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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더 Nov 14. 2023

애들 눈으로 관계 맺기

   6학년 여름부터 1여 년간 할머니와 함께 살았었다. 할머니가 큰댁에서 나와서 혼자 사실 거라는 얘길 부모님으로부터 듣자마자 나는 짐을 싸서 할머니의 새 보금자리로 들어갔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가 나를 이뻐해 주셨고, 그대로 나도 할머니를 참 좋아했다. 할머니는 큰어머니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명절 때마다 큰댁에 가면, 삼각 눈썹을 세운 큰어머니의 목소리엔 날이 서 있었다. 다 커서 들은 얘기에 의하면 아직 더 커야 하는 시동생과 시누이가 있었고 다 컸지만 자리를 잡지 못해 별 볼 일 없었던 시동생들과 시누이가 있는 집안의 큰며느리로 들어온 큰어머니는 막내 시누이와 당신의 큰딸을 자매를 기르듯 키워야 했다. 막내 시누이를 남겨두고 다들 결혼을 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변변찮은 살림살이었던 만큼 명절 때 큰댁으로 모일 때면 큰댁에 계신 할머니께 선물로 무얼 갖다 주는 건 고사하고 큰댁에서 쌀이라도 안 가져 나오면 다행이었다.


   내 어머니는 그 지경으로 쪼들리던 때를 떠올리면서 큰어머니가 고약하긴 했었노라고 했다. 명절 때 밥 한 술 뜨는 것도 눈치가 보였단다. 어린 내 눈에도 큰어머니는 살가움과는 전혀 가깝지 않은 분이었다. 그런데, 뭐, 코흘리개 꼬맹이가 어른들의 세계를 읽었으면 얼마나 읽었을까. 큰어머니는 나에게 단지 '무서운 큰어머니'였을 뿐이다.


   우리 집안에 '들어온' 분도 아니고 우리 집안의 사람들과 별개의 분도 아닌 그냥 큰어머니말이다. 큰댁은 큰아버지가 계셔서 큰댁이기도 했지만 큰어머니가 계셔서 큰댁인 곳이었다. 큰어머니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 집안의 어른으로 내게 존재했다. 그래서 아무리 무서워도 내게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남남이었던 걸 머리로는 아나 가슴으로는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두 분의 자녀인 내가 살아온 것처럼 큰어머니는 큰아버지와도 내 어머니와도 내 아버지와도 한 혈육으로 나는 여겼다. 아니, 여겼다기보다 줄곧 그렇게 알았다. 큰어머니는 내 가족이었다.


   지난주에 동서가 출산을 했다. 아가의 사진과 동영상이 톡으로 날아왔다. 얼른 전화를 걸어 동서와 도련님한테 축하한다고, 동서가 고생 많았다고, 정말 큰일을 했다고, 장하다고 말하며 한껏 수선을 떨었다. 친정이 없는 상황이나 매 한 가지인 동서한테 마음을 탈탈 털어서 축하를 전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주말에 아가를 만나러 경기도로 갔다.


   "자기야, 나, OO가 마냥 예쁘지만은 않아. 나,

  이상하지? 우리 애들 아가 때, 내가 너무 힘들었어서

  그런지 아가가 있는 곳에 가고 싶지가 않네."


   아가를 보러 가는 차 안에서 내가 남편에게 한 말이다. 남편은 하나뿐인 동생이 갈 수나 있으려나 걱정되었던 장가를 가고 마침내 아이도 낳아서 기쁘기 그지없었을 텐데, 형수라는 사람이 한다는 얘기가 기 찰만 했겠다. 그래도 고맙게도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기만 할 뿐 별반 다른 말은 안 했다.


   "에효, 매일 보는 것도 아니고 명절 때나 볼 텐데,

  그때마다 이뻐해 주는 건 나도 할 수 있겠지!"


   남편한테 미안해진 나는 이렇게 대화를 끝냈다.

   3.6kg으로 태어난 아가는 2.5kg와 2.9kg였던, 쭈글이 E.T 같았던 내 아이들의 모습과 다르게 이뻤다. 딱 거기까지였다. 머리숱을 가득 가지고 태어난 겉모습이 훤한 게 이뻤다. 그런데 안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신생아실에 있는 아가를 안아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게 내심 다행이었다.


  '우리 아랫집 아이는 이뻐하면서 내 조카를 이렇게

  여기다니. 아랫집 아이는 내가 지나치며 인사만

  해주면 되는 아이고, OO은 내가 계속 이뻐해 줘야

  한다는 부담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조카를 만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퍼뜩 내가 큰엄마가 된 걸 깨달았다. 내가 큰엄마가 되었다는 걸 알아채자 너무나 신기하게도 아가에 대해 가졌던 부담감이 눈 녹듯 스르르 녹는 게 아닌가.


   나는 아가에게 큰엄마다. 아가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 집안에 먼저 있던 어른. 그래서 아가는 나를 이 집안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동서와 나를, 도련님과 나를 마치 혈육처럼 여길 것이다. 아가는 나를 외부인으로 치부하여 나를 평가하거나 하지 않을 거란 말이다. 내가 잘나도 못나도 아가는 나를 '큰엄마'라고 부를 것이다.


   "그래, OO야, 내가 네 큰엄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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