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육아를 만났을 때 보이는 16가지 우화 이야기
내 핸드폰 어디에 두었더라?
내 지갑 어디 갔지?
이과생 중에서도 나는 수학적 계산으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졌다. 그런데 육아 라이프 2개월 만에 기억력에 고장이 나더라. 나의 기억력이 점점 약해져 가는 것을 느낀다. 내가 누군지 잊어버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실제로 6개월쯤에 나는 나를 잊어버리기도 했다.
오늘은 나와 아이의 거리에 관해서 이야기해본다.
"육아의 거리"
나는 오늘 이 거리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이야기해볼 참이다. 유아를 기르는 부모가 많은 집이라면 반드시 알아두었으면 한다.
우리 집 첫째의 이름은 <헌이>다. 지금 나는 헌이의 밥을 먹여주고 있다. 우리 헌이는 3살이다. 아직은 유아 식탁의자에 앉혀서 먹는다. 어른이 딱 달라붙어서 먹여줘야 한다. 그렇게 어린아이는 아기새처럼 어미새가 먹이를 주기만을 기다린다. 아니다. 오산이다. 어미새를 보며 입을 벌리지 않는다. 딴짓을 한다. 그렇다 말을 지지리도 듣지 않는 미운 3살인 것이다.
육아에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말을 안 듣는 3살이 그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내 주변에 있는 어른이다. 이 어른은 참견이 심하다. 자신들의 할 일도 많을 텐데 왜 그렇게 참견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아이가 스스로 먹기를 원하는 아빠다. 그래서 스스로 먹기를 독려하면서 기다린다. 당연히 아이는 딴짓을 한다. 그걸 보고 옆에서 아내가 말한다.
"아이를 먹여줘야지 그냥 내버려 두면 어떻게 해요?"
이런 주제로 한두 번 싸웠기 때문에 먹여주는 척이라도 한다. 아내와 싸우면 손해인걸 안다. 그렇게 어른이 밥 먹는 시간의 3배 정도를 걸려서 식사시간이 끝난다. 당연히 체력과 마음 소모도 3배이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한마디 한다.
"좀 스스로 먹게 놔두지, 아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 나는 아들이기에 바로 받아친다. "스스로 먹게 놔두면 알아서 잘 먹을 거예요 "라고 속으로 말한다. 나는 곧 이곳대로 듣어 스스로 먹게 놔둔다. 또 퇴근한 아내가 말한다. 그렇다. 육아는 산 넘고 산 넘어인 반복이다.
어떨 때는 나도 한 마리 아기새이고 싶다. 입만 벌리고 있고 싶다. 엄청 말 잘 들을 텐데 말이다.
밥 먹을 때뿐만이 아니다. 나는 아이가 간식을 많이 먹는 걸 싫어한다. 나는 프로그래머이다. 그래서 계산을 해보았다. 간식 4.5개 먹는 날은 평균적으로 밥을 35분에 걸쳐서 먹었으며 간식 5.5개 먹는 날은 오차범위 플러스 마이너스 2분 범위로 밥을 41분에 먹는다. 즉, 간식을 많이 먹이면 아이가 밥을 늦게 먹는다. 밥을 늦게 먹으면 잠을 늦게 잔다. 잠을 늦게 자면 내가 피곤하다. 왜 아이는 안 피곤 한지 아직도 의문이다.
내가 간식을 쥐똥만큼 주고 있는걸 어머니가 본다. 그리고 또 말하신다.
"하나 더 줘라 그렇게 먹고 싶어 하는데"
내가 아이에게 훈육을 하고 있는데 또 옆에서 어른이 말한다.
아내가 말한다. "애를 굳이 혼낼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어머니가 말한다. "애를 왜 울리냐?"
내가 울고 싶다 진짜! 이러한 간섭은 부정적인 흐름을 만든다. 그 부정적인 물결의 흐름은 아이에게 흘러내린다. 나는 자꾸만 참견하는 그들을 원망해본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너무 놀랄까 봐 잠시 심호흡을 하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육아 휴직하기 전에 나는 회사원이었다. 그리고 바로 내가 참견하는 배우자였다.
그래, 이제는 알겠더라 그래서 이제는 간섭을 안 한다. 주말이면 가끔은 아내가 밥을 먹일 때가 있다. 간식을 많이 줄 때면 참견하고 싶어 몸이 먼저 움직이지만 마음이 잡는다. 밥을 계속 먹여주는 아내를 볼 때면 스스로 먹게 놔두라고 몸이 먼저 나가지만 이역시 마음이 잡는다.
나는 어떻게 간섭을 안 하게 되었을까?
육아휴직의 경험으로 보육자의 입장을 알게 된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또 통계를 내보았다. 데이터가 쌓였다. 간섭을 몇 번 해본 결과 끝이 대부분 안 좋았다. 부부싸움으로 끝났다. 항상 배드 엔딩이었다. 해피엔딩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참견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배드 엔딩의 최종 피해자는 바로 아이였다.
배우자 혹은 제3자가 간섭을 하면 보육자의 화를 돋우게 된다. 그 화 또는 원망은 돌고 돌아서 결국 아이에게로 향한다. 화는 불화살이 되어 원망을 품고 다이렉트로 배우자의 심장을 꿰뚤기도 한다. 아무리 두꺼운 마음의 방탄조끼를 가졌더라도 멘털이 탈탈 털린다. 아이는 오죽하랴.
그래서 아내에게 부탁했고 우리 가족만의 법칙을 만들었다. 참견을 멀리할 거리를 두기로 했다. 너무 가까이서 참견하지 말기로 말이다. 1M 접근금지? 2M 접근금지?로 정했을까? 아니다. 그 거리는 바로 육아의 거리다. "보육에 있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하는 행동이 옳다, 간섭 금지"
간섭을 안 하려면... 부부나 아이를 기르고 있는 보육자들이 서로 합의를 봐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배우자나 어른들의 간섭은 가장 가까이에서 아이를 돌보는 보육자에게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육아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으로 이어진다. 참견은 상당히 높은 확률로 부부싸움으로 이어진다.
육아의 거리를 두어 간섭을 피해보자. 그래도 정 간섭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간섭 이전에 아이의 감정을 먼저 간섭해보자. 결국 우리 아이 잘되려고 하는 간섭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