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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Dec 11. 2024

달리기를 사랑하게 되었네

또다시 사랑이 가능할까?

나는 달리기를 사랑한다


"형은 달리기를 정말 사랑하는 것 같아요"


25년 5월 체코에서 열리는 마라톤을 신청했다는 말에 A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마라톤을 하는 건 알겠는데, 굳이 해외에 나가서까지 마라톤을 하다니. 징하다. 라고 이야기할 법도 한데 '사랑'한다는 표현을 해주니 한편으로는 감사했다. 그래서 한 번 생각해 봤다. 나는 달리기를 정말 사랑하는가? 부모님에 대한 사랑, 이성친구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등등 사랑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이게 사랑이라는 느낌은 있기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맞아. 나는 달리기 사랑하는 것 같아"


내가 달리기를 사랑하는 것은 자명하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달리기를 하고, 차 트렁크 안에는 러닝화가 항상 준비되어 있다. 일 년에 5번이 넘는 마라톤 대회를 나갈 정도로 지금은 다른 어떤 행동보다 달리기를 사랑한다.

나는 달리기를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것을 거꾸로 추적해 보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알게 되고, 그 과정을 알면 아마도 사랑이라는 것을 정의하고 또한 그것들을 행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달리기와 사랑에 빠졌네


달리기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고통스러웠다. 달리기를 하고자 마음먹고 처음 달렸을 때다. 그동안 장거리를 달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호흡도 너무 어렵고, 폼도 엉성해서인지 신 스프린트(내측경골피로증후군)라고 하는 정강이 부상을 당했다. 살면서 이곳이 아파본 적이 없는데 왜 아플까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달리기는 멀지 않은 운동이라 생각했는데 굉장히 낯선 느낌이었다. 이 낯설고 고통스러운 첫 만남에서 내가 달리기를 그만두었다면 아마도 나는 달리기를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낯섦과 고통이 달리기를 처음 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다음주가 되었을 때 나는 또다시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달리기를 지속한 것이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 달리기를 지속하다 보니 달리기가 익숙해졌다. 호흡을 바꾸니 42킬로를 달려도 숨이 차지 않았고, 폼을 바꾸니 더 이상 신 스프린트 부상을 겪지 않았다. 달리기를 하면서 체중도 줄고 에너지가 넘쳐났다. 그렇게 달리는 나의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조금만 나면,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곳에 여행을 가면 꼭 한 번 달려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고, 이곳은 조깅하면 진짜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용품을 챙길 때에도 가장 먼저 러닝화를 챙긴다. 어느덧 달리기는 내 삶의 일부다.


그렇게 달리기와 익숙해지고 달리는 내 모습이 만족스럽게 되자, 굳이 안 해도 되는 일들을 벌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10km를 친구들과 달려본다. 1시간 동안이나 달려야 하는 거리다. 처음 10km를 달리는 사람들은 다리도 아프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것을 해내고 나면 하프 마라톤을 한 번 뛰어보고 싶다. 그렇게 대회를 신청하고, 마침내 42.195km라는 무시무시한 거리를 달리는 풀코스 마라톤을 신청한다. 풀코스 마라톤을 뛰어보고 나니, 해외 마라톤을 뛰어봐야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5년 이내에 세계 5대 마라톤을 뛰어야겠다는 꿈도 꿔본다.


다시 사랑이 가능할까?


이것이 내가 달리기를 사랑하게 된 과정이다. 누군가를 또는 어떠한 것을 사랑하는 것 또한 그렇지 않을까? 사랑해야 할 대상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낯섦을 겪게 되고 그것은 고통을 수반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나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잘 알지 못했던 부분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나의 몸과 감정이 경험해 본 기억이 없기에 적응하는데 고통스럽다. 


그 고통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재미를 느낀다. 그리고 다시 만나고, 점차 그 횟수를 늘리고 자주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고통은 사라진다. 편안한 상태가 되고 내가 이 사람과 또는 이것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좋은 곳을 갈 때, 아름다운 것을 볼 때 그 사람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는 대상과 하나 된 내 삶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진다.


이 단계가 넘어가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힘, 감정을 쏟는다. 그러한 일들은 절대로 합리적이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는 가치 있다고 느낀다. 사랑하는 대상과의 미래를 그려보고 꿈을 꾼다. 이 과정 가운데서 행복을 느낀다. 


어느덧 나이가 마흔에 가까워졌다. 이제 또다시 사랑이 가능할까?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달리기를 사랑했던 내 과정을 생각해 보니 다시 사랑이 가능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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