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가르쳐 주는 것
갑자기 눈물 흘려본 적이 있는가?
세수를 하다가
이를 닦다가
옷을 입다가
신발을 신다가
문을 열다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다가
길을 가다가
운전하다가
밥을 먹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
나도 모르게라는 말을 쓸 만큼 무의식적이었나 보다.
그건 그만큼 내 안에 슬픔이 가득 내재되어있었나 보다.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울고 싶어서 슬픈..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후인지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아들러든, 프로이트든….
슬픔은 슬픔으로 그냥 온전히 느끼고 싶은 오늘이었다.
운전을 하고 집에 오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옷소매로 스윽 훔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냥 눈물이 어디로 흐르는지 느끼고 싶었다.
그 눈물이
‘너 슬프니까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느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정말 신기한 것은 뺨에 눈물길이라도 있는 것인지, 꼭 같은 길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그나저나 ‘눈물’ 이 녀석도 길이 있는데,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주저 없이 가고 있는데,,,,
나는?
나는 잘 가고 있는 걸까?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내가 가고 싶은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건 나의 지나친 욕심은 아닐는지..
순전히 이기적인 나만의 바램은 아닐는지..
그냥 나만 생각하고픈데,
그냥 내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픈데…
그래서 히피문화가 성행했던 것인가?
자유와 평화라 주장하고, 술, 마약, 도박으로 일관했던… 미래는 모르겠고, 다만 오늘만 행복하자 했던… 이게 히피가 맞나?
히피문화 전문가가 이 글 읽으면 경을 칠 일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내일은 모르겠고, 오늘 행복해야 하는데, 실상은…
미래에 좋은 대학 들어가야 해서, 오늘을 희생해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기!
미래에 좋은 회사 들어가야 해서, 대학시절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입학하자마자 토익에, 자격증에…
미래에 좋은 집을 사기 위해, 한 푼 두 푼 아껴가며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기!
그래서 얼마나 행복한가?
조금 더 나아지리라는 파랑새 증후군에 나를 얼마나 재촉하고, 얼마나 닦달했는지..
거기 가면 행복할 거야! 그걸 가지면 행복할 거야!
이제 몇 가지만 정리되면 너가 원하는 삶을 살게 될거야!
난 아직도 그 희망에 기대어 살고 있는 걸까?
그 희망은 과연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곳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곳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곳이 내가 생각했던 그곳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그곳에 닿지 못하고,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에 내가 울며 빌고 있는 것일까?
눈물은 운전하는 내내 엎드려 제 갈길 가고 있었다.
‘성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등산은 꼭 꼭대기에 도착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가는 내내 산들바람 불어내는 나무들, 겨울을 나야 해서 떨어진 도토리를 부지런히 모으는 청설모들, 졸졸졸 소리를 내며 바위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들이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상에 서는 것은 목표!
‘결과로 논리를 설명한다’도 맞고, ‘과정이 곧 결과다’도 맞다.
오늘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겠지.
열심히 살았는데, 결과가 좋지 못하다면, 누군가 더 열심히 한 사람에게 좋은 결과가 가는 것이겠지. 나는 최선을 다한 것으로도 목적을 달성했으니 다행!
결승전에서 져서 은메달 땄다고 울며불며 진상부릴 일이 아니다.
승자의 손을 번쩍 들어 환한 웃음으로 축하해 주는 것도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
오히려 더 멋있다.
목표보다 목적이 더 중요한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은메달 딴 사람보다, 동메달 딴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은메달은 ‘좀 만 더 했으면 금메달인데, 아이고 아까워라!’
동메달은 ‘휴 다행이다. 하마터면 메달 없이 돌아갈 뻔했네!’
일단 가진 것에 행복하자!
그래서 그런가?
선풍기가 참 감사하다.
어렸을 적, 종암동 산 꼭대기 살 때에는 6인 가족에 선풍기가 한 대 뿐이었는데…
그 땐 어찌 그리 가난했던지..
지금은 1인 1선풍기!
내 선풍기다. 오래된 것이긴 하지만, 센서가 달려있어서, 손이 닿으면 자동으로 꺼지기까지 한다.
이야! 성공했다.
게다가 에어컨도 있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선풍기를 틀면 이건 거의 초가을 알래스카다. 선선한 가을이 방안에, 거실 안에 그득하다.
눈 감으면 눈 덮인 산들에 둘러싸인 호수, 옥빛 물결이 잔잔히 흐르고, 호젓하게 떠가는 유람선 하나, 밤이면 오로라가 하늘을 수놓고, 연초록의 넓은 풀밭이 저 끝까지 펼쳐진…
그 알래스카도 요즘 온도가 30도를 넘는다고 하니… 내 감동 물어내!
지나간 일을 어쩌랴? 내가 어찌할 수 없었던 과거를 어쩌랴? 죽은 자식 불알 만진다고, 이미 지나간 일을 두고 애를 쓰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니 접어두어야겠다. 많이 분하고, 억울하고, 원통하고, 절망스럽지만,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전진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 마지막에 보면 하나남은 다리를 사수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한 것은 ‘가지고 있는 물자 점검하기!’였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에서 다가오는 전투를 준비해야겠다.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나?
직업도 있고,
노트북도 있고,
자동차도 있고,
집도 있고,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있고,
희망도 있다.
에어컨도 있다.
심지어 건조기도 있다.
게다가 선풍기도 있다.
가진 게 많으니, 전투를 잘 준비할 수 있겠다.
라이언 일병을 구하고 돌아가는 것이 가장 decent한 일이 될 거라고 말하던 장면도 가슴 찡한 순간이었다.
나도 이제 잘 준비하고, 잘 전투를 치러야겠다.
그게 나에게 가장 decent한 일이라 나중에 회상할 수 있도록!
아!
눈물로 시작했다가,
선풍기 때문에 감사했다가,
근 25년이 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까지 소환하게 되었다.
오늘은 여러 감정을 경험!
슬펐다가, 다행이었다가, 뭉클했다가!
그래서 살아있음을 느낄 예정!
잠을 청해야겠다.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기도 좋고,
흘러간 영화에서 인생철학을 깨우치는 것도 좋은데,
일단 잠을 좀 자야 하지 않겠는가?
이 놈의 불면증은 쉬이 가시질 않는다.
아직 내겐 생각을 더 해야 한다는 절대자의 숨은 뜻이 있는 것일까?
아직 나는 더 고난의 길을 밤새 외롭게 가야 한다는 것일까?
그래도 잠 좀 자면서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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