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그것이 문제다.
바다가 좋다.
왜? 냐고 물으면 왜 아닌데?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나의 생각이나 주관이 없는 듯하여 불안한 사람들에게, 왜 그 생각을 하게 되는지 이유를 따져보라고 말한다.
이유를 찾는 연습은 꽤나 쉽고 단순하게 나를 알아갈 수 있게 한다. 내가 무언가를 왜 좋아하는지, 어떤 생각을 왜 하게 되었는지, 어떤 취향을 어쩌다 갖게 되었는지 추적하는 작업은 생각의 얼개를 만들어 나를 구상한다.
저는요...
1. 파도가 해변가에 닿아 하얗게 부서지는 무작위의 것을 좋아해요. 매 순간 어떻게 와해될지 예측할 수 없네요.
2. 날씨가 좋은 날 파도 결 저마다 다른 각도로 반사되는 햇볕의 반짝임이 좋아요.
3. 깊은 바다가 내는 음중한 소리가 좋아요. 저는 들을 수 없는 음파의 소리겠지만 그냥 그런 떨림이 온몸으로 전해와요.
4. 해수면 위에 앉아있는 갈매기들이 좋네요, 세상에서 가장 넓고 깊은 방석에 앉을 수 있다니.
5. 어느 방향에서나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시원해요. 걸릴 것이 없는 해변가에서 바람은 가장 자유로워 보여요.
6. 육지와 바다의 거리가 멀지 않은 곳, 해수에 흠뻑 젖어 뭉개지는 갯벌의 폭신함이 좋아요.
7. 바람이 잘 불어 평평해진 바위가 좋아요. 참 운 좋은 휴식이죠.
8. 수평선에 걸터 무음으로 진행하는 배를 바라봐요. 그 안의 사람 덕에 해안선은 수평선의 무소식에 불안하지 않겠죠.
9. 따뜻한 날 햇살을 품은 모래의 따끔함이 좋아요. 그 재촉에 못 이겨 누구나 한 번쯤은 바닷물로 뛰어가 보았을 테죠.
10. 바다 그 뒤의 숲이 좋아서요. 숲의 일생에 눈앞의 바다는 감정적 비료겠네요.
11. 해 질 녘 바다에서 보는 노을이 좋지 않나요. 구름 없는 저녁 하늘은 노을이 그린 가장 큰 캔버스 같아요.
12. 바다가 주는 선물도 있죠. 저는 해산물을 좋아해요.
13. 바다가 가진 에너지가 즐거워요. 사실 언젠가 서핑도 배우고 싶어요.
14. 해안가를 따라 걷는 산책이 좋아요. 지도가 없어도 길을 잃을 일 없으니까요.
15. 한바탕 바다에서 놀고 큰 길가로 돌아와 아스팔트에 묻어나는 물 발자국이 좋아요. 신발이 작든 크든 바다 추억 한 꼬집 묻혀 나오죠.
16. 세상의 불이 다 꺼진 밤, 파도음에 가득 찬 바다 공기가 좋아요. 불 꺼진 시야에 공간은 음성으로 가득 찹니다.
17. 밤바다 모래 위에 돗자리 하나 펴고 앉는 걸 좋아해요. 거기다 분식 한 세트 나눠먹을 친구들까지.
18. 바다가 작곡한 수많은 시와 음악을 들어요. 모래사장 한가운데 피아노 한 대가 있어 즉흥 연주를 하는 상상을 하곤 해요.
19. 멀찍이 떨어져 있는 동네까지 뿜어내는 바다내음이 좋아요. 조금만 더 걸어가면 마음을 탁 트여줄 당신이 나올 거라는 기대감까지.
20. 그리는 대로 그려지는 모래의 짙은 영역이 좋아요. 단, 파도가 곧바로 와서 지워가야 해요. 너 이름 내 이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