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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 Jul 12. 2024

췌장암입니다

암투병기록 1-2

지금은 진단받고 4일째 되는 날 새벽 1시 42분이다.

막연하고 두려운 병 앞에서 언제 어느 때의 나의 컨디션이 가장 좋을지 몰라 시간이 나고 기억이 선명할 때 무언가라도 남겨놓고 싶은 마음에 노트북을 킨다.



택시에서 내리는 남편을 본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미안하다'였다.

나도 그렇지만, 왜 우리 오빠에게 이런 가혹한 시간을 맞게 한 것일까.

내가 믿는 신은 없지만, 하늘이 참 원망스러웠다.

얼떨떨한 표정의 오빠는 애써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나와 똑같은 마음일 거다.

믿기지 않으면서도 두렵고 두려운 마음.

입원수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손을 맞잡았다.

하늘이 뚫린 것처럼 하염없이 비는 쏟아지고,

오빠도 나도 정신을 바로 차리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렷한 마음은 이제 한순간도 떨어져 있기 싫다는 것.



20살 때 처음 만났다.

한두 번의 스쳐간 남자친구는 있었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하는 마음의 대상과는 어떤 마음을 나눌 수 있는지, 사랑이 어디까지 품을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준 사람.

어디 가서 농담처럼 

'첫사랑이랑 결혼해서 아쉬운 게 많다.

껌을 방정맞게 씹을 때 헤어졌어야 했다. 헤어짐을 실패했다'라고 얘기했지만.

난 오빠랑 결혼한 걸 후회한 적이 없다.

술자리에선 늘 다시 태어나서 결혼해야 한다면 오빠를 찾아서 할 거라고 했었으니까...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고 출산 후 내 모습이 변해도 한결같았던 사람.

내년이면 결혼 20주년이다.

함께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여행하기로 했었는데...

부부가 함께 산지 10년이면 이제 의리로 산다지만,

난 오빠와 함께라서 언제나 사랑 속에 있을 수 있었다.

주변의 지인들도 그런 말들을 했다.

나를 보면 사랑받는 여자라는 게 느껴진다고.

맞다.

나 잘난 맛에 사는 것처럼 언제나 당찬 나였지만 나의 당당함엔 늘 오빠의 사랑이 깔려있었다는 걸...

남자를 얕보는 성격이었던 나에게 유일하게 단단한 믿음으로 기댈 곳이 되어준 사람.

하지만 예민하고 수줍음도 많고 속은 여리디 여린 사람.


오빠는 친구들이 많지 않다.

남자들 다 좋아한다는 축구도 야구도 당구도 골프도 어느 하나 즐기는 것이 없다.

혼자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걸 좋아하고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한다.

언니는 농담 삼아 호석이는 '취미가 너고 특기가 너고, 네가 엄마고 아내고 세상인 것 같다.' 할 정도로 나와 함께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무녀독남인 오빠가 형제자매가 많은 나를 만나 나와 함께 북적이는 가족의 정을 알게 되었다.

그런 사람이 이제 혼자 남아야 한다.



언젠가 비 오는 날 술 한잔 기울이며 김광석 노래를 들을 때였다.

아내를 먼저 보낸 남자의 이야기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듣고 내가 얘기했다.

'오빠 나중에 오빠가 먼저 가든 내가 먼저 가든 남은 사람이 이 노래 들으면 대게 슬프겠다'

내 나이 43살이다.

그 어느 60대의 노부부가 부러워진다...

그들은 큰 딸아이 결혼도 함께 지켜봤고 막내아들 대학시험을 뜬 눈으로 함께 지셀 수 있었다.


차 안에 울려 퍼지고 있는 모든 노래는 우리의 추억의 손때가 뭍은 노래들이다.

대학 캠퍼스커플로 만나 평생의 반 이상을 함께 해 왔으니 모든 장소와 모든 물건과 음식 노래들에 우리의 추억이 함께 스며있다.

그런 곳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질 오빠를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졌다.

혼자 그 아픔 추스르면서 아이 셋까지 지켜야 하는 상황.


아...

난 너무나도 당연하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아직 충분히 많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너무나도 파아란 꿈을 꿨었나 보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만큼일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추하게 가고 싶진 않다.

오빠에겐 영원히 '우리 예쁜 쭈야'로 기억되고 싶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오빠에게 영원히 나는 나이 든 할머니가 아니라 그래도 아직 여자로써 예쁨을 간직한

40대의 예쁜 쭈야로 남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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