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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현 Sep 17. 2019

인스타그램에 대한 기호학적 단상

  몇 년째 눈팅용으로만 쓰던 인스타 계정을 열어 업로드를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 친구들은 더 이상 페이스북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지보다 텍스트가 친숙한 인간으로서는 버틸 만큼 버티다가 시류에 탑승한 셈이다. 그리고 인스타 후발주자가 되어 새로운 SNS의 문법을 배워야만 했다.

  인스타그램은 일단 텍스트를 쓰는 기능이 상당히 불편하다. 좁고 줄 바꿈도 잘 안 되는 공간에 글을 우겨넣어야 하는데, 이 때문에 텍스트의 시각화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문장부호는 도태되고, 과장된 이모지들이 문장부호로 활용된다. 참고로 장문의 글은 아예 포기하는 게 좋다. 쓰는 순간 촌스러운 인간이 되어버리니까.

  페이스북에서는(혹은 다른 인터넷 공간에서는) 다운받은 이미지를 올리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인스타그램에서는 자신이 직접 찍지 않은 이미지를 올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더군다나 게시글을 위해서 사진이 필수이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려면 집 주변에 있는 하수구 뚜껑이라도 찍어 올려야 한다. 이와 같은 즉물성은 인스타그램만의 특징이다. 퍼스의 이론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사진의 '지표기호'적 특징이 매우 강조되어있다.

  찰스 샌더스 퍼스는 기호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는 도상기호. 상형문자인 한자를 떠올려보자. 나무를 뜻하는 '목(木)'자는 실제 나무의 형상을 따온 것이다. 도상기호는 대상체와 표상체가 외형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는 상징기호. 사람들은 빨간 신호등에서 멈추고 파란 신호등에서 길을 건넌다. 여기서 ‘빨강’ 혹은 '파랑'의 표상체는 ‘멈춤’ 혹은 '이동'이라는 대상체와 외형적 연관성이 없다. 상징기호는 순전히 사람들 간의 약속을 통해 기능한다. 마지막으로 지표기호. 만약 눈이 쌓인 언덕에 발자국이 찍혀있다면 그 발자국은 누군가 그 자리에 있었음을 나타내는 기호가 된다. 지표기호에서 대상체는 표상체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나타낸다.

  흔히 인스타그램에 대한 인식이 허세용 SNS로 박힌 이유도 위의 지표기호적 특성과 관련이 크다. '자신이 그 곳에 있었음'을 강조하는 것은 곧 자기자랑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인스타 이용자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나 소유한 것을 인증하듯 사진 찍어 올리고 해시태그를 통해 널리 퍼뜨린다. 여기서 사진은 철저하게 지표기호로써 기능한다. 다시 말해 인스타그램은 찍어 올릴게 없는, 시쳇말로 '아싸'들은 끼어들 틈이 없는 가혹한 SNS다.  

  제임스 카메론은 <아바타>를 찍은 이후 "이제는 배우 없이도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CG와 합성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영상에서의 지표기호적 특징이 갈수록 옅어지는 것이다. 점점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시대에 인스타그램의 즉물성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먼 미래에는 지표기호야말로 있는 사람들이 향유하는 자원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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