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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 Jul 14. 2024

유방암 4기가 부러워질 줄이야

생생정보통

2024.7.11. 목

뻔뻔해지기로 했다.

세상에 현존하는 가장 무서운 병에 걸려있는 나지만,

살아야 하지 않는가.

내게 용기를 줄 수 있고, 막연함을 조금이라도 밝혀줄이가 있으면 찾아야 했다.

예전에 일하면서 알게 된 지인이 한 명 있었다.

참 똑 부러지고 밝았던.

유방암항암치료를 계속하고 있다던.

암환우들의 다양한 모임에도 참여하고 활동적이었던 보경 씨.

[암밍아웃]이라는 책이 나왔을 때 홍보를 도와줬었다.

-암밍아웃:암환자라는 걸 밝힌다는 뜻

그 책을 읽을 때만 해도 '암'은 나의 사전엔 없는 단어였는데...



몇 년째 연락이 없었지만 먼저 카톡을 보냈다.

잠시 후 걸려온 전화.

특유의 깔끔하고 담담한 목소리.

간단한 인사뒤에 나의 망설이는 목소리를 바로 캐치한 보경 씨가 물었다.

"안 좋은 일이세요?"

"아... 네"

"본인? 아니면 가족?"

"저요. 췌장암이라네요"

전혀 미동도 없었다.

암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내일 병원으로 오겠다 했다.




오늘 보경 씨를 만났다.

알고 지냈을 때가 4년 전이니 햇수로는 8년째 매 3주마다 서울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했다.

그것만이면 다행이려나.

좋다는 항암제가 있으면 일본까지 가서 주사를 맞고 올 정도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보경 씨다.

유방암 4기는 생존율이 45%다.

갑자기 보경 씨가 부러워졌다.

보경 씨도 처음에는 아직 유치원도 가지 못한 아이 초등학교 입학이라도 보고 싶었다 했지만 지금 이렇게 잘 버티고 있다.

그동안 찾아봤던 유튜브에서, 인터넷상의 정보들을 진짜 겪었던 사람입장에서 아주 깔끔하고 담담하게 수많은 정보들을 쏟아냈다.

암얘기를 이렇게 신이 나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한참을 얘기 나누다 누가 어떻게 죽었다 이런 얘기를 할 때 어쩜 그렇게 담담할 수 있냐니까

자기가 지금까지 알고 지낸 사람이 40명도 넘게 죽었단다.

언니, 동생 하면서 지낸 사람이 하루아침에 죽는 일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슬퍼하지도 못한다고.

8년째 암투병하면서 딱 3번 울었단다.

그리고 보니 MBTI도 흔하지 않은 ENTJ로 똑같았다.

F가 아니라 다행이다.

온갖 슬픈 상념에 파묻혀 진이 빠질 테니까...


어제 1기였다가 한 달 후에 4기가 되어 가는 사람도 많고 항암이 잘 안 돼서 자연 치유하겠다고 생식과 채식을 하다가 면역력이 떨어져 링거 맞으러 갖다가 링거바늘에 쇼크사로 죽은 사람도 있단다.

생식 이런 거도 어느 정도 치유되고 말이지 물도 한 모금 못 마시는데 뭐든 먹을 수 있는 걸 먹으라고.

초콜릿 한 조각이라도.

무조건 정신력, 체력 싸움이란다.

첫 항암 때 일주일에 7킬로가 빠지고 머리도 다 빠졌단다.

이런 고급 정보들을 내가 어디서 만날까. 그야말로 '생생정보통'이었다.

갑자기 또 이런 인연이 내 곁에 있어준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 이제 보경 씨한테 자주 연락할 수 있다 하니 그리 반가운 표정은 아니다 ㅋㅋ

내가 안다.

나에겐 유난히 심리나 진로상담을 요청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뭣도 모르지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얘기해주고 나면 진이 빠진다.

언제나 내 갈길을 내가 알아서 잘 가고 남들 상담을 해주던 나였는데...

이젠 내가 그걸 보경 씨한테 자꾸 보채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불쌍한척하면 1도 안 먹힐 테니, 진짜 맛있는 걸 사준다고 꼬셔야겠다.

"저는요. 오늘하루 아무 눈치도 안 보고 하고 싶은 거 다하고 행복하게 살면 그걸로 돼요.

지금 5번째 새로 난 머린데 미친년처럼 볶았잖아요. 누가 뭐라 하든 상관 안 해요.

제가 있어야 가족도 있고 그래야 행복도 있고 그렇게 다들 같이 사는 거예요."

보경 씨를 만나니 마음이 너무 편해졌다.



보경 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얘기했다.

"진짜 좋은 사람이다. 

그래 쮸야, 우리 버텨보자. 

맛있는 녀석들에서 김준현이 그랬다. 복불복이 몇 프로의 확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어차피 먹거나 못 먹거나 둘 중 하나라고. 

우리는 살면 된다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역시 든든하고 사랑스러운 인간이다.

그 와중에 보경 씨가 달달한 걸 좋아한다고 체크해 놓는다.

자기도 지금 나에게 보경 씨가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느꼈다보다.


그래, 한 치 앞도 장담할 수 없는 삶.

내가 할 수 있는 걸 한다.

이 와중에 파워 J라 또 글을 쓴다.

3개월이든 6개월이든 

내게 남은 시간이 있다면,

난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지는 않겠고...

매년 인세라도 좀 나와서 애들에게 돌아갈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마지막 나의 이야기로 분명 용기를 얻을 사람이 있을걸 알기에,

평범한 오늘에 대한 감사함을 한 번 더 느낄 걸 알기에.

이 땅에 내가 존재한 흔적을 한치라도 좀 더 비벼놓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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