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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더 Jan 28. 2024

책 모임 1

   2020년 2월 말에 지금 살고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하기 3개월 전에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새 학기인 3월이 되었어도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고, 집 근처 교회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나마 새집 주변이 봄철 내내 벚꽃이 만발하는 곳이라서 아이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함께 산책을 하며 지냈다. 산책을 하다가 연이 닿은 반려견과 반려인도 꽤 되었다. 봄은 그렇게 반려인들, 반려견들과 벚꽃비 속에서 인사를 나누며, 여름은 외딴 물놀이 장소를 찾아다니며, 가을은 극도의 외로움에 몸서리를 치며 보냈다. 그러다가 겨울에 일을 냈다.


   팬데믹 상황 때문에, 새로운 지역에 둥지를 튼 지 1년이 다 되도록 새 지역에서 교제하며 지내는 어른 사람이 없던 나는 비대면 새벽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2021년 새해 1월부터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자는 명분을 내세워 시작한 새벽 ZOOM 독서 모임 '새벽 카페'. 1타임은 새벽 5시 30분부터 6시까지였고 2타임은 뒤이어 6시 10분부터 6시 40분까지였다. 네이버 지역 카페를 통해 함께 할 분들을 모집했다. 앞서 밝힌 독서 모임의 취지를 알리고 10명 이내로 신청을 받았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소통이 절실했다. 그래서 방도를 마련했다.


   소통이라고 해서 수다를 원했던 건 아니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느낌, 모임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 이거면 충분했다. 물론 내 것 네 것을 가리지 않는 아주 친밀한 사이라면 무박 2일 동안의 수다도 환영이겠지만, 새로 이사한 지역에 이런 사이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2021년 1월부터 세 달 동안 평일 새벽마다 ZOOM 독서 모임을 열었다. 1타임과 2타임 중 자신이 신청한 타임에 접속해서 30분 간 각자의 책을 읽으면 되었다. 마이크는 음소거하고, 카메라는 자신을 비추거나 읽고 있는 책을 비춘 채로. 이른 시각에 나 홀로 깨어있는 게 아니라 여럿이 함께 깨어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 그 고요한 새벽 시간에 나의 뇌는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롭지 않았다.


   2024년 1월 25일. 바로 오늘 새벽에도 비대면 독서 모임인 나의 새벽 카페를 찾은 이들과 함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방금 멤버들에게 단체톡을 보냈다.


   새벽 카페예요~

   1타임) 2명

   2타임) 6명이

   함께 했습니다~*^^*


   단, 하루만 읽어도

   독서는 좋지요~


   팬데믹 상황 중에 새로운 터전에서 엄습한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 시작한 비대면 새벽 독서 모임. 그 후로 매년 새해 두 달 1월과 2월에 따박따박 새벽 카페를 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년 봄부터는 대면 독서 모임도 만들어서 매달 첫 주와 셋째 주 목요일에 모여서 2주간 함께 읽은 한 권의 책에 대하여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휴직 중인 분, 주부, 사업하시는 분 등등 다양한 분들과 오직 책을 매개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생판 모르는 남남으로 살면서 생에서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을지 모를 이들. 그들과 책으로 삶을 공유하고 때로는 글도 끄적여 보는 인연으로 닿은 것이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고 감사하다.


   그리고 팬데믹 중의 책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나를 학생들과도 읽고 쓰는 책 선생이 되게 하였다. 흥미로운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엉덩이로 꿋꿋이 읽어야 하는 책을 학생들이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면 과욕일까. 사랑까지는 욕심이라면 학생들이 책의 진가를 맛보게 될 때까지 책 읽는 좋은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학생들을 돕는 건 충분히 가능할 성싶다. 책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 채로 즉흥적인 재미를 따라가는 학생들이 책의 참맛을 맛볼 수 있게. 책 전체 분량의 1/4 정도만 꾹 참고 읽으면 그다음부턴 제법 술술 읽히는 놀라운 마법도 익힐 수 있게. 그래서 다채로운 볼거리 앞에서도 결국엔 스스로 책을 선택할 수 있게. 끈덕지게 엉덩이로 읽을 수 있게. 학생들이 만나는 책이, 그 책 속으로의 깊은 몰입이 언젠가 학생들이 각자의 인생길에서 맞닥뜨릴지도 모를 커다란 난관을 ㅡ외로움 같은ㅡ 묵묵히 헤쳐나가게 돕고 싶다. 돕겠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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