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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스 else Sep 07. 2023

몽글몽글 단편 시 : 아빠의 손길

제2회 태평양생명-소년조선일보 아빠사랑 동시대회 수상작 2023 ver.

아빠의 손길


아빠의 손에는 길이 있다.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손금.

그 길은 거칠어 가시같다.

그 길은 끊어진 절벽같다.

아빠는 그렇게 살아왔다.


아빠의 손에는 길이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마디 가락.

가시는 장미라 생각했다.

절벽은 뜀박질 놀터였다.

자식은 그렇게 살아왔다.


아빠의 손에는 길이 있다.

가시밭길이라도 절벽떠러지*라도

아빠의 손바닥 살결 품에

가족은 평안히 걸어왔다.



* 낭떠러지(절벽떠러지) - 본래 “절벽”의 의미인 ‘랑’과 ‘ㅅㄷㅓ러지’가 결합한 합성어. 19세기부터 ‘랑ㅅㄷㅓ러지’로 문헌에 발견되었으며, 20세기부터는 우리가 아는 '낭떠러지'로 변화. (출처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는데 어릴 적 나는 기업이나 신문사가 주최한 예술대회에서 이상하리만큼 자주 상을 탔다. 그때는 어린이니까 학교에서 주는 상장돌림처럼 그냥 내기만 하면 다 주는 일종의 참가상인 줄 알았다.


그리고 지금보다 어릴 때의 내가 창작 감각이 더 뛰어났나 보다. 책장 정리를 하다 오랜만에 옛 상장 모음집을 들춰보니 그때의 그 상장들을 보고서 참 많이 놀랐다.


내가 이런 상을 탔다고?


사실 대부분 내가 쓰고 그린 대회 작품들이 잘 생각이 나질 않았기 때문에 더 놀란 것도 있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하나 기억나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아빠의 손길'이라는 동시였다. 그때는 동시랑 같이 그림까지 그려서 같이 제출했기 때문에 그 이미지 기억으로 남아있는 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동시도 전부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닌 시의 제목과 '아빠의 손에는 길이 있다'라는 이 첫 문장만 기억이 난다.


그러자 나는 순간 울컥했다.


요 몇 년간 나는 투병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안일과 식사 등 일상생활 전반을 아버지가 옆에서 도와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정말 '아빠의 손길'이 안 닿는 곳이 없었다.


( ! ) 참고글 > 주치의는 내가 난치병 환자임을 고백했다.


이제 연세가 드셔 당신도 기력이 쇠하실 텐데 자식인 나를 위해 꿋꿋하게 도와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어릴 때보다도 더 뼛속깊이 느끼고 있는 터라 '아빠사랑 동시대회'라는 상장에 적힌 대회 이름을 보고 더 마음이 술렁였다.


그래서 기억나는 시의 제목과 문구만을 가지고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2023년 현재 내 심정을 반영한 이른바 '리메이크' 해보았다. 어릴 적 나는 이 시를 작성할 때 아빠의 손이 참 따뜻하고 푸근했다는 것에서 아빠의 사랑이 느껴진다는 내용으로 썼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된 나는 아버지의 손에 무수히 많은 상처와 굳은살 또한 배겨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시의 주제는 여전히 변함없다.

아버지의 손에 있는 것들은 전부 '아버지의 사랑'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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