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터울인 두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 나는 밤마다 친구한테 톡을 보냈었다. 자니?로 시작한 톡은 큰아이가 떼를 쓰는 게 감당이 안 된다, 작은아이가 잠들기 직전에 잠투정이 심해서 진이 빠진다, 잠투정으로 우는 아이를 달래랴 위아래 층에 아이의 우는 소리가 피해를 줄까 봐 신경 쓰랴 내 속이 속이 아니다, 아이가 울어대도 남편은 잘만 잔다 등으로 이어지던 톡은 도대체 내가 왜 결혼을 했는지 모르겠다로 끝을 맺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친구는 우리 OO가 힘들구나, 누가 우리 OO를 힘들게 했어?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한 거잖아. 남편이 가장 사랑스러웠을 때를 떠올려봐. 나는 그게 나를 버티게 하더라 등등 내 마음을 알아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면 내 마음부터 알아주던 친구의 그런 말들 덕분에 차고 넘치는 걸 넘어 폭발하기 일보직전이던 나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은 조금씩 조금씩 서서히 사그라드는 거였다. 친구와의 톡을 마치고서 내 옆에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노라면 이튿날엔 아이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 포용하겠노라는 결심이 일곤 하였다. 그리고 남편은 남편대로 바깥일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싶어지기도 했다.
주말에 남편이 속이 상한 마음을 나에게 토로해 왔다. 사춘기인 큰아이가 자기를 대하는 태도 때문에 남편은 모욕감마저 느낀다고 했다. 진정하고 나서 아이와 대화를 해보라고 내가 말하자 자꾸 왜 진정하라고만 하느냐고, 자기한테만 참으라고 하느냐며 남편은 나한테 무척 서운해했다. 그러면서 나는 자기에게 안 좋은 마음을 풀어놓을 때마다 내 마음부터 알아달라고 하면서 왜 나는 자기 마음 먼저 헤아려주지 않느냐고 말이다.
큰아이와 남편 사이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둘의 관계가, 둘의 마음이 좋은 상태일 수 있을까만 고민하던 나는 순간 멍해졌다. 내가 아들을 둘을 키우는 거야, 셋을 키우는 거야! 사춘기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도 벅찬데, 남편의 마음까지 살펴야 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그래서 주말 동안 아빠를 향한 큰아이의 언행 때문에 모멸감을 느낀 남편은 안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아빠가 자기한테 냉랭하게 행동하는 것에 오히려 억울한 마음이 든 큰아이는 아이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아들과 남편 사이에서 당최 답을 찾을 수 없던 나는 내 방에 틀어박혀 내내 넷플릭스만 시청했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과 평소처럼 살갑게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서 폰을 들고 톡을 보내려는데, 순간 남편을 향해서 미운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거다. 그래도 꾹 참고 남편이 그토록 듣고 싶었는데 내가 감도 못 잡아서 해 주지 못한 말, 당신 외로웠겠다... 를 보냈다. 내가 자기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해. 나마저 자기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해서 많이 서운했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톡을 여기에서 멈췄다. 꽁꽁 틀어진 것 같았던 남편한테서 곧바로 답이 왔기 때문이다. 자기도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그 이상 더 무얼? 사랑한다고 쓰니 이젠 사랑의 마음이 새록새록 피어나는데.
밤마다 톡질을 하던 나에게 내 친구가 진정 좀 해. 그러니까 애들이지. 너는 엄마면서 그래? 결혼을 누가 강제로 시켰니? 니가 하고 싶어서 한 거잖아 -라고 답을 보내왔었다면. 그때 나는 어땠을까? 아니, 어떻게 했을까? 사람마다 상황과 형편이 다 달라서 겪는 일은 천차만별로 다를 수밖에 없지만, 어떤 일로 인해 겪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 감당이 안 될 만큼의 버거운 감정들은 거기서 거기인 비슷한 유일 것이다. 감정의 깊이에나 차이가 있달까.
그러나 그 깊이를 당사자 외에 누가 재단할 수 있을까. 힘들어 죽겠다고 하면 그런 게 아닐까. 숨을 못 쉴 만큼 턱에 찬다고 하면 그런 거 아닐까. 나의 마음부터 만져준 친구 덕분에 지금까지 육아와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었으면서 내 친구의 덕은 잊고 있었다. 감정의 분화구에서 시뻘겋게 치솟던 감정의 불덩이들을 스르르르 사그라들게 하는 말, "힘들었겠다." 아들들과 남들한텐 착착 잘도 하면서 남편한테는 이 말이 필요한지, 힘이 되는지 조차 깨닫지 못했었다. 등잔 밑이 어둡기로 이렇게나.
주말엔 남편과 단둘이 카페에 가야겠다. 집에서는 오직 남편한테만 집중하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닌데, 지난번에 둘이서 카페를 가보니 내가 오로지 남편의 눈을 보며 남편에게 귀를 열고 남편의 얘기를 듣더라. 남편의 일상을 더 알게 되고 남편의 마음도 더 느낄 수 있었다. 두 아들이 제법 자란 만큼 이제부터 남편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가야겠다. 내가 그의 마음을 참 소중하게 챙길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