차는 2시간 만에 집에 도착했다. 집 앞에 도착했지만 아내가 없다는 생각을 하자 울적해졌다. 오후 2시였다. 술을 한잔 마시고 싶었다. 장례를 잡아야 할 텐데, 변호사에게 서울에 도착했다고 문자를 남기니 저녁 퇴근길에 들리겠다는 답이 왔다. 가정부에게 저녁 식사를 먹지 않겠다고 말하고 우두커니 거실에 앉아서 잔디밭쪽으로 앉아 있었다. 저녁 8시가 되어서 변호사가 집에 도착했다. 그제야 정신이 버쩍 들었다.
변호사를 1층 손님 접견용 테이블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으니 기다리던 가정부가 인삼차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변호사는 가방에서 봉투를 하나 꺼냈다. 모든 재산은 사회단체에 기부될 것이며, 법인은 신탁으로 묶여서 전문경영인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말을 천천히 했다. 또한, 이 모든 것은 생전에 아내가 준비한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중요한 것은 계약서 관련인데요, 일전에 쓴 혼전계약서는 상징적이라고 하셨고, 혼자 편안하게 사시라고 하셨습니다. 재혼하셔도 되고요. 세금은 법인에서 처리할 터이니 세금 제외한 50억 원을 부회장님께 남기셨습니다."
변호사가 손가락으로 콧등으로 내려온 안경을 밀어 올리면서 말을 이었다.
“혹시 뭐 질문사항이라도 있나요?”
변호사가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아내는 어떻게 되었나요? 시신이나... 장례식부터 치러야지요.”
“일단 그것은 모두 한국으로 유해가 온 다음에 해 달라는 회장님의 유언이 있으셨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명주는 테이블 위에 고개를 쳐 박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저 미안하지만, 돈은 필요 없습니다.”
“네?”
“부탁이 있는데 그냥 저도 조용히 죽여주셨으면 합니다.”
“아....” 변호사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농담 아닙니다. 부탁드립니다. 김 변호사님.”
명주가 눈물 콧물을 함께 휴지로 '팽'하고 소리를 내면서 풀어냈다.
“아내와 함께 살고 싶었습니다. 아주 행복하게요. 돈도 명예도 다 필요 없습니다. 지난 2주간 강원도에서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왜 자신의 마음속도 잘 모르잖아요. 저는 제가 돈을 좋아하는 줄 알았습니다. 슬롯머신을 하면서 계속해서 질문하고 또 질문했습니다. 제가 이 사람의 돈을 좋아해서 결혼한 줄 알았습니다. 아니더라고요. 저는 현아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흑흑....”
이번에는 그냥 변호사를 쳐다보면서 마치 독백을 하듯이 눈물이 양쪽 눈에서 뚝뚝 떨어지고 콧물도 흘러내렸지만 그대로 있었다.
“그럼 정말로 순장제를 시행할까요?” 변호사가 낮게 속삭였다.
“네, 좋습니다.”
“지금 결정하시면 의뢰가 갈 겁니다. 절대 물리지는 못합니다.”
“아뇨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장례식은 유해가 도착하면 해 달라는 회장님의 유언이 있으셨습니다.”
명주가 떨리는 턱을 입술로 부여잡았다.
아내의 사망소식은 그룹 내에 바로 퍼졌다.
비서실에서 회장의 부재 시 이사회를 주재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를 불렀다.
오전 10시까지 들어오라는 말에 시간 맞춰 차에 몸을 실었다.
임원 회의실에는 벌써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스무 명 남짓한 임원들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사람들이 아무 말 없이 와서 손을 한 번씩 잡고 지나갔다.
비서실장이 마이크를 잡고 단상 옆에 서 있었다.
“그럼 제35차 주주총회를 통해서 김현아 회장님의 부고 인해서 긴급히 차기 회장을 선출하겠습니다.”
명주는 누가 전문경영인으로 앉더라도 축하를 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이사이 아내의 마지막 공항을 떠나던 모습이 떠올라서 자꾸 눈가가 따가웠다. 휴 하는 한숨으로 자꾸 숨을 골랐다. 밤 사이에 너무 울어서 양쪽 눈이 모두 너무 부어 있었다. 눈을 뜨기가 힘들 정도였다.
“우선 단독 후보를 먼저 발표하겠습니다. 황명주 부회장입니다. 그럼 단독후보를 놓고 찬성과 반대를 거수로 결정하겠습니다.”
“반대하시는 분 계신가요?”
“아뇨, 없습니다.” 누군가 크게 말했다.
“찬성하시는 분들 손 좀 들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찬성 11표, 반대 0표로 주식회사 MKKK의 차기 회장은 황명주 부회장입니다. “
명주는 멀거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집행이 되겠지. 그럼 따라가자, 현아를. 인생은 부초처럼 왔다가 부초처럼 가는 거야.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인생도 특별하진 않아. 부자도 한번 사는 인생이고, 자신도 한번 사는 인생이다. 그래도 자신에게 주어진 돈의 90%는 기부를 했으니 그것으로 살면서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황명주 회장님?” 비서실장이 조금 크게 명주를 불렀다.
“네?” 그의 망상이 멈췄다.
명주가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임원들 뒤로 변호사가 모습을 보였다.
“아뇨, 저는 거절하겠습니다. 이 회사는 제 아내가 선친 때부터 피땀 흘려서 세운 회사입니다. 이런 큰 회사의 자리에는 저 같은 양아치가.... 어..... 어...”
말을 하다 말고 그의 말이 엉켰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더듬거렸다.
그의 눈이 막 뒷문을 통해서 들어온 사람을 향했다.
그의 아내 현아였다.
“다.... 당신....?”
“미안해요. 제가 다 나중에 설명할게요. 지금은 회장직 수락해 주세요. 여기 찬성 한 표 더요.”
그는 반가움과 의아함이 교차되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아내 쪽으로 몇 걸음 걸었다. 양팔을 벌려서 아내를 껴앉았다. 중역들이 미소를 지으면서 박수를 쳤다.
중역들도 놀랬는지 수군거렸다. 하지만 그런 말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명주는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내가 귀에 속삭였다.
“미안, 당신에게 한 가지만 속였어요. 말기가 아니라 췌장암은 1기였어요. 이번에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 가서 수술한 것은 맞고, 예후가 좋았고, 조금 과장했어요. 난 사랑을 믿지 않아요. 지금도. 하지만 명주 씨는 믿어요. 그리고, 고아원에 9천만 원 기부한 것 봤어요. 잘했어요. 내가 사람을 잘 본 것 같아요.”
명주가 놀란 눈을 하니, 아내는 미소만 지었다. 이제 그녀는 사랑을 믿는 것 같았다.
5년이 지나 아내는 완전히 췌장암 판정에서 완쾌 판정을 받았다. MKKK 회장으로 명주는 열심히 활약 중이다. 그의 아내는 선친이 물려주신 회사를 남편이 맡으면서 매출이 벌써 5배나 늘어서 기분이 좋다. 사회에 굳건한 동력으로 회사를 키워서 좋은 경영자에게 맡길 생각이다.
둘은 얼마 전에 아이도 두 명 입양했다. 직접 낳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 낳았다고 생각하고 잘 키울 작정이었다. 금요일 퇴근하고 집에 가니 저녁석양이 잔디밭에 충만하게 넘쳐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