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더 Jan 21. 2024

"애랑 어른이랑 똑같냐?"

   오늘 저녁에 큰아이의 손바닥을 때렸다. 새해 들어 중학생이 되는 큰아들이다. 일주일이 넘도록 남편을 대하는 태도가 정도가 지나치다 싶었는데, 저녁에 내 옆을 지나며 들으라는 듯 욕을 뱉는 거였다. 모든 기분을 입 밖으로 내야 하는 건 아니라고 경고를 주었건만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는 물건을 패대기를 쳤다. 그간 큰아들한테 꾸준히 말해 주기를, 부모를 두고 욕을 하는 건 절대로 안 되는 거라고 했었는데, 오늘 내가 직접 듣고 말았다.


   한 주 전 주말 밤에 화가 난 아이는 소파에 남편이 있는데도 들으라는 듯이 이 욕 저 욕을 해대며 씩씩거리고 거실을 활보했단다. 그걸 참아 주느라 끝까지 버틴 남편은 그 이튿날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나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모멸감마저 느꼈단다. 남편은 전날 아들을 참아 주느라 꾹 눌러뒀던 분함을 결국엔 도로 아이에게 쏟아냈고 아이는 웬 날벼락이냐 싶은 태도로 어이없어했다. 그 상태로 일주일을 보낸 오늘 저녁, 감기로 예민해져 있는 남편과 큰아이가 접촉했다가 아이가 흥분을 한 채로 내 옆에서 욕을 뱉은 것이다.


   아이에게 남편과 일치된 의견과 가치를 고수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우선은 아이를 나무랐다. 나무랐는데도 감정 분출하는 걸 멈추지 않길래 거실로 불러내어 손바닥을 때렸다. 펴라니까 순순히 폈다. 있는 힘껏 내리쳤다. 딱 한 대지만, 매를 든 건 몇 년 만이었다. 왜 자기한테만 그러냐며 억울함을 가득 품고 아이는 눈물을 흘렸다. 아빠한테는 왜 뭐라 하지 않냐고. 나는 자식인 너를 혼낼 수는 있지만 아빠와 엄마는 ㅡ 부부는 서로를 혼낼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고 했더니, 더 바득바득 말대답을 해왔다. 다시 한번 매를 들려고 하니 처음처럼 손바닥을 내놓지는 못하고 뒷걸음을 쳤다. 아프긴 아팠나 보다.


   사실 내 속도 아이와 같은 마음이긴 했다. 남편이 미운 마음. 남편은 평일 5일 내내 정신없이 바쁘게 지낸다. 심지어 토요일에도 종종 출장을 가곤 한다. 자정 즈음 퇴근을 하면, 종일 가지지 못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느라, 새벽까지 매체를 시청한다. 그리고 나면 늦게 잠자리에 들고, 이튿날은 아이들이 등교한 뒤에 출근을 한다. 그리고 주말에는 누운 채로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지낸다. 아, 주말에 소파와 일체가 된 남편을 볼 때마다 내 속에서는 화산이 폭발하는데, 그런 속을 주 내내 피곤했을 남편한테 티를 안 내려니 주말마다 죽을 맛이었다. 뭐라고 하기엔 주중에 못 쉰 남편이라 짠하고, 뭐라고 안 하자니 주말 동안 나 홀로 주방이며 거실에서 동동거리며 분주한 것이 속이 타고.


   그나마 남편이 먹은 것과 남편이 사용한 물건은 남편이 치우는 것만으로 나의 분주함이 줄어들기에, 꾸준히 그건 요청해 왔었다.

   "자기야, 소파에 귤껍질 모아놓은 거 자기 거야? 바로 치워 줘."

   "식탁에서 마지막으로 일어난 사람 누구야? 자기였어? 마지막 사람이 반찬통을 정리하고, 식탁도 닦아야지."

   "OO 씨, 양말을 여기에다 벗어놨네. 세탁통에 갖다 놔줘."

   말을 하다 보면, 지난 주말에도, 그전 주말에도, 한 달 전에도, 1년 전에도 똑같이 했던 말이라는 사실을 퍼뜩 깨닫는다. 이런, 쒸~!


   혹시 이렇게 남편을 지적하는 내 태도 때문에 아들이 아빠를 업신여기는 건가. 아니면, 남편이 아들한테 너무 친구처럼 대하나. 그래서 아빠를 무한정 편하게만 생각하고 어려워할 줄 모르는 아들이 되었나. 도대체 남편을 향한 아들의 분노는 왜 생긴 걸까. 답답하다.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든 2년 전부터 아들은 남편과 이따금 부딪혔다. 그러나 언제나 그 순간뿐, 이번처럼 아들이 일주일이나 남편을 향해 벽을 쌓은 적은 없었다. 아이들을 올바르게 양육할 수 있게 조언해 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대부분이 부모의 양육 태도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던데, 우리 부부의 양육 태도가 문제인 건까.


   공평하면서도 본이 되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해 오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주로 책을 읽는다. TV는 전혀 보지 않는다. 가족에게 개인 시간이 주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나 패드로 영화를 본다. 폰도 주로 개인 시간에 사용한다. 부모가 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남편한테도 이것저것을 요구한다. 소파에서 TV를 볼 때는 앉아서 봐 달라, 아무리 주말이라도 TV든 폰이든 적당히 해 달라, 소파에 누운 채로 뭘 먹지 말아 달라 등등 내가 두 아들한테 들이고 싶은 바른 습관 ㅡ 바른 자세, 매체 이용 시간 조절력 등 ㅡ 에 대해 남편한테도 꾸준히 말한다. 남편을 지적하는 듯한 이런 나의 행동 때문에 사춘기의 큰아들이 남편을 자기와 동급으로 여기는 걸까.


   이유가 뭐든 남편이 아빠로서의 권위를 잃은 건 맞는 것 같다. 무엇이 바른 해결책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남편의 권위가 바로 서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남편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도우면 더 쉽고 더 빠르게 남편이 잃은 아빠의 권위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도우려니 남편이 현재 우리 가정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헤아리게 된다. 남편이 실질적으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더라도, 남편이 보이지 않는 중에 나와 두 아들들에게 남편과 아빠로서 자리 잡고 있는 정도 말이다.


   먼저, 아들들과 나 이렇게 셋이서 식사를 할 때마다 남편 얘기를 자주 해야겠다. 그래서 아이들이 늘 아빠를 인식하고 아빠한테 감사해하고 아빠를 존중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아이들이 듣는 데서는 남편의 어떠한 면도 지적하지 말아야겠다. 오히려 칭찬할 점을 눈을 씻고 찾아서 아이들 앞에서 남편을 추켜 세워야겠다. 음..근데..이거..좀 낯익다. 내가 종종 결심했었던 거 같다. 굳게 마음먹고는 열정적으로 실천하다가 어느 순간 변하지 않는 남편을 발견하고는 그 길로 뚝 그만뒀던 결심들. 아, 맞네, 그거네! 아들들 눈에도 보이는 게 있을 텐데, 내가 암만 아빠에 대해 좋은 얘기를 펼친다 한들 애들이 직접 보는 것만 할까 싶어서 그만 두곤 했었다. 밑 깨진 독에 물 붓기인 것 같았다.


   주말 아침에 아빠는 자고 있는데 자기는 왜 일어나야 하냐고 묻는 자녀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는 조세호 씨의 질문에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조선미 교수(아주대 소아정신과)는 대답하길, 아이가 지켜야 할 규칙을 부모한테도 똑같이 적용하게 되면 아이가 부모와 자기를 대등하게 여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그렇게 되면, 회사에서 온 연락을 받는 부모한테 아이는 폰 사용 시간이 끝났는데 왜 사용하냐며 부모에게 따진다고 했다. 순간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내가 목표로 삼은 '공평하고 본이 되는 부모'를 이루기 위한 실천 사항들을 조선미 교수는 부모의 권위를 아이에게 내어주는 잘못된 행동으로 지적하고 있었다. 아, 이거였구나! 나는 아들이 느끼기에 남편이 자기와 동급이라고 여길 상황을 주말마다 연출하고 있었던 거였다. 에고!


    "애랑 어른이랑 똑같냐?"

   조선미 교수가 한 마디로 일축한 권위 있는 부모가 되는 방법인 이 문장을 '공평하고 본이 되는 부모' 대신 나의 속에 넣어 새겨야겠다. 부모는 아이에게 동급의 친구가 아니라 '부모'여야 한다. 아이들은 자기를 책임질 존재로 친구를 꼽지 않고 '부모'를 인정할 것이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책임지는 '부모'여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내편의 마음 내가 챙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