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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색과 컬러의 발전

인간과 색의 역사

by Dreaminnovator

알타미라 벽화, 인류 최초의 색

인간은 언제부터 색을 느끼기 시작했을까.
감각은 언제 예술이 되었을까.

그 오래된 질문에 답하듯, 북부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은 오늘도 고요히 서 있다. 약 1만 4천 년 전, 굴곡진 석회암 벽 위에 붉은 들소가 그려졌다. 이어 사슴과 말, 멧돼지가 나타났다. 붉은색, 검은색, 노란색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방금이라도 벽 속에서 뛰쳐나올 듯 살아 있는 감각을 보여준다.

루방 제리지 사레 동굴 벽화

알타미라만이 아니다. 약 4만 년 전,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 루방 제리지 사레 동굴에서도 동물 그림이 남아 있다. 흙, 숯, 광물을 혼합한 오커 안료로 표현된 장면이다. 이미 이 시기 사람들은 노랑, 빨강, 갈색, 검정, 흰색이라는 제한된 팔레트를 사용해 자연을 재현하고, 상징적 의미를 담았다.

알타미라 벽화의 들소에서는 몸통과 다리에 검은 점과 붉은 점을 섞어, 단순한 평면이 아니라 동물의 운동감과 입체감을 전달한다. 사람의 눈은 이러한 점들을 결합해 시각적 공간과 동작을 인식하는데, 이는 오늘날 점묘법과 색 대비, 명암 계산에서 나타나는 시각적 원리와 동일하다. 고대 예술가들은 이미 인간의 시각 체계와 빛의 상호작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 벽화 속 색은 사냥과 생존의 기원이며, 동시에 주술적 신앙과 풍요를 비는 언어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색으로 취향과 정체성을 표현하듯, 선사시대 인간은 색으로 삶과 믿음을 기록했다.

색은 단순한 시각적 장식이 아니라, 생존과 감각, 의미를 연결하는 강력한 도구였다.





파피루스, 인류 최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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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000년 전,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강 유역에서 자생하는 파피루스(Papyrus) 식물을 가공해 인류 최초의 종이 역할을 하는 기록 매체를 만들어냈다. 파피루스 줄기의 속살을 얇게 저며 세로·가로로 교차시킨 뒤 압착하고 건조하면 단단한 표면이 형성되었고, 이는 행정, 종교, 문학 기록의 핵심 도구로 활용되었다.

파피루스 위에는 상형문자(Hieroglyph)와 그림이 남겨졌으며, 이때 사용된 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회적·종교적 의미를 지닌 상징체계였다. 검은색 잉크는 주로 탄소(숯)에서, 붉은색은 산화철에서, 녹색과 청색은 구리·청동 계열의 광물에서 얻어졌다. 이러한 안료는 왕실 문서, 신화 기록, 무덤 벽화 등에 사용되며 권위와 신성, 계급을 구분하는 도구로 기능했다.

특히 색채는 고대 이집트 문화에서 중요한 상징적 역할을 했다. 푸른색은 나일강과 하늘, 영원성을 상징했고, 금빛은 태양과 신의 불멸성을 표현했으며, 녹색은 풍요와 재생, 생명력을 나타냈다. 이러한 색의 체계는 종교 의식뿐 아니라 장례 의례, 장식 예술에서도 일관되게 활용되었다.

결국 파피루스와 색채는 단순한 기록과 장식의 차원을 넘어, 고대 사회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전달하는 매개체였다. 파피루스는 이후 파치먼트(parchment)와 종이로 이어지는 기록 문화의 출발점이 되었고, 이 위에 구현된 색은 문명사의 상징체계 연구에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유럽 중세와 ‘색의 진화’

파피루스에서 시작된 컬러의 역사는 중세 유럽에 이르러 한층 세련되고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된다. 종교화와 필사본 제작, 궁정 장식에서 색은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니라 권력과 부를 드러내는 상징이 된다.

특히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를 기반으로 한 금융·정치 거물로, 색을 활용해 가문의 권위와 세련됨을 과시했다. 황금빛과 주황색, 그리고 당시 매우 귀하고 비싼 '청금석 블루(Lapis Lazuli Blue)'는 성모 마리아 그림과 궁전 장식에 사용되어 신성함과 권위를 동시에 드러냈다. 일부 안료 사용은 가문 독점으로 제한되기도 했으며, 색 하나에도 정치적 의미가 깃들었다.

다른 귀족 사회에서도 색의 상징성은 예술과 권력을 연결하는 핵심이었다.


프랑스 부르봉 가문: 붉은색 계열 안료로 군주의 권위와 장식적 위엄을 강조했다.

영국 잉글랜드 왕실: 코치닐에서 추출한 퍼플 염료로 왕권과 고급 직위를 상징했다.

독일·네덜란드 귀족: 금·은 입자가 포함된 안료, 청금석, 라피스 계열을 활용해 화려하고 세밀한 장식화와 필사본 제작했다.


이처럼 고급 안료는 수입과 제작이 어려워 가격이 높았고, 권력과 부가 있는 계층만 사용할 수 있었다. 화가는 고객인 귀족이나 교회의 요구를 반영해 색을 조합했고, 색의 선택과 배합은 작품의 의미와 권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다.

결국 중세 유럽에서 색은 단순한 시각적 장식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언어로 진화했다. 안료와 염료, 그리고 그 배합 기술의 발전은 예술과 권력, 색의 관계를 긴밀하게 연결하며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컬러 문화의 뿌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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