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요즘 핫한 정지아 님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었습니다.
저는 주로 경제서나 자기 계발서 같은 딱딱한 책 위주의 독서를 해요.
그래서 비슷한 책을 여려 권 읽다 보면 한 번씩 현타가 올 때가 있는데요.
그렇게 책태기가 올 때쯤 재미있는 소설이나 에세이 한 권 읽고 나면 다시 리프레시 되더라고요.
그래서 얼마 전 책 플렉스를 하면서 가장 먼저 고른 책이 바로 <아버지의 해방일지>였습니다.
저는 도서 계정으로 인스타를 운영하고 있는데 요즘 인친님들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관련 피드가 많이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나도 한번?' 하는 마음으로 별 사전 지식 없이 읽게 되었습니다.
어딘가 귀여워 보이는 표지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저는 이 책이 이런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정지아 작가님의 자전적 이야기입니다.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다 말년에 가벼운 치매를 앓던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음,., 주인공이 아버지 아니었어?
그런데 첫 문장이 '아버지가 죽었다.'라니...'
시작부터 허를 찔린 저는 그때부터 정신없이 정지아 작가님의 글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소설의 화자인 아리는 빨치산 출신으로 죽을 때까지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로 인해 가난의 굴레를 안고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수감 생활로 인해 아버지의 부재를 겪으며 자라는 과정에서 아버지에 대한 반감을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정작 본인의 가정은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하면서 민중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남의 일에는 손발 벗고 나서는 무능력한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연좌제로 인해 가족과 친척들의 앞길을 막으며 가장 가까운 주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존재였죠.
그녀 역시도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을 하루 앞두고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다는 과거가 탄로 나며 파혼을 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리가 아버지를 회복해가는 이야기입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급하게 상을 치르면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모인 다양한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이죠.
아리의 기억 속에 무능력한 빨치산이자 이미 죽은 사상인 사회주의를 끝까지 버리지 못한 죽은 존재였던 아버지는,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친구였고,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은인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아버지처럼 따르고 싶은 스승이었습니다.
자신을 함께 살고 싶은 할아버지라며 따르는 소녀에게 아리와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누구보다 가족의 행복을 갈망했던 평범한 아버지이자 남자였던 것이죠.
아리는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타인의 입을 통해 들으며, 어린 시절의 친밀했던 아버지를 회복하고 비로소 그동안 품고 있던 마음속 응어리를 풀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뼛가루를 아버지가 머물던 공간 이곳저곳에 뿌리며 보내 드립니다.
아빠, 나는 들을 리 없는, 유물론자답게 마음 한 줌 남기지 않고 사라져, 그저 빛의 장난에 불과한 영정을 향해 소리 내 불렀다.
당연히 대답도 어떤 파장 따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영정 속 아버지가, 이틀 내 봤던, 아까도 봤던 영정 사진 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아버지의 해방일지> 中
우리는 우리 부모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혹시 아리처럼 나에게 어떤 굴레를 씌운 존재로 원망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나요?
아리가 아버지를 평생 사회주의를 버리지 못한 빨갱이로, 이미 죽은 이데올로기를 좇는 죽은 존재로 인식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측면만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저는 책장을 덮고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어머니를 생각하느라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어머니의 이야기에 크게 관심이 없는 아들이었기 때문에 아는 것이 별로 없어요.
그리고 이제는 여쭤보더라도 온전히 그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습니다.
저도 아리처럼 나중에서야 어머니의 이야기를 알게 될 것 같아 그동안의 시간을 많이 후회했습니다.
꼭 부모님이 아니라도 내가 몰랐던, 꼭 알았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알게 된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의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더욱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주의나 빨치산 이야기가 등장한다고 무거운 분위기는 전혀 아닙니다.
이념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누가 읽어도 좋을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구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답게 맛깔나는 전라도 사투리에서 느껴지는 말맛과 글맛이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또 다른 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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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사람들과 시끌벅적하게 보내는 것도 좋겠지만 이 책과 함께 부모님과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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