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인데, 결혼 13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대학 때 친구와 1박 2일을 함께 했다. 기차를 타고 몇 달 전에 예약해 둔 숙소가 있는 도시로 향하면서, 도착한 숙소의 카페에서, 숙소 둘레의 산책로를 걸으면서 우리는 아이 얘기, 직장 얘기, 다시 아이 얘기를 죽ㅡ 했다. 맥주를 사들고 방에 들어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 맥주캔을 따며 내가 친구에게 물었다.
넌 뭘 하고 싶어?
ᆢ첫 캔ᆢ
아버지와 따로 살고 싶어.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던 중년의 친구가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생겼으면 하는 마음에 물은 건데, 두 딸과 친정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던 그 친구는 저렇게 답했다.
아버지가 밥을 떠서 입에 넣는 모습이 미워. 집을 나가고 싶어. 한 번은 아버지를 향해서 소리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 밑이 드러난 지도 모른 채 안방에서 웬 여자와 뒤엉켜 널브러져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해. 아무리 붙들어도 굴러 떨어질 듯 계단을 내려가서는 차에 시동을 거실 때도 있었지. 아버지처럼 차도 비틀거린다 싶더니 아파트 벽에 갖다 꽂혔을 땐... 그때 영영 가셨다면 나았을까. 엄마가 어디서 뭘 하는지 내가 무슨 수로 알겠니. 엄마와 연락을 하며 지내는지 새벽마다 깨워서 물어왔어. 취조를 받는 기분이었어. 그러다 끝에는 울어. 미안하대. 나는 그런 아버지가 무서웠어. 꼭 나를 어떻게 할 것만 같았거든. 밤마다 요 아래에 부엌칼을 넣었지. 내가 살고 싶어서 그랬을까. 살아서 뭘 하겠다고. 그것보다는 그저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아. 그때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던 내 동생이 날더러 아버지를 떠나래. 그냥 집을 나가버리랬어. 그런데 우스운 게 뭔 줄 알아? 아버지가 불쌍하기도 했다는 거야. 저 난리들을 치고도 아침이면 술에서 깨서 라면을 끓여달라고 하는 아버지가 가엾더라. 끓여드린 라면을 냄비째 끌어당겨서 한 절 한 절 뜨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버지한테 라면을 끓여줘야 하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어. 한 번은 정말로 아버지를 떠나도 괜찮을 것 같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동생이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어. 빠글한 파마머리만 엄마가 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칼을 가진 여자가 커다란 짐 가방을 가지고 우리 집에 들어왔지. 아빠는 여자더러 한사코 나가라고 했지만 여자는 자기를 엄마라고 부르랬어. 동생이 타지에서 집에 다니러 온 날, 집 밖 가로등 아래에서 내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고 선 거야. 낯선 여자가 있는 집으로 저 혼자 들어가기가 뭐해서 나를 기다린 거지. 그런데 내가 집을 떠나? 그럼 동생은?
ᆢ다음 캔ᆢ
매달 330만 원 변제, 회생, 3년, 애들 엄마 미안해,...
애들 아빠의 소식을 묻자 친구가 나에게 보여준 문자에 저런 말들이 쓰여 있었다. 친구는 둘째 아이를 낳을 때까지 몰랐던 남편의 빚을 알고 별거를 하다가 애들이 다섯 살, 세 살 때 이혼했다. 비록 대출을 끼긴 했어도 가정을 이뤘던 아파트와 집안을 채운 살림을 모두 놔둔 채 친구는 혼자만 원룸으로 옮겼다. 맞벌이를 하는 아들 내외의 손자들을 봐줬던 시부모가 아이들을 맡았다. 다행히 다달이 월급을 받는 직장에 다닌 친구였기에 천천히 자리를 잡아갔다. 그리고 큰아이가 5학년 때 친구는 아이들을 데려 왔다. 30년 상환 대출 조건으로 아파트도 장만했다. 친구가 결혼하면서 홀로 지냈던 친정아버지도 그 아파트로 들어갔다. 지금 큰아이는 고1이다. 단돈 얼마라도 보내오던 애들 아빠가 며칠 전에 보낸 거라며 나에게 내민 저 문자 내용대로라면 그 남자는 친구가 아이들을 데려온 뒤에도 빚을 만든 거였다. 부부가 살던 아파트를 처분해서 대출금과 숨겼던 빚을 갚고도 남는 게 있었을 텐데 도대체 또다시 얼마의 빚을 졌기에 3년간 매달 330만 원씩 갚아가야 한다는 건지. 기가 막혀 욕도 나오지 않았다. 친구와 같은 업에 있는 그 남자가 도대체 뭘 하느라 또 빚을 졌는지. 세상의 온갖 욕을 가져다가 처발라주고 싶었다. 내 심정이 이런데 친구는 오죽할까. 친구도 나도 그때 이혼하길 잘했다는 말만 계속 되내었다.
ᆢ마지막 캔ᆢ
살다가 답답한 순간에는 철학관이라는 곳에 가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친구를 보니 그렇다. 직장 동료를 따라서 한 번 다녀와 봤던 곳엘 이번엔 친구 혼자서 찾아갔단다. 아이들의 생년월일만 알려줬을 뿐인데 아이들에 대해서 제법 알아맞히더란다. 그러면서 보살이 덧붙인 말을 하는 친구의 얼굴에 맥주를 마시는 동안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웃음기가 스쳐갔다.
애들 먹을 건 애들이 가지고 태어났대. 친구한테 이 이상의 어떤 괘가 필요할까. 친구도 순간 마음이 놓였던지 저 자신은 남자운을 못 가졌는지 물어봤단다. 대답을 듣고 웃음이 나올 뻔했다는데 10년 이내에 남자를 만날 거란다. 남자운이 있긴 있던 거다. 그런데 괜찮은 남자도 친구를 만나면 놈팡이가 된다고 했단다. 이건 무슨 소리?
순간 직장 동료가 나한테 했던 말이 생각나더라. 그 동료가 나더러 당최 밀당을 모른다고 했었어. 꽃뱀이 되라는 게 아니라 싫으면 싫다고, 잘못됐으면 잘못됐다고 표현을 해서 전남편이 나를 심심하지 않게 생각하도록 했어야 했대. 전남편이 나한테 매력을 잃은 거랬어.
그 남자가 결혼 전에 빚을 진 게, 이혼 후에 또 빚을 만든 게 남편한테 무조건 잘한 친구 때문이라고? 보살의 놈팡이 어쩌구저쩌구하는 말을 전해 들으며 뚫린 입으로 뱉은 게 다 말이 되는 세상인가 보다 했다. 남편이 필요로 하는 걸 마련해 주고 남편에게 필요해 보이는 걸 준비하는 성격인 친구가 본래는 번듯했던 그를 망쳤다는 건가? 현모양처형 아내들은 죄다 남편을 말아먹었겠다! 다시 생각해 보니 철학관 같은 곳에서는 좋은 얘기만 듣고 얼른 일어서는 게 낫겠다!
더 마실래?
늦었다. 이제 자자.
씻고 침대에 누웠는데 이불의 재질이 서걱댐과 부드러움의 딱 중간 정도여서 피부에 와닿는 촉감이 개운했다. 은근한 무게감까지 느껴지니 금세 잠이 왔다. 활짝 젖혀진 커튼을 보면서 내일 아침 채광 때문에 불쾌하게 깨겠구나 싶어 커튼을 닫을까 싶었는데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예상대로 이튿날엔 밝아오는 빛에 눈을 떴다. 밤사이 엷게 낀 구름이 하늘을 모두 가렸고 강에는 빗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누구는 우산을 쓴 채 산책로를 걷고 있었고, 누구는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친구는 침대에 앉은 채로 한참을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눈을 찌르는 듯한 강한 볕이 이글거리지 않는, 옅은 회색의 하늘이 된 이 같은 날에는 특별히 도드라지는 풍경이란 없다. 색색깔의 색지가 물을 머금으면 한결 차분한 착 가라앉는 색이 되는 것처럼 풍경들도 그저 차분한 채로 움직일 뿐이다. 눈에서 불이 날 정도로 강렬하게 내리쬐는 빛으로 불쾌할 때가 있기 때문에 차분해진 풍경의 날을 알아볼 수 있는 것 같다. 아프도록 강렬해서 친구의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것들이 한숨 차분해지기를 이 명절의 달님께 빌어야겠다.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꾸며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