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근통 증후군 환자의 일기
요 며칠 브런치에 글쓰기는커녕 거의 손 놓고 최소한의 일상생활을 하면서 보내고 있다.
사실 나는 몇 년 전 갑자기 심한 건강 악화로 인해 요 몇 년간 계속 병원을 다니고 있다. 그래서 상태가 괜찮은 때에는 글도 쓰고 일상 활동도 잘한다. 그러나 상태가 안 좋을 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어야 했고 회사 출근해서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도 최소한으로 줄인 채 일만 겨우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내 주치의가 갑자기 나에게 내가 앓고 있는 병에 대해 진짜 병명을 고백했다.
그런데 거기서 나는 이해되지 않았던 과거의 내 모든 상태가 이해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에너지가 많이 없는 아이였다.
항상 밖에 나갔다 오면 한동안은 집에서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했다.
게으른 아이로 어른들에게 자주 혼이 났다.
많이 먹는 편도 아니고 남들과 같은 양을 먹어도 쉽게 살이 쪘다.
조금만 먹어도 배가 더부룩해서 소화가 잘 안 되었다.
오죽하면 전날 밤 단식 했는데도 내시경에서 그 전날 먹은 음식이 그대로 위에 남아 있었다.
음식점에서 조금만 상태 안 좋은 식재료를 쓰면 바로 장에 탈이 났다.
항상 장 건강이 좋지 않아 학창 시절 때 수업을 받고, 시험을 보는 게 괴로웠다.
제대로 학교 활동에 참여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다.
선생님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이상한 아이로 여겨졌다.
운동할수록 더욱 기력이 없어지고 심지어 전신에 고통이 찾아왔다.
PT 트레이너는 그게 다 운동이 미숙해서 그런 거라며 더 채찍질했다.
결국 몸이 더 아파져서 운동을 그만두었다.
항상 자주 아프거나 에너지가 잘 떨어지니 직장에서도 평상시 긴장을 많이 했다.
직장 동료들에게 게으르게 보이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떨어지기 전에 일을 끝마쳐야 하니 어떻게든 단시간 내에 효율적인 방식을 고수했다.
상사들에게 예민하게 굴거나 여러 가지 시도를 안 하고 도전하지 않는 인물로 비쳤다.
힘도 없고, 기운도 없고, 의욕도 없어 보이고, 게을러 보이고, 운동도 기피하고, 누워만 있고,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며, 소음을 잘 참지 못하고, 예민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소화도 잘 안되고, 먹었다 하면 탈이 나고,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
('섬유근육통'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공식명칭은 '섬유근통'이다.)
내 주치의는 지난 몇 년간 진료하면서 내가 '섬유근통 환자'라는 사실을 굳이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인터넷에 이 병을 검색하면 '불치병'이라고 뜨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이 병명을 알면 처음에는 너무 아플 때라 영원히 못 나을 거라고 좌절할 거 같아 내 주치의는 몇 년간 나를 위해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이 병은 스트레스가 증가되면 배가 넘는 고통이 순식간에 증폭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주치의는 언제나 진료를 볼 때마다 속도는 느리지만 꼭 낫는다며 항상 말을 해주었던 것이다.
'섬유근통'이라는 자체가 진단 내리기 정말 힘든 병이라 한다.
섬유근통은 기본적으로는 신경계통의 병이라 어디 상처가 났거나 하물며 피검사를 했는데 무슨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왔다더라 혹은 CT나 MRI를 찍었는데 이상한 부분이 나왔다더라 하면서 '이 사람은 무슨 병이다'라고 다른 병들처럼 바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 자료가 없는 병이기 때문이다.
자율 신경계는 우리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다.
그런데 고통은 준다.
원인은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채 말이다.
그렇기에 병명을 진단받기도 어려우며, 치료 방법도 정확히 존재하지 않아 '불치병'이라고 퍼져 있었다.
이 병은 진료를 계속 오랜 기간 보면서 수많은 여러 가지 경우를 다 배제했는데도 환자의 고통이 설명되지 않을 경우 의사의 판단 하에 진단명을 내릴 수 있었고, 불치병이라고 인터넷에 정보가 뜰만큼 난치병 계열이기 때문에 보통의 병원과 의사들은 사실 여기까지 생각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
왜냐면 난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으니 말이다.
그랬기에 어릴 때부터 어른들도 주변 친구들도 나를 그저 게으르고 꾀병 부리는 아이로 생각했다.
각종 병원 정밀 검사 결과도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내 악화된 몸상태를 진단받기 위해 여러 병원에 갔을 때도 많은 의사들은 심드렁해했다.
혹은 엉뚱한 곳을 치료해 버린다. 당연히 효과는 없었다.
심지어 3차 대학병원을 가서도 내 병은 진단받지 못하고 엉뚱한 치료만 받다가 비싼 의료비만 날렸다.
그러니 또 다른 유명하고 괜찮다는 병원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허비한 세월이 1년이 넘었다.
섬유근통 환자분들 중에서는 짧게는 수년, 길게는 몇십 년을 원인도 모르고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살다가 그대로 세상을 뜨시는 분들도 많기 때문에 그나마 1년이 좀 넘은 상태로 지금의 주치의를 만난 건 사실 천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전신에 힘이 없고 운동할수록 더 심한 고통이 몰려오거나 그런 건 있어도 일상생활이 아예 불가능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전 아예 일상생활을 못할 수준의 고통이 찾아왔고 그것이 내 투병 생활의 시작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듯이 선천적으로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다른 징후가 있었긴 했었다. 그래도 중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좀 소화가 잘 안 되고 저혈압으로 잘 일어나지 못하거나 빨리 지쳐할 뿐이지 이렇게 일상생활에 무리가 갈 정도로 아픈 적은 없었다. 본격적으로 내 몸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되짚어 보자면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내 주치의가 여태까지 진료하면서 줄곧 나에게 당부한 것이 있었다.
- 너무 오래 앉아 있지 말 것. (혹은 한 자세로 계속 있지 말 것.)
- 억지로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을 하지 말 것.
- 수면 시간을 7-8시간 이상으로 충분히 늘릴 것.
- 무리한 운동을 하지 말 것. (걷기와 뛰기, 가벼운 근육 운동 정도는 가능)
- 최대한 스트레스가 될 만한 요소를 배제할 것.
- 스마트폰과 같은 IT 기기와 멀어질 것.
- 자주 누워주고 스트레칭해 줄 것.
- 따뜻한 찜질과 따뜻한 물 샤워를 자주 해줄 것.
위 내용들을 잘 보면 고등학교 때부터의 생활 양상과 매우 상충되는 점이 굉장히 많다.
흔히 고등학생 때부터는 입시 공부 때문에 학교에서 아침 일찍부터 밤 늦은 야자 때까지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있어야 하는 생활과 늘 부족한 수면시간 그로 인해 충분히 운동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으며, 특히 시험 성적으로 인한 중압감으로 스트레스 수치가 굉장히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나는 1차적으로 자율 신경계에 큰 손상이 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습게도 직장인이 된 현재도 고등학교 생활 때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한 자세로 오래 앉아서 일했으며, 스트레칭이나 걷기 운동할 수 있는 여유도 없이 바빴고, 매일이 늦게 까지 야근에, 다음 날 업무 고민으로 또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늘 수면 부족에 시달려 커피의 강력한 카페인으로 뇌를 깨워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직장인 때 2차적으로 또 자율 신경계에 큰 손상이 가 지금의 난치병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을 역으로 뒤집자면 이것은 비단 특이 체질을 갖고 있는 나라서 걸린 게 아닌 누구에게나 조금만 잘못 관리하면 찾아올 수 있는 병이다. 그렇기에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건강 관리를 지금이라도 챙겨 나처럼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고민하다 브런치에 작성하게 되었다.
섬유근통은 사람마다 고통의 정도나 증상이 천차만별이고 의외로 섬유근통 환자 중에서는 나의 증상은 얕은 편에 속할 수도 있다. 적어도 나는 잠을 자다가 전신이 칼로 찔리는 고통에 깬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마다 편차가 있지만 나의 첫 증상은 이명에서 시작해 심각한 두통과 어지럼증이었다.
말로만 들어도 이게 섬유근통과 무슨 연관이 있을지 이해가 안 갈 것이다.
보통 이명과 어지럼증이 발병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석증'과 같은 유명(?)한 병명을 떠올린다.
그래서 의사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병인 것이다.
섬유근통을 일으키는 고장 난 자율 신경계의 그나마 밝혀진 추정 원인 중 하나는 척추와 근육 문제였고 나의 경우에도 이 케이스에 속한다.
( ! ) 참고 링크
유튜브 ''아프지마쇼Show - '섬유근통에 대한 새로운 시각, "척추"와 관련 있다고요?' (클릭)
한 자세로 오랫동안 앉아서 공부하고 또 일을 해 허리부터 시작해 목까지 척추가 말 그대로 아작이 났고, 거기에 매일같이 긴장해야 하는 학습, 업무 환경으로 근육마저 경직되어 버렸다. 틀어진 척추와 경직된 근육은 그렇게 신경을 누르게 되었고 그 짓눌림이 두통을 유발하다 오랜 시간 이어지자 신경 손상까지 이어져 어지럼증까지 발생시켰다.
이것이 이전 단락 마지막에서 누구라도 조금만 잘못 관리하면 이 같은 병이 찾아올 수 있다고 했던 이유이다.
물론 보통의 사람들은 운동이나 스트레칭을 좀 해주면 금방 풀리긴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달랐던 몸의 특이 체질로 인해 오히려 더 심하게 굳어져서 손상이 쉽게 또 더 심하게 왔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허리, 목 디스크와 도수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참으로 대한민국에 흔하다.
그리고 과로로 만성피로를 느끼고 있는 분들도 흔하다.
나이 드신 분들이 매일 같이 온몸이 쑤신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처럼 생각보다 흔하게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케이스들이 강도와 지속력이 더 심해지면서 자율 신경계에 손상을 입힌다면 그것이 내가 앓고 있는 '섬유근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재차 강조하고 싶다.
처음 1년 간은 조금 나으려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나 주치의에게 나을 듯하면서도 너무 안 낫는다며 힘든 감정을 토로했고 그래서 주치의는 처음에는 내 병명을 숨겼던 것 같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그래도 다른 병원들과 달리 어쨌든 느리지만 조금씩이라도 점차 호전되는 모습 또한 있었기 때문에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몇 년을 병원을 다녔는데도 잘 낫지 않은 내 병이 어딘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중간에 한 번씩 주치의가 내가 다른 사람들 보다 치유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 그렇다는 설명을 받은 적이 있어 원래 나는 그런 사람인가 보다 하고 꾸준히 병원을 다녔다.
무엇보다 사실 이젠 다른 병원을 달리 갈 데가 더이상 없었기도 했다.
그나마 이 병원에서는 다행히 이전 다른 의사들과 달리 어딘가 주치의가 내 증상을 좀 더 꿰뚫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약도 매주 섬세하게 내 몸 상태를 체크하면서 계속 테스트하고 조금씩 그램수와 종류별로 바꾸는 등 세심하게 봐주셨기 때문에 이 정도로 나를 케어해 주는 의료진을 만나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를 더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최근엔 정말 기적적으로 그나마 심하게 괴롭히는 어지럼증과 두통이 줄어들었다.
물론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섬유근통은 아까도 말했듯이 불치병이라고 불리는 난치병 계열이라 완쾌라는 것은 없다.
그러나 주치의는 내가 난치병 환자임과 동시에 난치병 환자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어쨌든 속도가 느려도 두통이 가라앉은 거처럼 상태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었고 주치의도 병명보다는 낫고 있는 내 몸상태를 믿으라고 언젠간 해방될 수도 있다고 희망을 주었다.
그렇기에 나는 현재는 난치병 환자이자 미래에는 아닐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위 단락에서 척추와 근육 문제와도 관련 있다고 언급한 만큼 살아있는 동안 관리를 잘못하면 그때는 지금보다 더 아플 수도 있고 회복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
그렇다면 또다시 난치병 환자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다.
섬유근통을 진단할 수 있는 다른 의사분들의 소견글 중에서는 섬유근통 환자들은 완치라기보다는 고통이 있긴 있되 일상생활이 가능한 이른바 '참을 수 있는' 수준 정도까지의 고통으로 줄이고 그것을 유지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현재의 나 또한 사실 완벽히 나은 게 아니라 지금도 두통이 올 때도 있고 어지럼증이 올 때도 있다. 그렇지만 과거에 이명과 함께 너무 심한 두통, 어지럼증으로 누워만 있을 때보다는 훨씬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
분명 주치의의 말대로 과거 아직 심한 증상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내가 난치병 환자라는 사실을 듣게 되면 절망하여 더 스트레스를 받아 치료가 더뎠을 수도 있다. 지금에서는 그 얘기를 듣자 약간 난감은 했어도 오히려 어릴 때부터 이상했던 내 몸상태가 이해가 되며 좀 더 자신 있게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되었다.
나 사실 게을렀던 게 아냐!
나 사실 기분 조절을 못했던 게 아냐!
나 사실 운동하기 싫어했던 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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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브런치만 하더라도 자신의 투병 생활을 고백하는 글을 쓰시는 작가분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런 분들을 보면 그들의 입장에 공감 가면서도 나보다 힘겨운 투병 생활 하시면서 더 밝게 살아가려는 분들도 많이 보여 나름 나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사람이 아프면 자기 연민이 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 나만 이렇게까지 아파야 하는지 수없이 하늘을 원망하고 이런 유전자를 준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끝에 가서는 모든 것이 다 부질없다.
결국 내가 해야 할 것은 그래도 나를 섬세하게 케어해 주는 천운 같은 의료진을 만났으니 조금이라도 현재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일을 안 해도 되는 금수저분들 외에는 다들 척추와 근육 건강을 한 번씩 돌아보면서 스트레스 관리를 잘해주셔서 나와 같은 고통을 안 겪으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한번 건강이 망가지면 부자라도 돈으로 주고 살 수 없는 것이 아프기 전의 나 자신.
즉, 건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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