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책장의 첫 번째에 있던 책
다분한 정치적 의도가 만드는 노력의 결실
012. 책장의 첫 번째에 있던 책.
독서를 많이 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생각보다 이 취미가 막 저렴하진 않다는 거다. 책 한 권을 구매하는 행위 자체에 쓰이는 돈은 다른 어떤 취미보단 저렴할 수 있더라도 그 책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가 않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포기하게 된 것이 있다면 제대로 된 책장을 갖는 거였다.
어린 시절에는 방 한 벽면이 전부 책장인 게 싫어서 책을 다 갖다 버려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이었는데도. 책이라는 건 결국 물리적 실체가 존재하는 물건이고 이를 소장한다는 것조차 내게 부동산 가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방 한 벽을 전부 책으로 채울 수 있을 책장과 공간을 갖는 데에 성공한 부모님 세대가 위대해 보였다.
열두 번째 책은 '책장에 첫 번째로 꽂혀 있는 책' 이었다. 그때는 한창 졸업영화를 찍고 난 시기였어서 내가 주인공으로 설정했던 인물의 구성에 참고하기 위해서 구매했던 책들이 있었다. 브랜드 디자인 같은 걸 해본 적도 없으면서 왜 주인공 직업을 그렇게 설정했을까? 멋있어 보여서가 아니었을까? 이 책을 구매해서 나의 공간 안에 들이기까지 내가 했던 생각들을 되새겨보는 재미가 있었다. 놀랍게도 '첫 번째 꽂힌' 책인데도 읽어본 적 없었다는 점이 더 재미있기도 했고.
하지만 책장이 없는 삶을 살다 보니 이런 선택지가 오니 곤란해졌다. 도서관을 가야 하나? 어떤 형태로든 책장이면 된다면, 오랫동안 이용해 오던 이북 플랫폼에 내가 만들어둔 책장을 열람해 봤다. 언제 넣어둔지도 모르는 이 책이 있었고 읽는 내내 '도대체 내가 이걸 왜 담았을까?' 궁금해했다. 이유야 고사하고, 언젠가의 내가 결심해 내 공간 안에 들어오게 된 이 책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기도 하고.
이 책은 지도책이지만, 우리가 그간 알고 있던 지도와는 다르게 생긴 지도들이 가득하다. 어떤 데이터들은 데이터의 형태로 있다 보면 그 데이터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데이터가 된다. 후가공을 거치지 않은 채의 데이터를 관심사가 다른 일반적인 대중이 접하고 해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들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지도, 즉 데이터를 후가공해 시각화한 것들을 통해 보다 간편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갖게 되는 거다. 이 책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은 그런 세상을 읽는 방법, 데이터 지리학을 통해 정리한 방대한 데이터들이 정리되어 있는 책이다.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는 키워드들은 다음과 같다. 홀로코스트, 성명학, 소득과 긍정, 잔혹행위, 인공지능. 사람이 자신의 관점을 담아서 가공해 지리와 엮은 것들은 그간 도로를 뚜벅뚜벅 걷고 자동차 위에서 씽씽 달리던 나의 세상에선 알 수 없던 것들이 가득이었다. "오랫동안 지도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는 물건이었다."라는 문장이 진실로 느껴질 수 있게 관점을 잔뜩 학습하면서 책을 덮었다.
세상에는 이 지도책에 담기지 않았음에도, 가공되길 기다리는 데이터들이 많을 테다. 지도란 건 정지해 있는 영토에 대한 정보 값에 불과하다는 관점이 아니라, 이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로 노력해 가공한 새로운 형태의 지도들을 더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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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권의 의미]는 책을 100권을 읽으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그리고 그 책들이 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형성하는지 알아보고자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2021~2023년에 걸쳐 100권을 읽은 후 같은 리스트로 두 번째 100권을 시작했어요.
책의 리스트는 아래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