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독이 병인줄 몰랐다
"샤워하면서도 일 생각하면 일중독이래요"
에? 그거 내 이야긴데..
'내가 일 중독인가?' 의문을 가지는데 쓰는 시간도 아까울 만큼 나는 명백한 일중독이었다.
10년이 넘는 회사생활 동안 90% 이상을 일생각에만 썼다.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일에 미쳐있던 게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니까 후회라는 단어를 쓰는 건 아닌 거 같다.
하지만 일중독으로 지나간 시간들은
마냥 편안하게 남아있지 않고 많이 불편하다.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라는 인정을 어지럽히고
애써 가려둔 미련이 컥컥 거리며 올라온다.
그렇게까지 애쓰지 말걸.
내 몸과 마음이 연비 좋은 차가 아니라는 걸 몰라서
나는, 기름을 철철 흘리며 풀엑셀만 밟아댔다.
왜 그렇게 간절했을까?
뭐가 그렇게 나는 잘하고 싶어서 지랄 발버둥이였을까.
일을 안 하고 쉬는 게 어색하고 오히려 스트레스받는 사람들이 간간히 있다.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또 새로운 일로 해소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 지나온 회사생활도 비슷했다.
나는 일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살아있음을 느꼈고
일을 하지 않는 내 삶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노는 거보다는 일하는 게 낫지' 말하던 나는
일 하는 내 모습이 멋있었다.
나 자신이 자존감이던 내가 일이 자존감이 되기 전까지는.
일이랑 결혼은 하지 말고 썸만 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내 모든 걸 다 줬으면 안 되는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성장하지 못하면 패배자'라는 가스라이팅은
나를 항상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일 중독은 회사와 내 삶의 경계를 흩뜨려 놓았다.
퇴근 후 친구를 만나도, 여행을 가도, 집에서 쉬고 있어도.. 일에 대한 집착만 이어졌다.
일이 더 잘될 수 있는 방법, 성과 등을 생각하느라
내 인생인데 내 시간이 없었다.
점점 쌓여가던 스트레스는
몸에서 먼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간지러워 긁으면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괴롭혔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건강까지 해쳐가며 회사에만 희생하는
딸내미의 모습에 엄마는 종종 말했다.
'너 회사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
그러다 일에 대해 진심이었던 친구와 만나면
일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일에 최선을 다하고, 희생하고, 노력하는걸
서로는 알아주었다.
우리는 일이 재미있었고, 문제들을 해결하며 성장하고 있었고,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나를 인정하기 위해 일하는 게 똑같았다.
그리고 신체반응에만 나타나던 스트레스는 정신까지 잡아먹었다.
나는 엄청난 번아웃에 정신의학과를 가게 되었고
친구는 일하다가 고막이 터졌다.
둘 다 병원 신세를 면치 못했다.
무엇을 하든 간에 그 현재에는 최선을 다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 무엇들 보다 나 자신을 돌보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한다.
내가 멀쩡해야지 그 좋아하던 일도, 성장도,
살아있음도 계속 느끼게 될 거니까.
나는 그걸 하지 못했다.
일만 열심히 하면 다 성공하고, 뿌듯하고,
행복한 인생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 모든 생각들은 내 정신승리였다.
조금만 덜 열심히 일할걸.
일에 미쳐있는 나 자신을
내가 먼저 고생한다고 토닥여줄걸.
어느 순간 회사에서 타이레놀을 간식처럼 먹었다.
온몸이 아파도 병원 갈 생각도 못하고 약으로 버텼다.
퇴근길에는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지 생각에 운전을 하고 있다는 것도 까먹었다.
그냥 사람이길 포기하고 살았다.
딱히 미래를 크게 생각하며 사는 성격은 아니다.
사람의 팔자라던가, 운명이라는 것들에 어느정도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지금'에 충실하며 살고 있다.
죽기 전, 열심히 해보지 못한 것들이 후회될까 봐.
그렇게
후회하기 싫어서 일중독이 되어버렸는데,
남은 게 아직도 가려운 몸과 지친 마음이라 슬프다.
내 회사도 아니면서 일에 미쳐 나를 돌보지 못했음에 미련이 크게 남는다.
(내 회사라도 나를 돌보는 시간은 중요하다)
최선을 다하면 성과도 좋을 거라 생각하며
하늘의 뜻을 무시한 채 일에 허덕인 시간이 아깝다.
(잊지 말자 진인사 대천명)
과정에 최선을 다 한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결과에만 목숨 걸었던 내가 가엽다.
(모든 결과에는 과정의 힘이 있다)
자존감이 떨어져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보다
남이 나를 인정하는데 목말라했던 그 시간의 나를
안아주고 싶다.
(남에게 인정받으려 사는 내 인생이 아닌데 잊어버렸다)
일을 하는 게 재미있고 행복했다.
행복하려다 보니 일 중독이 되었는데,
한 발자국 떨어져 그때를 보니 그냥 내 욕심이었다.
일을 잘하면 행복해, 성과를 내면 행복해,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이 행복해 가 아니라
일을 잘하고 싶은 욕심, 성과 내고 싶은 욕심,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
혹, 지금 이 강을 건너려 한다면 뒤를 한 번만 돌아보자.
잊고 있었던 그 무엇보다
소중한 나 자신을 놓고 가는 건 아닌지.
일중독은 결국 내 욕심이었기에,
나는 그때의 시간들이 행복하지 않다.
전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